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은 일하는 사람들의 글을 담은, 매달 나오는 책입니다. 발행인이자 편집장은 전직 버스 운전기사입니다. 안건모(57) 편집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12살부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그마저 중퇴했습니다. 27살부터 20년간 버스를 운전하던 그는 마흔 넘어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꾸준한 노력 끝에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생활글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버스기사 일을 그만둔 뒤 지난 10년간 편집장으로 일하던 그가 지난 6월 라는 책을 냈습니다. 8월에는 대입 검정고시도 봤다고 합니다.
글쓰기에 중립은 없어요-책 이야기를 해주세요.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만 500권 넘게 산 것 같아요. 그 많은 책들 중에 저같이 어릴 때는 글 한 편도 못 쓰던 사람이 글을 쓰게 된 경험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거의 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나 지식인을 위한 책들이고, 글쓰기 기술만 가르치는 거예요. 한번 책을 내보자 싶었죠. 글쓰기 강연을 다니고 에 3년 정도 글쓰기에 관한 글을 연재했는데, 그걸 함께 묶었어요.
-책 제목이 삐딱해요. ‘올바른 글쓰기’가 돼야 하지 않나요.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뜻인데요. 우리 사회가 완전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 이걸 올바로 세우려면 삐딱해져야 해요. 결국 글을 삐딱하게 쓸 수밖에 없어요. 글이라는 것은 원래 비판적으로 써야 해요. 글쓰기에 중립은 없어요.
-문법이나 글쓰기를 누군가로부터 배웠나요.
=문법이야 초등학교 때 배운 거 말고는 다 혼자 배웠죠. 저는 이오덕 선생님 직속 제자라고 얘기하고 다녀요. 1996년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유명한 분인 걸 몰랐죠. 어디 저렇게 평범한 할아버지가 계시나 했어요. 강연을 듣고 나서 를 포함해 그분이 쓴 글쓰기 책 5권을 사서 바로 다 읽었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아동문학가로서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바로쓰기 운동에 애쓴 분입니다. 이 선생님은 글은 지어내는 게 아니라서 ‘글짓기’보다는 ‘글쓰기’라고 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또 일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생생한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번밖에 만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뜻, 같은 실천의 길을 가는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인연을 두 사람은 맺고 있습니다.
-이 선생님의 책을 읽은 뒤 많이 달라졌나요.
=‘내가 현장에서 쓰는 말, 그것이 옳은 거구나’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지식인들처럼 멋있게 글을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하는 걸 알았죠. 그때 선생님이 “당신 같은 사람이 써야 한다. 지식인이 만들어내는 글쓰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써야 한다”고 하셨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어요. 우리 삶이 바로 글이 된다는 걸 몰랐죠. 그러다가 을 봤어요. 노동자들이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했죠. ‘아, 이거 나랑 비슷하다. 나도 한번 써보자.’ 막상 써보니까, 소소하면서도 소소한 게 아닌 거예요. 우리 사회의 문제와 다 연결돼 있는 겁니다. 오히려 일하는 사람들이 더 풍부한 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거죠. 그때가 글쓰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그 무렵 버스가 파업하면 정부와 사업자 어용조합이 짜고 치는 건데 그걸 시민도 모르고 기자도 몰라요. 일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죠. 그 사람들이 쓰는 게 가장 진실한 글이죠.
구독자 늘리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글 쓰는 버스기사에서 글 펴내는 편집장으로 처지가 바뀌어 일한 지 10년 되었는데요. 직업 전환으로는 손에 꼽을 정도의 큰 변화가 아닌가 싶어요. 그때 걱정은 안 되셨나요.
=제일 걱정된 건 임금이었어요. (웃음) 버스기사보다 적은 월급이거든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큰 결심을 했죠. 물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교정 보고 청탁하고 기획하는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누가 버스기사를 편집장으로 초빙하셨나요.
=윤구병 선생님이죠. 은 원래 보리출판사에 속해 있었어요. 조금씩 독립해나가다 제가 편집장으로 온 해에 완전히 별개의 법인체가 됐어요.
