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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 잊지 말자고 다짐한 엄마들이 만든 온라인 모임 ‘노란 손수건’…
침묵시위 이어 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펼쳐나가
등록 2014-06-04 14:44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24일 경기도 안산 노적봉 폭포공원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5월24일 경기도 안산 노적봉 폭포공원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 달 전에 만난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은 지금 우리에게 ‘함께 애도하며 신뢰의 공동체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세월호 참사를 함께 슬퍼하며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엄마들이 모여 만든 온라인 모임입니다. 그 공동대표로 일하는 정세경·오혜란·김미금씨는 9살부터 대학 1학년생까지 자녀를 둔 40대 엄마들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엄마들이 애도의 공동체를 만든 이유를 듣고 싶어서 만나보았습니다. 5월의 햇살치고는 좀 뜨거웠던 지난 5월24일 토요일 오후, 엄마들은 경기도 안산 시민들의 휴식처인 노적봉 폭포공원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부지런히 받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 한 번이라도 생각했나-세월호 참사로 충격이 크셨지요.

정세경(이하 정)- 어제 엘리베이터에 고등학생들이 같이 탔어요. 뒤통수를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휴, 저렇게 예쁜 애들이…. 그냥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와요. 한동안 실성한 것처럼 울며 지냈어요. 제가 친정엄마랑 사는데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죽어도 이렇게 울 거냐.”

오혜란(이하 오)- 저희 집은 단원고 옆이에요. 제 딸이 올해 단원고를 졸업했어요. 2년 전에 같은 코스로 수학여행을 갔다오고요. 사고 첫날 딸에게 물었죠. “괜찮니?” 친구 동생들, 옛 담임선생님이 다 그랬으니까. “소식 있어?” 물어보니까 그냥 울면서 문 닫고 들어갔어요. 그 뒤 저희 집은 대화 자체가 사라졌어요. 온 식구가 눈치를 보면서. 평소 문을 안 잠그고 자니까 아이가 문만 잠가도 부부가 문 앞에서 서성였어요. 그 아이가 입을 딱 닫고 있다가 며칠 뒤에 말하더군요. “엄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친구 동생들, 담임선생님 시신 찾으면 장례식장 가서 일손 돕고 집에 못 들어올 날이 많아질지 몰라.”(눈물)

-단지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는 것을 넘어선 충격이 있어요.

김미금(이하 김)-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어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예를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사업자와 그 가족들이 다 깨지고 자살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았죠. 아예 우리 관심 밖에 있었죠.

- 단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제인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럼 나는 20대 때 뭘 했던 걸까?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저도 나름 정의를 위한다고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죠. 한때 좀 했다는 사람들이 지금의 40~50대잖아요. 그런데 ‘한때’가 아니라 그 뒤에 지속적으로 무엇을 했는가, 결국 그게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정부가 나오게 된 거고, 이 정부 아래에서 이런 사건이 터진 거죠. 내가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생명, 작은 돌부리 하나의 소중함을 기본으로 하면서 쭉 살아왔나,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노란 머릿수건 쓰고 집회 맨 앞에

엄마들은 함께 슬퍼하면서 내 자식과 같은 아이들로부터 생명, 공동체로 이어지는 큰 화두에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민 속에서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온라인 모임을 만들게 됩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 4월26일 새벽이었어요.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날 새벽에도 일찍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곰곰 생각했죠. 우리는 안산에서 살고 있거든요. 안산은 사고 당일 화랑유원지에서 학생들이 모였고 그 뒤 촛불집회가 계속 열렸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집회 내내 ‘미안해’ ‘잊지 않을게’ ‘지켜줄게’ 이것뿐이었어요. 만약 초기에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정부를 더 압박했더라도 지금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했어요. 너무 답답했죠. 몇몇 언니들이랑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날 카카오톡을 하며 카페를 만들어보자 그랬죠. 상징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노란 손수건’으로 결정했어요.

-카페 회원이 빠르게 늘어났어요.

