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2014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사진가 노순택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노순택은 대추리·용산·쌍용차·강정·밀양 등 우리 사회에서 국가권력이 국민과 가장 날카롭게 충돌하거나 갈등하면서 오작동하는 모습을 고발하는 사진가로 알려진 탓입니다.
노순택이 찍어온 그 현장들은 저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동시에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현장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 현장을 기록했던 작가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사진을 보는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가을빛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는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서 전시를 둘러보고, 서울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 앞에서 노순택을 만났습니다.
“어떤 확신도 갖고 있지 않아요”-사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우왕좌왕하는 스타일이고, 사실 어떤 확신도 갖고 있지 않아요. 사람이나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어요. 사진은 그걸 바라보는 도구라고 해야 할까요. 늘 바라보고 미심쩍어하고 머뭇거리면서 생각과 생각을 잇곤 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원래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다가 사진으로 전공을 바꾸었어요.
=막 어른이 되었을 때 한국 사회가 참 뜨거웠던 시기였어요.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국내적으로는 군사정권의 막바지 발악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저로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어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 그분의 주검을 탈취하기 위해 백골단이 난입한 장면을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보았어요. 1면에 실렸는데, 그걸 보면서 이게 정말 사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은 분명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도구로 알고 있었는데, 제 머릿속에선 그게 사진이라는 사실과, 하지만 이런 장면은 사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뒤엉켰습니다.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에게 살해당한 윤금이씨의 주검 사진도 그랬어요. 누군가 악의적으로 조작해낸 게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들었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진들입니다. 그분의 추도식이 탑골공원에서 열렸는데 뼛가루를 뿌리려는 순간, 최루탄이 터지면서 제 앞의 시야가 온통 하얘졌어요. 멍하게 서 있던 제 자신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이 기억은 제 머릿속에서 강화돼왔는데, 그래선지 그 장면을 생각하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그 무렵 사진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고 여겨지는 그 매체와 그것의 사실감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사진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죠.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치열했던 현장을 돌아다녔고 직접 그 현장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전시회에서 본 현장 사진들은 의외로 거리를 두었다는 느낌이 있어요. 현장에서의 격렬했던 감성과 그것을 기록 할 때의 거리감을 어떻게 유지하죠.
=거리에 대한 감각, 언제 어디에서 다가가고 언제 어디에서 물러나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칩니다. 하나 매번 실패합니다. 실패할지라도 그 감각을 놓을 수는 없어요.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더 다가가거나 더 물러나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것에 대한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죠. 대추리 작업을 할 때는 그 거리감이 처절하게 무너져 힘들었습니다. 마음의 온도와 작업의 온도에 대해 늘 생각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온도를 일치시키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습니다. 따르고 싶었죠. 그렇지만 이제 그걸 추구하지 않게 되었어요. 어떤 분은 저를 활동가(액티비스트)라고, 다른 분은 저널리스트, 또는 아티스트라고 하거든요. 사실은 이 세 가지가 다 맞물려 있어요. 경계에서 놀고 있죠. 경우에 따라 변장을 합니다. 얄미울 수도 있고, 가련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나 맥락으로나 종점은 있습니다. 바로 ‘작업’일 텐데 그걸 위해 변명거리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긴급한 연대에 동참하는 ‘활동’도, 저널리스트의 입장으로 현장을 ‘기술’하는 것도.
권력자의 기록에 금을 내다
-어떤 대화를 건네고 싶은 건가요.
=처음에는 사회참여적 작업을 해온 선배 사진가들의 활동에 호감을 가졌고 그걸 이어가고픈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바라볼수록 사람에 대해서도, 아니 사진에 대해서도 확신이 사라졌어요. 확신범의 유전자를 가지지 못했나봅니다. 사진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거나 감동을 주고픈 의욕이 사라졌어요. 대신 제가 보았던 것에 대해 품었던 의문을 상대방에게 전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제가 가진 물음표, 그것이 실없거나 엉뚱할지라도, 세상사의 흔적인 사진으로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나요.
=아뇨. 파문 같은 격렬함은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제가 건네고 싶은 건 ‘석연치 않음’이죠. 제 작업을 보면서, 우리 사는 사회가 질서정연하거나 매끈하지 않구나, 저 사람의 삶이 혹은 저 공동체의 삶이 저렇게 매끄럽지 않은데 내 삶이나 내 공동체의 삶이 매끄러울 수 있을까, 처음 봤을 때 이미지는 재밌었는데 그 이미지가 생산된 맥락은 재미가 없네, 이 불협화음은 뭐지, 이렇게 잠깐 또는 길게 사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사고를 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지난 10여 년간 기록해온 현장이 어찌 보면 패배의 현장인 건데요, 그 역사가 사진가로서의 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글쎄요. 부인할 수 없겠지요. 만사가 싫어질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가까워요. 대추리에서 강제집행이 있던 날, 대추분교가 부서지던 장면을 잊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있었죠. 거기서 뛰어놀던 마을 아이들, 그리고 어린 제 아이에게 ‘네가 놀던 그 학교가 이제는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해서 좀 울었습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믿음을 많이 지우게 됐어요.
-그래도 현장을 계속 기록하는 동력은.