-뭘 믿고 그랬을까요.
=윤 선생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거죠. (웃음) 인터뷰난을 맡으면 책을 사서 인터뷰 공부도 하고 남이 하는 것을 가져다가 읽어보면서 배워갔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요. 좀 고생했죠. 큰 문제는 독자 관리였어요. 제가 올 때도 적자였고 지금도 판매부수로는 적자를 면치 못해요. 하지만 편집장이 된 뒤 실제 구독하지 않는 독자들을 다 정리하고 다시 구독자를 늘리려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글쓰기 강연은 언제부터 했나요.
=아마 2007년인 것 같아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초빙강연을 했는데, 글쓰기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글을 쓰게 되었나라는 경험 위주의 이야기를 했어요. 대중 강연을 처음 해봐서 굉장히 떨었는데 그 뒤 조금씩 강연이 늘어났어요. 글쓰기 초보자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어떤 거다 보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차 글쓰기 기법 강의도 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부분이 뭔가요.
=주어·서술어 일치하는 것과 문단 나누기. 그중에서도 문단 나누기가 참 힘들어요.
조금씩 노력해서 자신을 바꾸어가는 삶을 직접 보고 있다는 것에 유쾌한 존경심이 생겨났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물어봅니다.
맺힌 마음을 풀기 위해 글쓰는 사람들-누구나 감동적인 글을 써서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글을 쓰는 건 어렵게 느껴져요.
=초보자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요, 막상 글을 쓰자고 하면 뭘 쓸까, 즉 글감이 없다는 거죠. 그게 제일 어려워요. 그 이유는 학교에서 지어내는 글쓰기를 가르쳐서 그래요. 지금도 교과서를 보면 그래요. 논술같이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라고 하거나 자신의 일상과 전혀 관계없는 주제를 놓고 글을 쓰라고 하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좋은 글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쓰라는 거죠.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에 대해, 가정주부는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 쓰는 거예요. ‘생활글’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겪은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가장 잘 쓸 수 있거든요. 물론 그런 글감이라고 해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죠. 결국 올바른 입장이라고 해야 할까, 가치관의 문제가 남아요.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다운 글을 써야 해요.
-글을 쓰는 이유 중 ‘맺힌 마음을 풀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이오덕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학교에서 왕따당해서 자살하는 아이들 이야기였는데, 만약 그 아이가 글을 썼다면 자살까지 갔을까, 숨이 막히니까 글로라도 풀었다면 자살까진 안 갔을 텐데….” 실제로 글쓰기를 통해 치유된 사례가 많아요. 글이라는 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9월호 편집 중인데 ‘엄마와 나’라는 글이 있어요. 엄마가 딸이 결혼하는데 얼마나 간섭을 하는지, 그걸 읽으면서 분도 나고 한편으로는 눈물도 나서 편집하는 우리도 글을 읽으면서 울었어요. 그런 글을 통해 치유가 되는 건데, 특히 가정주부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 삶을 살다가 글쓰기를 통해 그런 경험을 많이 하죠.
-같은 공간을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들로 벽이 쳐져 있는 느낌이에요. 그럴수록 소통으로서 글쓰기가 더욱 절실한 것 같아요.
=그렇죠. 비정규직이 최저임금을 겨우 받으며 일했는데 해고당하는 일, 이런 고발성 글쓰기가 자꾸 나와야 하죠. 정말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라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제는 시내버스 기사를 욕할 수 없다고 해요. 왜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지, 소변도 참고 운전해야 하는 고통을 알았다는 거죠.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글쓰기를 우리는 계속해야 해요
-한편으로는 글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인터넷 덕분에 모두가 1인 미디어를 자청하고 있는데요.
=전 비판적이에요. 인터넷에서 보는 글은 재미도 없고 기억이 잘 안 나요. 시간을 많이 뺏기고 좋은 글을 찾기도 어려워서 그래요. 글은 종이로 읽어야 해요.
