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튼튼한 징검다리가 될 겁니다

대표적 시민운동단체 참여연대 창립 20돌 맞아… 이태호 사무처장 “시민 주도 활동 지원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일해야”
등록 2014-09-20 13:25 수정 2020-05-03 04:27

우리 사회의 대표적 시민운동단체 중 하나인 참여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1994년 시민운동의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 사회에 ‘시민의 대변자’라는 깃발을 들고 출범한 참여연대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시민들의 후원만으로, 반부패·복지·경제민주화 같은 개혁과제를 꾸준히 제시하는 한편, 권력의 부정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스무 살 생일인 지난 9월1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이태호 사무처장을 만났습니다.

풀뿌리·자발적 조직, 시민성 확장의 결과

-지난 활동을 압축하는 핵심적 단어를 고른다면 무엇일까요.
=‘권력감시’입니다. 회원 설문조사에서도 참여연대가 지금까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집중해야 할 과제로 권력감시라는 단어가 선정됐어요.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 소액주주운동 등 기억에 남는 활동이 많은데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투표를 꼭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돼야 비로소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창립선언문에 나옵니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국가권력보다 시장권력이 더 힘을 발휘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참여연대는 그 두 가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일상적 감시와 견제를 하는 시민조직으로 활동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요.

=권력감시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재정 자립이 필수적인데, 참여연대를 후원하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그 원칙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이 크다고 봅니다.

-참여연대는 정책과 이슈를 포괄적 종합적으로 다루는 시민단체를 표방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민’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건가요.

=참여연대가 출범할 당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참여민주주의’라고 쓰고 실질적으론 권력감시라고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주권자로서 그 권리를 위해 참여하고 행동하는 존재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죠. 특정 권력의 전유물이던 법이나 제도, 전문성, 정책을 이용해 ‘시민’ 또한 자기 권리를 지키고 자신의 힘을 드러낼 수 있음을 입증하고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그런 ‘시민’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가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민성’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참여연대가 활동해왔고, 그 시민성은 꾸준한 발전했다고 봅니다. 다양하고 자발적인 시민행동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늘어나고 있죠. 예전에 전국 각지의 피해·갈등 현장을 가보면 특정 단체나 정당과 관련된 사람들만 움직였지만, 지금은 시민이 스스로 조직해나갑니다. 희망버스처럼요. 풀뿌리 시민단체나 자발적 조직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 ‘시민’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민사회가 성숙한 것인지는 의문이에요.

=시민의 참여와 연대는 성장했지만, 성숙 단계로 가려면 풀어야 할 과제와 넘어야 할 장애가 많습니다. 참여연대 활동 초기는 이른바 ‘1987년 체제’ 이후의 개혁 국면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 및 개혁과제가 막 분출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금융위기가 왔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가 진영화되기 시작했어요. 원래 남북 분단으로 인한 냉전사회적 속성이 강했고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지나친 진영화 논리로 서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문제 해결조차 어려워진 상황이죠. 심지어 세월호 참사도 그렇거든요. 이런 걸림돌이 시민사회의 성숙을 막고 있는데, 참여연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큰 과제입니다.

시민을 향해, 현장 속으로 -참여연대의 회원 수만 보더라도 지난 몇 년간은 정체 상태가 아닌가요.

=참여연대의 영향력이나 회원 증가는 2000년대 초반에 제일 높았다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초반에 너무 급속도로 성장했던 것이라 봅니다. 지금은 많은 시민단체가 생겨나 활동하는데 참여연대가 시민을 독점해서 성장하는 것도 맞지 않고요. 내부적으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원, 특히 회비나 재정 규모에서 정체라기보다는 꾸준한 성장 속에 안정과 내실을 꾀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시민의 자발적 움직임이 늘어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한 참여연대의 역할에 대한 숙고와 재정립도 있어야 할 텐데요.

=비판적으로 평가하자면 권력감시·대변자로서의 역할에 힘을 기울여온 반면, 시민참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거나 혁신이 부족했습니다. 행동하는 시민을 어떻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냐, 이게 20주년을 맞는 과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시민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것인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가 매일같이 보고서나 보도자료를 많이 내고 있는데 이게 시민들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느냐는 반성도 합니다. 시민이 있는 곳으로, 현장으로 더 들어가야겠다, 가상의 시민이 아닌 스스로 조직된 시민들과 협력하는 일에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를 후원하는 시민에게 참여연대가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시민 개개인이 생활실천형 운동이라든가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일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과제에서 참여연대가 맡아야 할 일은 시민연대의 가교, 징검다리, 놀이터,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엇을 정하고 이렇게 합시다라고 앞장서 이끄는 게 아니라 열린 공간이라서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말이죠. 스무 살을 맞는 참여연대가 연대를 돕는 역할을, 시민 주도 활동을 지원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특정 사회적 이슈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 시민교육, 즉 시민이 스스로를 훈련하고 교육할 수 있게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시민들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시민활동가를 육성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시민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잖아요. 예를 들어 민주노총을 처음 만든 1세대 민주노동자들이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파업은 많이 해봤지만, 자기 지역과 일상에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훈련을 받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요즘 인기를 끄는 게 인권·인문학·시민교육입니다. 은퇴한, 연금생활을 하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가, 우애를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거죠.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단체가 생겨났지만 본격적인 활동가들을 위한 교재나 자료는 부족하거든요. 대신 어려운 정책보고서는 많죠. (웃음) 우리가 교육전문 단체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활동가·훈련가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변하는 권력 맞서 감시의 변화 있어야 -권력감시라는 활동의제는 앞으로도 가장 중심적인 의제인지요.

