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는 지난 5월19일부터 한 달이 넘도록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여왔습니다. (인터뷰 이틀 뒤인 6월26일 저녁, 노조와 협력사 사이에 기본급 120만원 보장과 노조 활동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협상안이 타결됐다. 노숙농성 39일 만이다.)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투쟁하던 최종범·염호석 두 명의 조합원이 자살한 뒤, 그분들의 뜻을 잇기 위해 수백 명의 노동자가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농성을 계속해온 것이다. 농성 현장엔 이들과 연대하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연대 방식은 ‘밥’입니다. 어떤 조직도 없이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수백 명분의 밥을 준비해 농성 노동자들에게 차려준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해서 만나봤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유기농산물 판매점을 운영하는 백은주(41)씨가 주인공입니다.
SNS 가입은 인생의 전환점-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어요. 경기도 안 좋았고 그때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수입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어서 무려 15년을 했어요. 아이들 성적이 쑥쑥 오르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죠.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기농 식품 판매대리점을 하게 된 거죠.
-예전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그렇지는 않았어요. 아이들 가르치고 정말 따박따박 돈 벌어서 부모님 드리고 조카 용돈 주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먹고요, 특별히 사회활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제가 결혼을 하지 않은 터라 시간이 많아 꾸준히 책을 읽었어요. 신문은 거의 안 봤지만 을 매주 빼놓지 않고 읽었는데 사회를 보는 눈을 많이 기른 것 같아요.
-어쩌다가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을 통해 2009년 쌍용차 파업이나 용산 참사 같은 소식을 전해들으며 늘 마음 한구석에 부채감이랄까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페이스북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요.=2010년께 페이스북에 가입했는데, 다들 그러는 것처럼 저도 온라인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었죠. 그중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업활동가로 살고 있는 후배가 있었어요. 후배를 통해 노동현장에서 농성하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죠. 그분들과 친구를 맺으면서 다른 세계, 즉 집회 현장이나 농성 현장을 알게 되고, 뭐가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오면 돈도 보내주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희망버스도 타고 거기에서 또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고요.
-보통 그런 현장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조직에 속한 사람들로 생각하게 되는데요.=대부분 그렇죠. 실제로 저 혼자 가니까 정말 놀라워하셨어요. 어느 모임에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늘 뵙자고 한 것은, 삼성전자서비스 농성장에 ‘밥’을 지어 가져다준 것 때문이에요.=사실 처음에는 자원봉사하러 갔어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문제가 정말 심각하거든요. 지난해 별이 아빠 최종범씨가 갓난 별이를 두고 돌아가셨을 때도 매일 장례식장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뭐라도 마음을 보태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번에 또 한 분이 돌아가셔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서 농성을 결의했는데 가만 보니까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듯하더라고요. 그분들도 그렇게 1천 명 가까이가 일주일 이상 농성할 거라 생각 못하셨을 거 같아서, 뭐 도와드릴 게 없을까 해서 가봤죠. 마침 식사 시간이었어요. 그날 음식이 어묵볶음과 콩자반이었는데 매 끼니가 똑같은 음식이라는 거예요. 어묵은 그냥 물과 간장만 부어서 볶았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계신 분들도 다 귀한 아들이고 귀한 남편이잖아요. 인간답게 살자고 농성하면서 이렇게 모욕적인 밥을 먹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제가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밥을 짓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그렇죠. 이 많은 분들이 어디 가서 한꺼번에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고, 저도 매일같이 해드리진 못하죠. 하지만 생각했어요. 아, 정말 맛있는 밥, 집에서 먹는 것과 같은 밥을 한 끼라도 드시게 하자, 그것이 그분들을 존중해주고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거 아니냐고요.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도 100만원 불쑥 -어떻게 준비했나요.=경기도 부천에서 식당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장소와 재료비를 제공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밥을 해드리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더니 온라인 친구 6분이 함께 해주겠다고 하셔서, 밤 12시에 식당에서 만나 카레를 만들기로 했어요. 밤새 준비해서 아침에 들고 와 배식해보니까 600명도 가능하더라고요. 해볼 만하다 싶었죠. 자신감을 얻고 좋은 재료로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숙농성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하룻밤만 지내도 등이 아프고 목이 아프잖아요. 먹으면 힘이 나는 밥을 해주고 싶어서 그 취지를 적어서 페이스북을 통해 모금을 했어요. 그랬더니 467만원이라는 거금이 걷혔어요.
