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라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관없는 두 연예인(때로는 라이벌 구도에 있거나, 유사한 대중적 이미지를 가진 두 연예인)을 억지로 묶어내며 너스레를 떨었을 때, 생일이 같다는 둥, 데뷔할 때의 나이가 같다는 둥, 하다못해 사고친 해의 나이가 같다는 둥 온갖 유사점들을 엮어내며 웃음을 자아냈을 때, 난 평행이론은 그저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평행이론이 함축하는 신비, 즉 영원히 만날 것 같지 않은 평행선이 바로 그 영원의 초월적 지점(수학에선 ‘무한원점’이라고 부르는)에서 만나는 것처럼, 절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인물이나 두 사건이 어떤 초월적 차원에서 이미 연결돼 있다는 그 신비를, 아뿔싸 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게다.
이MB와 홍MB, 22조-22명 4대강-4강
신비는 도처에 깔려 있다. 단지 나 같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 그래서 바로 그 신비를 ‘대신’ 해석해주기 위해, 언론이 필요한 것이렷다. 얼마 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졸전만을 펼치고서 귀국하자, 한 언론사가 신비를 일러주었다. 홍명보의 MB와 이명박의 MB가 평행하다! 둘 다 고려대 출신이며, 둘 다 일본 출신이다(이MB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홍MB는 일본에서 축구함). 게다가 이MB가 정주영과 한 팀이었던 것처럼, 홍MB는 박주영과 한 팀이었다. 둘 다 ‘주영 바라기’였던 것이다! 신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정교한 예언서처럼 무시무시한 산술적 평행이 뒤따른다. 이MB는 22조원을 들여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는 것처럼, 홍MB는 22명과 함께 4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는 것! 22조-22명! 4대강-4강! (아, 그럼 선수 1명당 1조원인가… 강줄기 하나에 1강인가… 이 따위 어리석은 질문들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아직도 이 신비에 대한 경건함이 부족한 것이다!)
난 왜 저런 혜안이 없을까.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 때, 언론사들은 나에게 또 한 번 좌절감을 안겨주기라도 할 기세로 또 다른 평행이론을 꺼내들고 있었으니… 이번엔 유병언과 김일성이다! 앗, 유병언과 김일성의 이름 이니셜이 같나? 아니면 출신이 같나? 신비의 해석자들은 언제나 나보다 한발 더 앞서 있었다. 유병언과 김일성은 둘 다 ‘도망’치는 데 선수이고, 둘 다 그만큼의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행성! 아뿔싸. 나는 이니셜과 숫자 같은 관념적·기호학적 평행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번엔 물리적·생리학적 평행성은 놓치고 있었던 게다. 유병언이 라면도 안 먹으면서 유기농 특산물만 조공받아서 먹었다는 것과 김일성이 만수무강하려고 산해진미만 찾아서 먹었다는 것은 평행하다. 유병언이 신도들 앞에서 태권도 격파 시범을 보여주면서 체력을 자랑하는 것과 김일성이 인민 앞에서 슈퍼히어로로 우상화되는 것은 평행하다. 무엇보다 그렇게 건강관리에 슈퍼 호들갑을 떨었으면서도 과체중 비만이었던 것도 평행하다. 이리 평행한데, 둘 다 그렇게 도망을 잘 다니는 것도 평행할 수밖에! (유병언이 경찰의 수사망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선수이듯, 김일성은 세계 자유선진국가들의 포위망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선수였다는 심오한 국제정치학적 서브텍스트는 덤이다!) 이쯤 되면 왜 유병언과 비교돼야 할 대상이, 현재 북한 통수권자인 김정은이 아니고, 철 지난 김일성인지도 확실해진다. 현재 유병언의 아들이 도주 중이다. 김일성의 아들들이 도주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아들이 없다. 유레카.
신비를 해석하는 분들, 신비롭다언론들이 북한과 구원파, 유병언과 김일성, 구원파 신도와 북한 인민을 비교하면서 그 신비로운 평행성을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나 같은 무지하고 무능한 미생들은 자책감만 늘어난다. 나에겐 왜 저런 통찰력과 혜안이 없을까. 평행선은 내 눈앞에 버젓이 펼쳐지고 있는데, 왜 난 그 신비를 못 보는 것일까. 신비를 해석하는 분들이, 그래서 더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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