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장하나 의원
제주 강정, 경남 밀양, 이마 노조 설립 방해 폭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배 상 싸움, 정보기술(IT) 하도급제한법, 청년고용촉진법, 동물의 날, 영화감독 지망생, 지역방송 작가, 목수, 그리스인 조르바, 2012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36살, 과 을 비롯한 수백 권의 만화책, 자전거, 제주의 하늘과 바람,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로 쓴 전태일의 유서…. 이 모든 단 어가 조그만 퍼즐 조각으로 모여 이루어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청년 비례대 표로 19대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장하나 의원(민주당)입니다. 국정감사 준비 로 바쁜 장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서 만났습니다.
-좀 야윈 것 같은데, 요즘 힘드신가요.
요즘만이 아니라 늘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요. 내 직업이 국회의원이구나라 고 느낄 때마다 그래요. 4년을 쉬엄쉬엄해서는 안 되는데…. 이런 생각에서 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밀양 같은 급박한 사태가 터지면 더욱 힘들어요.
-어쩌다 정치의 길로 들어섰죠.
대학 졸업하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면서 한편으로 돈을 벌기 위해 계속 비정규직을 하고 있었죠. 2003년 열 린우리당 창당준비위 간사직을 맡았 는데, 그때는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 었어요. 그냥 쓰레기 치우고 커피라 도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 했어요.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 핵을 보고 열받아서 정치활동을 하 게 됐죠. 그 뒤 목수 일도 하고 강정 해군기지 반대 활동 같은 일도 병행 하다가 민주당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어요.
-20대 여성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건 독 특한 결심이에요.
특별히 결심했다기보다는 정치도 내가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라고 늘 생각해왔어요. 청년 비례대표에 지원할 때도 될 줄은 생각도 못했고 요. 솔직히 서울 가서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말 한마디라도 하고 오 면 잃을 게 없다고 봤어요. 아는 사 람 하나도 없는 제가 될 줄 몰랐죠. 친구들에게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 니, 하다 하다 별걸 다 하네라고 해 요. 일종의 오지랖 같은 거, 여기저기 관여하면서 행복하고 즐겁고 그런 성격이 저한테 있더라고요.
-1년 반 해보니까 어때요.
‘저 사람은 정치랑 안 어울려’ ‘네가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그 래도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아무나’가 아니라 ‘누구 나’가 해야 된다고 매번 말해요.
-젊은 초선 의원이어서 느끼는 의정활동의 어려움은 없나요.
처음에는 주눅 들고 부담감이 있 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선배 의원 들과도 차츰 친해지고, 장하나는 이 시간에도 어디 현장에 가 있겠지라는 좋은 오해와 환상을 남기기도 하 고요. (웃음) 요즘 더욱 절실하게 느 끼는 점은, 어렵지만 언론관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거예요. 제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들이 정부· 여당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게 많아서, 언론을 통해 국민이 관심을 가져주셔야만 그나마 해결할 수 있 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현장에도 자주 나가는데, 평소 공부나 의정 질의 준비 등은 어떻게 하나요.
물론 보좌관이나 전문가들의 도 움을 많이 받죠. 젊고 초선이라 우 습게 보이는 거 정말 싫거든요. 공무 원들이 앞에서는 열심히 변명하면 서도 뒤에 가서는 ‘의원이 내용도 모 르니 호통만 친다’ 이럴 수 있거든요. 그 때문에 준비해둔 질문을 설렁설 렁 대본 읽듯이 하는 것은 제가 확신 이 없어서 못하겠어요. 보좌관을 더 욱 다그쳐요. 이거 반문하면 뭐라고 맞받아칠 수 있나 이렇게요.
“와서 보니 대한민국 서민의 삶에 관해서는 제가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회의원이 300명인 이유는 지역구 대표이든 다양한 계층과 사람들을 대변하라는 것인데, 모아놓고 보니 그 색깔이 몇 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잠은 몇 시간이나 주무세요.
4시간 정도요. 주말엔 좀더 자고.
