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른 교복 위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9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선 10대 학생들 이야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급기야 이윤을 생명보다 중요시하라는 가르침만이 학교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성을 버리라는 명령만은 따를 수 없습니다.”
청소년세미나모임 ‘세모’ 회원인 이들은 이날 교육부가 청소년들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교육부는 9월16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공동수업이나 1인시위·단식·노란리본달기 등을 제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이러한 방침에 대해 청소년들은 되묻는다. “우리마저,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세월호 참사 뒤 싹트는 고민과 의구심
세모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직접 공부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말 만들어진 모임이다. 청소년활동가 박윤하(23)씨가 간사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고등학생 6명, 중학생 2명 등 청소년 8명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용인시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은 신자유주의가 한 인간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엄기호·2009)다.
지난 1월 세모 활동을 시작한 양지혜(여·고양 중산고2) 학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참사는 작가가 꿈인 지혜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지난 5월 다른 고등학생들과 함께 청소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했다. 7~8시간 동안 거리를 걸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김한률(남·용인 포곡고2) 학생은 지혜가 제안했던 청소년 침묵행진에 참여한 뒤 세모의 일원이 됐다.
지혜에게 지난 몇 달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해서 벌어진 참사잖아요. 인간성을 배제당한 채 ‘가만히 살라’고 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보게 된 것 같아요. 더구나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슬픔을 곱씹을 수 없게 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은 참사 당시엔 (나와 단원고 학생들이 나이가 같아) 슬프다고 하셨지만, 요즘은 ‘그만하라’고 말씀하세요. 다들 생계가 바쁘니까 잊어야만 하는, 추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 같아요.”
한률은 또다시 참사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이 저와 같은 1997년생이잖아요. 언젠가 나와 만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고, 제가 그 배에 탔을 수도 있고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내 동생, 부모님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은 꼭 제정돼야 한단다. “과적이 문제고 평형수도 뺐다고 하는데, 평형수를 뺀 걸 눈감아준 건 누군지, 왜 급선회를 했는지 아직 밝혀진 게 없지 않나요? 제대로 진상 규명을 하고 성역 없이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참사 이후 이들의 마음속엔 여러 가지 고민과 의구심이 싹텄다. 한률은 대학 진학에 회의적이다.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말을 잘 들었잖아요. 그런 걸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 학교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모님은 아들과 함께 침묵행진에 참여한 일을 후회하신다. 이상명(남·포곡고2) 학생은 8월13일 같은 학교 한률과 함께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 난생처음 가보는 집회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것을 원하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는 걸까요?” 교육부 공문에 대해선 ‘어이가 없었다’고 표현한다. “교육부가 세월호 관련 활동에 대해 정치적이다 아니다 왈가왈부하는 게 이상해요. 정치적 활동이라고 해도 학생들은 왜 그런 것을 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지혜는 침묵행진을 하다 화가 난 적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도 교통을 방해한다며 엄청난 수의 경찰이 막고 서 있는 거예요.” 그는 요즘 “사회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입장을 갖고 살아갈지” 고민 중이다. 최근 세모 활동을 시작한 조혜연(여·고양 신일비즈니스고1) 학생은 답답하다. “참사 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 10명이 실종된 상태이고 사실상 변한 게 없잖아요. 그런데도 잊혀지는 게 눈에 보여요. 아직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도 그렇고요.” 청소년 YMCA 활동을 하면서 경기도 안산 지역 또래들을 알게 된 혜연은 4월16일, 아는 언니·오빠들의 비보를 접했다.
“잊지 않는 사람들이 혼자가 되지 않게”세모 청소년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지혜는 인터넷을 통해 9월27일 토요일 청소년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세월호 이후 생겨난 고민을 나누자는 제안을 했다. “학생들한테는 공부가 ‘생계’잖아요. 그런 학생들한테 ‘함께 거리로 나가자’라고 하기가 꺼려질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수가 적더라도,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 혼자가 되지 않게 함께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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