- 공감하는 엄마들끼리 한번 모이자는 뜻에서 시작했는데 깜짝 놀랐죠. 결정하고 언니들은 전남 진도 팽목항에 내려갔고 제가 4월28일 오후 늦게 만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168명이 가입한 거예요. 닷새 만에 6천 명이 가입했고, 지금은 8천 명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회원이 늘었을까요.

- 인터넷에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처음에 유가족들이 만든 카페라고 잘못 알려졌어요. 그것 때문에 해명하는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카페가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알려졌지요.

- 그 무렵 언니들이 팽목항에 가서 직접 겪은 현장 이야기와 유가족들에게 자원봉사한 이야기를 올렸어요. 많은 분들이 적극 공감해줬어요.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이 지난 5월10일 경기도 안산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국민촛불 행동’에 참석해 침통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이 지난 5월10일 경기도 안산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국민촛불 행동’에 참석해 침통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엄마들이 정말 답답해하고 목말라했던 거죠. 그걸 어디에 털어놓을 곳이 없다가 다들 카페로 왔다고 느껴요. 고맙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가만 보면 새벽에 들어오는 분이 많아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힘들어하다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5월5일에는 시위도 했어요.

- 이번 사건에서 정말 아쉬운 게 언론이에요. 언론사 한 군데만 제대로 방송해줬으면, 이렇게 정부가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줬으면 국민이 어떻게 해서라도 하게 했을 텐데, 이럴 수가 있는가 싶죠. 그게 다 아이들을 죽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니 단순히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행동하자,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 5월이 시작되니까 혹여나 국민이 자신의 가족을 돌보느라 촛불이 꺼질까 잊혀질까 걱정도 했어요. 가정의 달이니 유가족들은 더욱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그 무렵 분향소에 가봤어요. 며칠 전부터 분향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유가족인 줄 몰랐어요. 진상 규명을 위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죠. 나중에 알고서 우리가 함께 그 옆에 서주자 했죠. 그래서 어린이날(5월5일) 분향소 앞에서 유족들과 함께한 뒤 단원고까지 침묵시위를 했죠.

-집회 사진을 보니 노란 머릿수건을 쓰셨어요.

- ‘엄마’ 하면 하얀 머릿수건을 생각하잖아요. 희생적이고 매일 일만 하거나 울며 슬퍼하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나서는 엄마, 행동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가족이 처음 진도에서 대통령을 보러 간다고 길을 나섰을 때 오죽 답답하면 그랬을까, 우리라도 왜 대통령을 만나러 가지 못했는지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뭐라도 해보자. 엄마의 당당함과 의지를 나타내고자 집회의 맨 앞에서 노란색 머릿수건을 쓰기로 했죠.

이젠 침묵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어요. 분향소에도 서명대가 있는데 처음에 유가족이 그걸 직접 했어요.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진즉 우리가 지원했어야 했는데 죄송하죠. 월·수·금요일은 우리가 맡고, 화·목요일은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맡아 해요. 3인1조로 신청을 받는데 안산뿐 아니라 분당, 인천에서도 엄마들이 와요.

- 촛불집회에 참석해요. 안산문화광장에서 매일 집회가 열려요. 카페 공지에는 한 사람당 100명의 서명을 받자고 했어요. 회원이 8천 명이니까 모으면 80만 명이잖아요. 평생 그런 일을 해보지 않은 분들이 큰 용기를 내서 해요. 어떤 분은 호소문을 코팅해서 갖고 다니며 서명을 받았대요. “해보니 별거 아닙디다.” 이렇게 후기를 남기고. (웃음) 뭔가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못하다 서로 용기가 생기는 거죠. 침묵시위를 하고 나서는 회원들과 함께 서울 청계광장 집회에도 갔어요. 거기서는 침묵을 안 했어요. 이제는 침묵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조금씩 한 걸음씩 함께함으로써 서로 힘을 얻는 엄마들. 엄마들의 용기와 행동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온라인 모임은 언제까지 하게 될까요.