-그동안 강정, 밀양, 동물권 등 일종의 비주 류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 활동해왔는데 특 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변해주는 사람도 없고 싸우기에 도 힘든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올라갈 때 나머지 분야도 같이 나아 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요. 예 를 들어 동물권에 관심을 갖는 사회 는 인간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상 승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 문제에 서도 정규직 노조랑 무관한 식당 아 주머니, 이주노동자 이런 분들이 그 렇죠. 해군기지나 밀양 같은 문제는 아주 큰, 대한민국 차원의 문제거든 요. 밀양 송전탑도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과 정말 밀접한 문제인데 보상 금 얼마 주네, 할머니들이 우리 마을 만 아니면 되네 하는 거다 이런 문제 로 흐르는 게 안타까워요.
-소수의 문제가 사실 작은 문제가 아니라 큰 문제다?
그렇죠.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 치권에서 배제당한 이슈가 많아요. 언론 역시 여러 주제와 연결된 것으 로 보지 않고 분절적으로 취급해서 제대로 보도도 안 하는 거죠.
-기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해본다면요.
먼저 엘리트 정치가 아닌가 해요. 저는 서울 아닌 곳에 살았고, 직업 도 비정규직을 전전했죠. 국회의원 이 됐을 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 는 마음이었는데 와서 보니 대한민 국 서민의 삶에 관해서는 제가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서민들과 소통하 는 면에서요. 두 번째로 다양성이 부 족해요. 국회의원이 300명인 이유는 비례대표이든 지역구 대표이든 다양 한 계층과 사람들을 대변하라는 것 인데, 모아놓고 보니 그 색깔이 몇 개 가 안 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의제 가 국회로 모여야 하는데, 국민이 정 치적인 주제로 보는 것에만 정치권이 확 불타오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발의한 법안을 보니 주요한 것만 추려도 14개나 돼요. 화제가 되는 동물원법도 있지만 IT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도 있고요. 그중에서 청년고용촉진법은 도리어 30대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던데요.
당시 보도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요. 원래 한시법으로 청년고용촉진법이 있어요. 그 법이 실효되기 전에 시한도 늘리고 의무화하는 조항도 신설하는 등 강화하자는 게 제 취지였죠. 그런데 예전부터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던 연령 제한 29살 부분을 마치 제가 새롭게 정한 것처럼 보도된 거예요. 그 바람에 30대로부터 욕 많이 먹었어요. (웃음)
-청년 비례대표로서 청년 세대와의 연결고리라는 역할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청년 비례대표가 있는데도 18대보다 19대가 국회의원 평균연령이 높아졌어요. 청년세대만 정치하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정치권이 나이 자체로 노령이기 때문에 젊어져야 한다는 면에서 청년대표가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양극화로 인해 살기 힘들어 청년을 포함해서 다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그런 면에서 정치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민생 문제가 중요한데, 민주당을 포함해서 기존 정치권이 민생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랄지 반응속도가 너무 느려요. 여의도와 서민들 사이에 안 보이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청년 대표로서 제 역할이 있다고 믿어요.
-청년 세대를 위한 나름의 계획이 있나요.
사실 현안이 너무 많아서 뭔가를 안정적으로 하기 힘들어요.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해오던 분들과 계속 소통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을 해요. 여러 번 접수 거부를 당했던 청년유니온 노조 설립 신고라든가, 비정규직이나 청년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것, 이런 일을 열심히 해왔어요. 참정권 연령을 1살 낮추는 문제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어요.
-사회적 연대가 약화된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정치권을 두고 보자면, 민주당 의원이 127명씩이나 되면 얼마나 힘이 강해요. 밀양 문제를 보면서 정말 아쉬운 게 이게 새로 발굴하는 의제도 아닌데 공사 하나 일단 정지시키는 역할을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이런 무기력을 개선하지 않으면 민주당에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국민이 민주화에 헌신하고 투신한 분들을 정치권에서 활동하게 했을 때는 다음 세대의 문제, 정치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 등을 잘 풀어나가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믿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양극화에 대해서도 절절함을 가지지 못하고 같이 눈물 흘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국회의원들이 좋은 이웃처럼 느껴져야 정치가 잘되잖아요. 진보니 뭐니를 떠나서요. 그 점에서도 저는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롤모델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옳다고 인정받고 싶어요.
민주당 장하나 의원
-앞으로 민주당이 장 의원이 바라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가능할까요.
희망이 있다 없다 얘기하기보다는, 지금의 민주당이 잘되는 쪽으로 기여하는 게 제 삶의 방식이에요. 시간은 한정돼 있죠. 옳은 소리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좀더 움직이는 쪽이 낫다고 배웠어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생각해보면서 이 안에 있는 좋은 점을 활용하는 게 비판만 하고 마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요.
