【꿈결】 포근한 엄마의 품. 젖을 먹는 아기.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 졸음이 몰려오는 아기. 농부들은 모를 심고, 물소 떼가 지나가고, 강아지들이 어슬렁거리고, 들고양이는 논둑에 숨고, 햇살은 따뜻한데, 꿈나라로 간 아기. 그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슬슬 논일을 시작하려는 엄마. 목가적인 들녘 풍경.
【지옥】 난데없는 총소리. 불길한 눈길로 주변을 살피는 엄마. 더욱 깊이 잠든 아기. 자식을 감싼 팔에 힘을 꽉 주는 엄마. 세상 모르고 깨어나지 않는 아기. 계속되는 총소리에 겁에 질려 뛰는 엄마. 새근새근 잘도 자는 아기. 마침내 총을 맞고 쓰러지는 엄마. 엎드린 엄마의 품 밑에 숨은 아기. 엄마의 비명. 아기는 쿨쿨.
【엄마】 드러누운 엄마. 집도 아닌데, 안방도 아닌데 밭에 길게 누운 엄마. 엎드려 있다가 뒤늦게 달려온 어떤 사람들에 의해 뒤집혀진 엄마. 윗옷이 위로 올라간 엄마. 젖가슴이 보이는 엄마. 아기에게 젖을 먹이다 숨이 끊어진 엄마. 말이 없는 엄마. 아빠 대신 농사와 집안일을 도맡아하던 엄마. 아이들의 응석을 잘 받아주던 엄마. 딸 셋,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일찍이 큰딸 하나를 잃어 애통해하던 엄마. 아들 하나를 더 낳아 애지중지 보살피던 엄마. 총소리만 나면 무서워 집 안 땅굴로 들어가 숨던 엄마. 아기를 지키려고 죽을 때까지 품에 넣고 놓지 않은 엄마. 34살. 그녀의 이름은 하티지엔.
【아기】 엎드려 숨진 엄마를 뒤집어보았을 때 나타난 아기. 엄마의 피가 묻었지만 상처 하나 없는 아기. 송골송골 이마에 땀까지 흘리며 여전히 잠든 아기. 슬픔을 모르는 아기. 집과 마을이 불타면서 엄마도, 할아버지도, 고모도 잃었지만,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기. 잠에서 깨어 방긋방긋 웃다가 우는 아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하면 행복한 아기. 할머니와 아빠와 형과 누나들이 살아 있어 천만다행인 아기. 네 이름은 뭐니? 아직 아무것도 몰라 답할 수 없는 아기. 엄마가 갑자기 죽어 자신의 생일조차 알지 못하게 된 아기. 고작 3개월이 됐을까 말까 한 아기. 나중에 지어진 아기의 이름은 레딘먼.
【아빠】 생계를 위해 남베트남 민병대원으로 일하는 아빠. 집에서 2km 떨어진 키엠루 초소에서 근무하는 아빠. 아예 초소 옆에 집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아빠. 외로운 아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100만피아스타(옛 남베트남 화폐단위)가 낙이었던 아빠. 그 덕분에 4명의 자식에게 온전히 밥을 먹인다고 위안하던 아빠.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루 전날 함께 자자고 불렀던 아빠. 결국 세 아이와 함께 밤을 보낸 아빠. 그 덕분에 아이들로 하여금 화를 면하게 해준 아빠. 아기인 막내도 보고 싶었지만 참았던 아빠. 결국 엄마의 주검을 보고 통곡한 아빠. 할아버지와 누나까지 죽어 슬픔을 가눌 수 없었던 아빠. 자신과 똑같이 가족을 잃은 마을 주민들이 주검을 메고 키엠루 초소로 몰려오자 당황했던 아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던 아빠. 미군과 함께 마을을 지키는 남베트남군의 한 사람으로서 비애를 느껴야 했던 아빠. 그래도 하늘이 도와 아기가 살아났다며 스스로를 다독인 아빠. 40살. 그의 이름은 레딘특.
【형】 엄마의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란 형. 4남매 중에 자신이 엄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형. 하루 전날 엄마가 아빠 있는 곳에 가서 자라고 하자 환호했던 형. 아빠가 있는 키엠루 초소에서 까불면서 놀았던 형. 두 여동생의 철없는 어리광을 못마땅해했던 형. 다음날 오전 마을에 울려퍼진 총소리에 무감각했던 형. 평소에도 툭하면 들리던 그 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했던 형. 베트콩과 남베트남군이 또 서로 총을 쏘나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던 형. 마을이 불타오르자,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깨닫기 시작한 형. 설마 엄마가 막내만을 남기고 돌아가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형. 엄마와 고모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드디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형. 더욱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리게 된 형. 10살. 그의 이름은 레딘묵.