- 처음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이 되면 없어져야지 했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카페에 다양한 주제들이 올라오면서 정말 많이 배워요. 교육, 언론…. 세월호를 겪으면서 우리가 너무 바보 같고 ‘미개한’ 엄마였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껏 잘못된 부분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내 새끼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엄마로 살았죠. 사실 우리가 무엇의 주체가 된 적이 없었어요. 정치, 언론, 다 주체가 남자잖아요. 엄마들이 모여 교육이나 원전 같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 엄마들이 우리 사회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해요. 깜짝 놀란 일이 있어요. 해병대 캠프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서 그 부모님들이 청와대 앞에서 지금까지 계속 1인시위를 한다는 거예요.

- 언론이 관련 기사를 안 써주니까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한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한 거예요. 다섯 가족이 돌아가면서 1인시위를 158일째 해왔다네요. 그 말을 듣는데 기가 막혀 눈물이 났죠. 우리는 왜 이걸 지금껏 몰랐을까. 그분들이 외롭게 시위하다가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함께하겠다고 오셨어요. 그런 일이 우리 사회에 하나둘이 아니잖아요.

- 처음에는 진상 규명, 그런 것만 생각했죠. 지금은 우리가 모르는 곳의 작은 사고라도 엄마의 입장에서 감시하고 요구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가능케 하는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사람은 엄마

‘엄마의 노란 손수건’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첫 시위가 열린 뒤, 한 일간지에서 공동대표인 정세경씨의 당원 활동 경력 등을 언급하며 마치 정치투쟁을 일삼는 카페처럼 보도했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 회원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혜란 대표가 ‘당원도 엄마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카페의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을 회원들이 스스로 신고하고 거르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지금은 탄탄한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신문이 어떻게 공개되지 않은 개인의 사적 정보를 알게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치 카페’라는 오해를 받았는데, 회원들 사이에서 정치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 삶 자체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정치는 국민의 권리이고 의무예요. 스스로 정치적이지 않은 걸 부끄러워해야죠. 일반적으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계층이 엄마들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보니까 가장 정치적이어야 하는 사람이 엄마더라고요. 어느 부분에서도 하나 빠지지 않는 거예요. 육아, 직장, 비정규직, 급식 어느 것 하나 ‘엄마’와 연결되지 않은 게 없어요.

- 어떤 엄마가 “나 먹을 만큼 살고 시간 많다. 남편은 골프 치러 다니고 애는 대학생이다. 나 좀 써줘라”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은 평생 동안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투표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참사를 겪으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우연히 우리 카페를 알고 들어왔대요. 들어와서 보니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우리가 나서서 그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대요. 그런 엄마가 많아요. 그래서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페이스북에 글을 막 올리고 퍼오고 하는데 아무도 ‘좋아요’를 안 눌러준다고요. 주위에 오세훈을 잘생겼다고 뽑은 사람들만 있어서. (웃음)

애도의 공동체가 기쁨의 공동체 되길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 슬픔을 함께하는 엄마들을 변화시키고, 그 엄마들이 이제 다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엄마들의 눈물 어린 웃음 속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미소를 읽습니다.

- 우리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 않아요. 대통령이 퇴진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퇴진하면 뭐해요. 책임지고 낱낱이 조목조목 밝혀야죠. 그래야 분이 풀릴 것 같아요. 대통령이 책임지고 이 사건을 밝혀라, 이렇게 요구해야죠. 나중에 그 대가를 받게 하더라도 일단 진상 규명을 다 해야죠.

- 이 문제를 끈질기게 앞장서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누굴까.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엄마라고 생각해요. 엄마들이 끈질기게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 세상을 바꿔야죠. 인물보다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요. 예전에는 내 새끼, 내 가족만 껴안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는 걸 느껴요.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언니들과 밥 한 끼 먹는 게 정말 힘이 되죠. 내 재산 늘리기와 출세, 이게 행복이 아니라고 봐요. 세월호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공동체 복원을 위한 진짜 행동이에요.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도 살고, 엄마들도 살고요. 우리 모두가 살아요.

엄마들이 바꿔나가는 세상은 분명 좋은 세상이겠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엄마들이 만든 애도의 공동체가 어느 날 기쁨의 공동체가 될 거라는 작은 소망을 가져봅니다.

변호사 정연순, 녹취 전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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