-오로지 페이스북으로만요.=네, 다른 곳에는 전혀 알리지 않았는데 저도 놀랐어요.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분인데 100만원을 보내시기도 했고, 모두 159분이 돈을 보내주셨어요. 그 돈으로 1천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52만원을 남겼어요.
-역시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제대로 된 밥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제육볶음, 고등어조림, 김치전, 얼갈이된장국, 얼갈이겉절이, 이런 거로 식단을 짜서 준비했으니 고생했지요. 역시 온라인 친구들이 와서 도와줬어요. 저 혼자서는 다 못하죠. 음식은 정말 맛있게 드셨어요. 잔반이 가장 적게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착오를 일으켜 음식이 약간 남았어요. 그때 저희가 이왕 대접하는 거 일회용 접시 쓰지 말고 품위 있는 한 끼가 되게 하자고 해방촌성당에서 그릇을 빌렸어요. 성당에서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 나니 고맙고 죄송해서 다음날 무의탁 노인 무료급식을 하신다고 해서 남은 반찬을 다 기부했어요. 물론 먹다 남은 것을 드린 건 아니고요.
-그리고 또 하셨어요.=솔직히 두 번째 밥을 차리고 나서 돈이 조금 남았는데 그만하고 그냥 돈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온라인 자원봉사자들도 다 자기 생활이 있는데 밤새 음식을 하니 다음날 제대로 생활이 안 되고, 저는 청주에 사는데 서울까지 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니까 너무 고단해서요. 자꾸 손 벌리는 것도 다른 분들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되고요. 그래서 남은 돈을 기부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그 전에 주문한 도시락에서 바퀴벌레와 담배꽁초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거예요. 게다가 도시락 반찬이라는 게 대부분 튀긴 거고 딱딱하잖아요. 칼칼하고 시원한 국이 드시고 싶다는데, 머릿속에 아, 그럼 콩나물은 돈이 얼마 안 드니까 할까?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밥과 계란프라이만 할게요, 이러고서는 얼갈이겉절이 를 얹어 또 하게 된 거죠.
전국서 모여든 콩, 들깨, 간장, 감자… -돈을 모을 때, 필요한 만큼 돈이 안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안 해보셨어요.=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밥을 짓기 위해 얼마가 필요하다, 이런 것보다 최소한 돈을 보낸 사람은 이 일에 관심을 가질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한 1천 명 정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했죠. 캠페인 이름은 ‘만원의 만찬’ 이렇게 하고요. 뭐, 5천원이나 1만원 정도 보내주셔도 많은 거다 이랬죠. 그런데 돈을 받아보니 놀라운 게, 10만원씩 보낸 분이 꽤 있는데 사실 그분들이 저를 몰라요. 제가 한 번이라도 만났던 분들이 보내주신 건 이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의 친구인 저를 믿고 그냥 돈을 보내주시는 거예요. 신뢰의 연결이라는 게 놀랍고도 고마웠어요.
-물건으로 보내주시는 분도 있었나요.=돈을 보내고 싶은데 정말 가진 게 없으시다면서요, 페트병에 콩하고 들깨하고 마늘 한 망하고 간장이 왔어요. 며칠 전에 충남 서산에 계신 분은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데도 감자 15kg 한 상자를 보내주셨어요. 아, 이제 정말 그만하려 했는데, 그 감자와 콩 때문에 콩국수나 찐 감자를 드리러 또 가야 할 것 같아요. (웃음)
고단했을 것 같기도 하고 즐거웠을 것 같기도 한 ‘밥연대’ 현장을 떠올려보면서, 문득 바보 같은 질문 하나 던져봅니다.