-인터넷 글이 소통 수단으로서는 매우 유용한 것 아닌가요. 비용도 안 들고 이슈 파급력도 큰 편인데요.
=물론 밀양이나 강정이나 쌍용자동차 등 소식을 공유하는 것 정도는 효과가 있죠. 그러나 단발성에 그칠 뿐이에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쓰면서 같이 공감하는 재미는 있겠죠. 하지만 좋은 글이란 명확한 주제가 있어야 합니다. 생활글이라고 해서 오늘 뭐 먹었다, 뭐 했다 이런 것들을 마구 내뱉는 게 아니에요. 일상 이야기 가운데서도 진지한 자기 주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가지는 힘이 있어야 해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로 돌아가서, 독자가 좀 늘어나고 있나요.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했는데, 요즘 정기구독을 끊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주로 노동자가 많이 읽는데, 살기가 더 힘들어진다고요.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정리해고 되면서 정기구독을 끊어요. 책을 읽으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정기구독을 끊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도 밝은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지금 우리 사회가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일터 소식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미화하지 말고 진솔하게 보여주는 게 이 책의 취지잖아요. 그러다보니 아픈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 그래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글도 있지 않은가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한 작가가 있어요. 이 세상과 사람들을 보세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원래 잘 울지 않고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요. 세월호 참사 이후 편집실 식구들도 많이 울었고 저도 시시때때로 목이 메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아름답다는 것은 그 시대 상황과 시인의 삶이 일치돼야 나온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시어만 골라 쓰면 그게 아름다운 시인가요? 그 시가 사람을 현혹하잖아요. 일제시대 막바지를 보면, 젊은이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데도 ‘강나루 건너 밀밭길’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이 있었어요. 현실을 도피한 노래가 뭐가 아름다운가요?
문득 세월호 이후 제대로 잠을 못 잔다는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저마다 공감의 폭은 다르겠지만, 현실을 직시하려 애쓰는 눈과 글 때문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글감이나 비판적 의식 말고 순전히 기술적으로 글을 잘 쓰는 비결이 있다면요.
=그런 비법은 없어요. (웃음)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라’고들 좋은 말 하지만요. 제 생각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고치는 게 제일 빨리 늘어요. 그걸 위해서는 글쓰기 모임이 있어야죠. 3~4명 정도라도 모임을 만드는 거죠.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글을 쓰고 읽는 게 부담스럽죠. 하지만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겁니다.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고 고칠 수 없으니까 그건 아무리 많이 써도 잘 안 늘어요.
-보여주고 고치는 게 제일 빠르다?
=글쓰기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거죠. 글 잘 쓰는 스승이 없어도 돼요. 잘 못 쓰는 사람들끼리라도 모여서 글을 서로 봐주면 돼요. 어떤 글이 좋은지는 느낌으로 알기 때문에 대화하며 고쳐나가게 되고요. 그게 서로를 치유해주는 효과도 있어요.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셨어요.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를 40년 전에 봤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갔는데 마저 못 마쳤어요. 사실 학력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독자들 중에 방송통신대학교 출신이 많아요. 특히 문화교양학과 출신이 많은데 같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학과가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글쓰기뿐만 아니라 역사탐방도 하고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년에 대학생 되면 뭘 해볼까…-혼자서도 공부를 잘해오셨는데요.
=아무래도 혼자 공부하면서 책을 보니까 책 한번 읽고 나면 그대로 마는 거죠. 대학에 가면 책 한 권을 읽고 복습도 하고 리포트도 내니까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잖아요. 그런 과정을 한번 겪어보고 싶어요. 내년에 대학생 되면 뭘 해볼까 이런저런 계획을 해보고 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겪는 고통을 두고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글쓰기에 적용하면 ‘삐딱한 글쓰기’가 되겠지요. 세월호 참사 뒤 어디를 돌이켜봐도 즐거움이 없다는 요즘입니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삐딱한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마음 편히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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