(1968년 2월12일, 퐁니에서)
【엄마】 엄마 생각 많이 해요. 특히 아내가 아이들을 재울 때 그래요. 옛날엔 엄마도 나를 안고 재워줬겠죠. 이것도 운명인걸요. 엄마가 있었으면? 그런 생각 안 해요. 원한다고 이뤄지나요? 형은 엄마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지만, 저야 생각나는 형상이 없죠. 전 아기였잖아요. 엄마가 외국 군대의 총격으로 돌아가셨을 때, 바로 그 엄마의 젖을 먹고 잠만 자던 아기. 엄마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겠죠. 엄마가 끝까지 품어줘 기적같이 살아났잖아요. 어릴 땐 엄마 꿈을 많이 꿨어요. 흰옷을 입은 엄마가 문 옆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어요. 절 쳐다만 보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점쟁이를 찾아가 꿈에 대해 물어봤더니, 엄마가 저를 보호해주는 거라 했어요. 정말 그런가봐요. 2살 때도 심하게 병을 앓아 죽을 뻔했대요. 3년 전에도 비 오는 날 오후 잔칫집에 다녀오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은 적이 있어요. 음식을 잘못 먹었나봐요.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발견해 응급처치를 해줬어요. 아, 정말 그땐 죽을 뻔했어요. 점쟁이 말이 정말 맞는 거예요. 제가 몇 년생이냐고요? 1967년생이죠. 염소띠(양띠)예요. 11월쯤 태어난 것 같아요. 신분증엔 1살 더 어리게 돼 있어요. 1968년 11월28일생이래요, 하하. 대충 만들었나보죠. 생일을 몰라요. 생일잔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제가 어릴 땐 장난이 심한 악동이었대요. 엄마 없이 자랐는데도 구김살이 없었나보죠?
【형】 엄마가 죽고 4년 뒤인 1972년엔 아빠가 죽었어요. 아빠는 남베트남 민병대원이었잖아요. 베트콩의 총알에 너무 맞아 주검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대요. 고아가 되고 말았죠. 친척들은 저희 4남매를 동정했어요. 1명씩 남매를 나눠서 데려가 키워주겠다고 했대요. 형이 강력하게 반대했어요. 형은 우리끼리 무조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형은 책임감이 강해요. 그러고 보면 다 형 때문이에요. 저보다 9살 많은 형은 닥치는 대로 일했대요. 세 동생을 위해 돌아가신 엄마·아빠 역할을 했어요. 사랑으로 돌봐주고, 동생들이 제 앞가림을 하도록 이끌어줬어요. 저도 형 덕분에 고등학교까지 마쳤잖아요. 형이 도시에 있는 공장에도 보내줬어요.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가 적응을 못하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요. 마을 사람들에게 목수 일을 배웠죠. 농사도 지어요.
【아내】 친구 소개로 만났어요. 응오띠뚱이라고 해요. 저보다 3살 어리죠. 18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아이 셋을 낳았어요. 첫째는 17살짜리 아들 레딘민찌엔. 고등학생이에요. 둘째는 15살짜리 딸 레티리. 중학생이죠. 가장 귀여운 막내딸은 7살 레티린. 초등학생이랍니다. 아내에겐 늘 미안해요. 말도 못하게 고생을 시키잖아요. 아내는 2년 전까지 비옷을 만드는 수공업 공장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호이안 근처에 있는 디엔응옥 공업단지의 구두공장에서 일해요.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6시30분에 출근해요. 오후 5시30분에 퇴근해서 집에 오는데, 또 논에 가서 1시간 정도 일하죠. 벼농사를 짓거든요. 저도 아내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집안일을 돕고 6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해요. 제 손으로 가구를 만들어요. 논에 가서 벼도 살펴야 하죠. 돼지도 3마리 키워요. 그렇게 해서 아내는 한 달에 250만동(약 12만원) 정도 벌어요. 저는 400만동(약 20만원)쯤 법니다. 큰 걱정은 없어요. 벼농사로 1년 내내 먹는 쌀은 충분하니까.
【전쟁】 저는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요. 가장 멀리 가본 곳이 하노이 밑에 있는 빈(Vinh)시예요. 여행을 가고 싶지만 형편이 안 되죠. 희한하게 국제 뉴스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전쟁이 터진 나라에 눈길이 가요. 어떻게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는지, 난민들은 국제단체로부터 어떻게 지원받는지 궁금해요. 이라크전쟁은 말도 안 돼요.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제거한다고 들어가놓고 그 나라 사람들을 너무 괴롭힌 거 아닐까요? 참 이해 안 되죠. 평화가 좋은데 왜 세상 사람들은 전쟁을 할까요. 이유가 있겠죠. 베트남전쟁도 그렇잖아요. 미국이 베트남에서 뭔가 이익을 얻기 위해 시작한 거잖아요. 우리는 싸우기 싫다는데 싸움을 건 거잖아요. 돈이 많으니 다른 나라 군인들도 파병하게 한 거고요. 그래서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에 왔고요. 그때 이 마을에 온 한국 군인들 너무 생각이 없었어요. 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요? 우리가 닭 한 마리, 오리 한 마리 죽여도 죄지은 느낌인데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들 죽였죠? 전투 중에 대치했다면, 자기를 해치려는 적이었다면 이해해줄 수 있겠죠. 양민이었잖아요. 논에서 아기에게 젖 먹이는 여자를, 자신들한테 손해 끼친 것도 없는데, 왜 죽였냐고요. 무엇이 그리 화가 났나요? 너무 잔인했어요. 집도 태우고, 심지어 돼지와 소와 닭까지. 아니 가축이 무슨 죄가 있어요? 저는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몸도 안 좋아 군대를 안 갔지만요. 내가 군인이라면요. 내가 살기 위해 적을 해칠 수도 있겠지만요. 양민은, 가축은, 절대로, 절대로 안 건드릴 거예요.
(2013년 1월22일, 퐁니에서)
【레딘먼】 1968년 2월12일, 마을이 아비규환이 되던 현장의 한가운데서 끝내 잠들어 깨어나지 않던 그 아기는 이제 47살이다. 지금도 고향인 꽝남성 디엔반현 디엔안사 퐁니촌에서 가족·친지들과 함께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k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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