-왜 그런 일을 하세요.=(조금 생각하다가) 그걸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냥….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요. 예전에도 행복하긴 했어요. 친구들 만나 맛있는 거 먹고 그때는 행복하기만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작은 죄책감이 있었지만요. 그 죄책감이라는 게요, 제가 2012년 페이스북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기성씨가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사진을 봤어요. 처음에는 빨간 띠를 매고 머리를 길렀기에 뭔 영화배우인가 했어요. 그러다가 쌍용차 문제로 고압 송전탑에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때 제가 이런 일들을 눈감고 방치해서 저분들이 저렇게까지 되었구나 하는 죄책감으로 울었어요. 그 마음이 커지니 가만히 있기가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돈도 많이 못 벌고 힘들어서 울고 웃고 때로 슬프기도 하지만, 함께해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래서 예전보다 더 많이 행복하고 더 극적으로 행복해요.
10만원짜리 펜스가 있었으면…-죄책감 없이 무관심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삼성 농성장에 있는데, 어떤 분이 외제 자동차를 타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유리창을 내리고서는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이거, 어떻게 하면 그만하게 할 수 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분 보기에는 그냥 지저분하고 차 막히고 그러니까요. 하지만 저는 세상에는 남에게 무관심한 사람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봐요. 내가 사는 세상이 과연 행복한가? 이렇게 물어보면 알 수 있어요. 노동자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축이에요. 지금 그 노동자들의 세계가 엉망이고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런 사회 속에서 내가 행복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나오죠.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질문과 답이 나오는 거죠.
-우리 사회는 지금 행복하지 않은가요.=행복하지 않아요. 제가 현장을 보면서 느낀 게 법이나 공권력은 철저하게 가진 자의 편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고용 불안정이오. 비정규직 문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이제 폭발할 때에 이른 게 아닌가 싶어요. 고용 불안정이 굴욕적인 노동을 낳고 있어요. 현대제철에 10만원짜리 안전 펜스가 있었으면 노동자가 주물에 떨어져 죽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비정규직이니까 그거 안 해주고도 그냥 일하라고 하거든요. 안 하겠다 하면 잘라버리고, 협력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계약 안 해버리고요.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모욕받는 일이 없어지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갈 거예요.
-2년 넘게 여러 투쟁 현장에 가보고 지원도 했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정말 극악스러운 상황에 몰리면 개인으로서는 ‘에이, 치사하다’ 이러면서 그만둘 것도 같은데, 현장에 가서 그분들을 만나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항상 많이 배우는 게요, 단순히 직장을 잃느냐의 문제를 떠나 사람이 최소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다 바쳐서 지키려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건 바로 그게 아닐까요.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가 계속 떨어지는 돌을 굴려서 다시 정상에 올리는 것이 바깥에서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의미 있다면 계속하는 거죠. 비록 힘이 들더라도요. 힘든 상황 속에서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다른 이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주게 된다는 동지애를 종종 목격하는데 정말 존경스러워요. 노동현장뿐 아니라 경남 밀양의 할머니들도 그러셨어요.
노동자 정당 사무실 청소부를 꿈꾸다 -만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듣고야 마는 마이크가 있다면, 거기에 대고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말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나온 건 아닌지 반문해보면서 그런 촉수들이 예민해졌으면 좋겠어요. 나한텐 일상에서 잠깐 불편한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인생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요.
‘연대’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내가 얻은 것이 타인의 고통으로 생긴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다는 말의 울림이 새롭습니다. 그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백은주씨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은가요.=1~2년 이렇게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했는데 보람도 있었지만 이런 일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러 처지에 놓인 수많은 대중을 품고 가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건 올바른 정당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노동자 정당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만약 그런 정당이 만들어지면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는 후보가 나왔을 때 선거운동원으로 열심히 뛰면서 사무실 청소를 해주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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