=여전히 중요한 활동의 하나인데, 우리가 감시하는 권력이 변했다는 것을 고려해야겠지요. 정치권력뿐 아니라 시장권력이 더욱 강해졌고요. 견제와 균형이라는 다분히 절차적 차원의 권력감시에서 나아가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권력감시, 경제민주화를 위한 권력감시가 더해져야 합니다. 외교안보나 첨단 정보화사회의 정보권력 문제도 다루면서 권력감시의 내용이나 범위를 더욱 정교하게 재구성해야죠.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의제 설정 능력에서 참여연대는 엄청난 기획력과 활동을 보여줬지만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해 그 속도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요.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라고 하잖아요. 시민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의제를 던져주는 시대예요. 그러니 출범 초기와는 상황이 다르죠. 이런 상황에서 참여연대가 시민을 돕는 방법은 잘 정리된, 잘 준비된 모니터의 결과를 정책대안과 함께 내놓는 겁니다. 이른바 탐사형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거죠.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검찰에 대한 보고서를 냈는데, 역대 사건을 정리해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 제공했어요. 그게 시민들 사이에서 지금도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를 든다면 ‘융합’이에요. 참여연대에 다양한 센터가 있는데, 지금 시대적인 문제들은 분절돼 있지 않고 모두 연결돼 있거든요. 이것을 어떻게 연결지어 제공하고 종합적인 비전을 보여주느냐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죠. 협동과 공감과 연대로 발전하는 사회모델이 있을 수 있는가에 관해 사법감시와 기업감시를 연결하고 복지와 평화를 연결해내면서 상호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여연대의 특징 중 하나가 전문가들의 결합이었고, 그 덕분에 정책적 대안 제시나 정부 감시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이는데요, 전문가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어떤가요.

=세월호 문제를 보면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그 원인을 제공하는 각 절차마다 전문가들이 있었거든요. 안전규제, 선박, 관제, 구조 등. 그런데 왜 독립적으로 발언하는 전문가가 없었는가.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최근의 큰 사고나 4대강을 포함한 정책적 실패들이 다 마찬가지거든요. 우리 사회가 전문가 참여가 활성화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에 촘촘하게 포섭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 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전문가층이 취약해졌습니다. 아직도 참여연대를 이루는 큰 축이 전문가이고 이들이 활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층은 얇아졌어요. 숙련되고 전업적인 활동가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전문가 두 축이 모두 취약해지는 게 우리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앞으로 참여연대의 전문성 강화뿐 아니라 전문가 운동, 즉 전문가의 사회적 참여를 촉진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 중립성 원칙 기조 변함 없어-제도정치권에 진출한 참여연대 출신 인사가 적지 않은데요.

=현직을 떠난 분들 중에 그 경험을 살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최근에 와서 제법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현직 임원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정치 중립성을 분명한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긴 적은 없습니다. 참여연대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권력감시 기관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그 성과를 가지고 감시의 대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참여연대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요.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시민단체 활동 과정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은 인사들이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다른 역할을 맡는 것 자체가 막연히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참여연대가 그들에게도 본연의 권력감시 역할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죠. 두 번째로, 시민단체에서 정치적 자원을 배출해낸 것은 시민운동의 고속성장과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리더십의 위기가 있었던 한국 정치가 보여준 시대적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현상이 이후에도 계속될지는 의문이에요. 지금 시민단체는 변화하는 시민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큰 장기적인 숙제를 고민하고 있고, 1980~90년대 민주주의의 급성장 시기에 활동하던 세대가 거의 떠난 상황에서, 천직으로서 시민운동을 선택하는 세대로 채워지고 있어요.

-한국 사회의 과도기적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인가요.

=참여연대가 대변자 조직으로서, 앞장서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우리 사회에서 분명하지 않았고요. 지금은 시민들이 현장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고 그에 대한 참여연대의 역할은 앞장서는 역할에서 플랫폼이나 징검다리 같은 역할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더 안정적이면서도 전문적이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비전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 활동가는 생활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자립이 어렵다는 통념이 있지 않은가요.

=여전히 활동가들의 급여는 적습니다. 다만 요즘은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청년들이 하도 비정규 저임금에 시달리다보니 활동가들의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농담까지 있어요. (웃음) 주말에도 행사에 참여하거나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일하다보면 과로에 여가나 복지 부분이 미흡하죠. 후배 세대에게 우리 세대처럼 전업 활동가로서 그 정도는 희생하거나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은 전업 활동가지만 동시에 건전한 생활인이자 시민이어야 하고, 그 바탕이 돼야 지속 가능한 활동가가 될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 재정을 활동가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어려운 여건의 시민의 짐까지도 덜어줄 수 있는 나눔과 협력의 ‘연대재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최초의 참여연대 정년퇴직자가 꿈-활동가의 비전이라면 어떤 건가요.

=평생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다가 은퇴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참여연대도 아직 정년이 몇 살이라고 정하지는 못했지만 정년을 보장하는 상근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고, 저는 최초의 정년퇴직자가 돼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이태호 사무처장은 1995년 5월 참여연대의 상근간사로 들어와 지금까지 19년간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20년을 같이할 꿈을 꿉니다. 이미 하얗게 센 머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할지 모르지만 그의 정년 은퇴식에 초대받기를, 그 자리에서 더욱 견실해진 참여연대를 만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연순 변호사, 녹취 박선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