-고독할 수도 있겠다. 역부족을 느끼고 좌절감은 안 들었나요.
처음 겁먹고 걱정했던 것보다 제가 제기한 이슈들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이 한가하게 동물이냐, 그럴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동물원법이나 고래 문제에 호응해주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대중의 관심은 많이 높아졌는데, 국회가 오히려 다양한 요구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 생각해요.
-지나온 삶의 시간을 횡축으로 하나의 곡선을 그린다고 해보죠. 가장 낮은 시기는 언제였나요.
음, 가장 낮아졌을 때라… 2년 전에 이혼했어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아홉 달 넘게 사람들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친구가 도와달라고 하는데 죄책감 같은 게 되살아났어요. 그때부터 강정마을을 다니기 시작했죠.
-그럼 가장 높은 지점은 지금인가요.
아니요. (웃음) 2007년인가 제주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야학교사를 했을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그때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장애인들이 나와서 권리투쟁을 하는데, 그 어려운 와중에 그분들이 보여준 삶의 영감 같은 게 있었어요. 중증장애인으로 늘 대소변을 조절하고 욕창을 조심하면서 일종의 단식 투쟁을 평생 해야만 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허투루 대충 살지 말자 생각했어요. 그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예요.
엄마. 전 아버지도 형제도 없이 자랐는데, 엄마가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걸 지켜보면서, 저렇게 고생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 엄마가 제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TV를 보시다가 ‘이왕 한세상 태어난 거 먹고살고 그런 게 아니라 사회에 보탬 되게 살아봐라, 가족 부양하고 남편 위한 삶 말고’ 그러셨어요. 그걸 마음에 새겼지요. 연세대 입학까지는 엄마가 좋아하셨죠. 하지만 대학 가선 제가 하는 일이 다 삐딱한 일이다보니 마음에 들어하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엄마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하셨다 하니까, ‘아 기억 안 난다’고, 제발 변변한 직업 찾으라고…. (웃음) 그러다가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자 너무 황당해서 대견하다 그런 말씀조차 못하셨어요. 국회의원 되어서도 제가 밉상인 게 ‘제가 월급 받지만 용돈 제대로 못 드리고 잘해드릴 수 없는 거 아시죠’ 이랬거든요. 강정마을에서 처음 구럼비를 폭파할 때 그거 막아본다고 주민들과 차량을 가져다 시위했는데 그때 제 차랑 엄마 차를 서귀포경찰서에서 압수해서 6개월 썩혔죠.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또 같은 일이 일어나면 똑같이 할 겁니다’ 이랬어요. 전 그렇게 얄미운 애라 엄마는 제 앞에서는 좋아하는 내색 한 번 안 하시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친구들한테 그래도 조금 으쓱해하신다고, 좋으신 거죠. 그런데 앞으로도 제가 엄마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절대 안 살 거 같아서, 이번에 비례대표 된 거 4년, 이걸로 퉁치려고요. (웃음)
-비례대표가 끝나면 취업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더라고요. 인간 장하나는 어디로 뻗어나가고 싶은가요.
저도 앞날이 막막해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면 공부요. 학력 쌓는 공부가 아니라, 대안이랄까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 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 해도 다른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거나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요.
-계속 정치를 할 건가요.
계속 해도 좋죠. 많은 분들이 장하나가 국회의원 했으면 좋겠어 그러시면 좋겠지만, 재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지역구 활동을 지금부터 하면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이 퇴색돼 보이잖아요. 그냥 장하나를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고, 아 저런 정치인도 있는데 참 좋다, 정치가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느낌이라도 남기는 정치를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래요.
조심스레 후원 실적에 대해 물었더니 후원회를 두지 않는 한명숙 의원 같은 분들을 포함해서 전체 중 꼴찌에서 5위를 차지했다며 웃는 걸로, 2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바깥은 흐린 하늘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책상 유리컵에는 노란 들국화가 한 송이 꽂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른바 ‘386세대’입니다. 후배들의 정치 무관심을 탓하면서도, 정작 저 또한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였는가, 장하나 의원을 만나면서 깊이 반성했습니다. 지금은 미숙하고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쑥쑥 뻗어나가 어느새 우리 들판을 덮어버릴 들국화. 그 한 송이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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