=궁금합니다. 그 시공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중계되고 있는지. 누군가의 처연함보다 누군가의 야비함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근엄하게 포장돼 있거나 질서정연해 보이는 듯한 국가의 작동에서 오작동을 발견하려고 해요. 일종의 조소, 쓴웃음 같은 거죠. 거기에 당대 권력을 잡았던 사람들의 기록 방식을 주목하고, 그들의 기록에 금을 내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벌인 짓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만 이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간은 허술한 반격 같은 거죠. 국립현대미술관의 근사한 벽에 용산 참사의 참혹한 풍경, 그러나 멀리서 보면 추상화 같은 망루의 풍경을 걸어두었는데요. 용산 참사의 주역들, 정치 지도자와 행정가들이 이 장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사건이 지나가버린 뒤라도,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요.
말을 건네는 것은 사진 아니라 맥락수상작인 은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을 찍은 작품입니다. 어느덧 흔해진 우리의 풍경인데, 일일이 기록해놓은 그 사진은 우스꽝스럽게도 보입니다. 모두 기록자가 되는 시대,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넘쳐나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장에는 ‘우리를 공기처럼 감싸고 있는 것은 분단만큼이나 사진이다’라는 작가의 글이 걸려 있습니다.
-수상 작품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사진이 생산되는 과정, 특히 사회적 갈등의 현장이 이미지로 생산되는 과정의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공간에서 각자는 비슷한 카메라를 들고 비슷하거나 독특한 자세로 사진을 찍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똑같은 장면을 찍은 사진일지라도 사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미지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맥락에 의존하지요. 사진은 모호한 매체입니다. 명확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하고 불편부당한 매체가 아닙니다. 같은 사진도 놓이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전교조 홈페이지에 실렸던 북한의 매스게임 자료 사진이 마치 친북의 증거물인 양 비난받았던 적이 있는데요. 똑같은 사진이 더 고해상도로 사이트에도 실려 있었어요. 하나 그것은 반북의 증거물이었죠. 사진은 침묵하고, 맥락이 말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맥락에서 사진을 찍고, 저마다의 맥락에 사진을 위치시키죠. 자신의 주장을 위해, 혹은 보도를 위해, 또는 채증을 위해. 저는 비슷하면서도 똑같을 수 없는 사진 생산의 천태만상에 대해 생각해왔어요.
오늘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진의 풍경을 담은 또 다른 연작도 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날 풍경을 담은 작업입니다. 예전 같으면 국가적 경축일에 꽃다발이나 만국기를 들고 갔을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사진기를 손에 쥔 거죠. 이 근사한 국가 경축의 장, 그 시공간의 장면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내가 그 시공간에 있었음을 증거하고 싶은 욕망이 넘실대는 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이념 불문, 지위 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강박과도 같은 욕망이 돼버렸죠.
-모두에 의해 손쉽게 생산된 이미지를 다 묶으면 이 세계가 보일까요.
=아니요. 오히려 더 흐려질지도 모릅니다. 사진은 이미지 생산의 민주주의를 관철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생산이 넘친다고 해서, 혹은 표현과 발언이 넘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른바 민주화일 수 있는가의 문제는 다른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위험한 질서가 금기시하는 발언과 표현은 여전히 갇혀 있지 않나 싶어요. 예컨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 세월호의 진실을 둘러싼 발언들은 감시받고 있잖아요. 사진이 많아졌다고 해서, 혹은 발언과 표현의 양이 많아졌다고 해서 실체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는가, 그건 다른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촛불집회나 대규모 집회 사진을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러한 군중의 의사표현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궁금해요.
=없어요. 전혀 없어요. 저는 군중이 무섭습니다. 하나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 군중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교차합니다. 군중을 이루는 것은 개개인이지만 멀리서 바라볼 땐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거든요. 한편으로는 근사하다는 생각도 하고, 그것의 에너지를 느끼지만, 동시에 군중의 무기력함, 어쩌다 표출되는 군중심리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언뜻 아름다워 보이지만 과연 아름답기만 한가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그에 비하면 개인을 찍은 사진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 보이는데요
=아뇨. 만약 메시지를 감지했다면 그건 사진이 쏜 메시지가 아니라, 사진 속의 인물이 쏜 메시지겠지요. 제게 개인은 군중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철조망 앞에서 정면으로 찍은 사진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요.
=신부님을 가까이서 뵈어왔죠. 유신 시절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일컫는 인혁당 사건 때부터 지금까지 탄압과 투옥을 무릅쓰고 싸워오셨어요. 어느 순간 이분의 발걸음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거라는 착시의 시절도 있었죠. 하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거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일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가권력의 오작동은, 그 안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있었죠. 요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이 넘쳐나는데, 제가 보기에 문 신부님은 자신의 온 생애를 예수의 말씀에 의탁해 실천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존경한다면서 문정현 신부님을 불온시한다면 웃기는 일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슬플 정도로 웃긴 사회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사제가 고통받는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자 철조망 앞에서 젊은 경찰들 앞에서 신음하는 이 모욕적인 장면이 당신에게 무엇인지 묻고 싶었어요. 이분 착한 분입니다, 근엄한 분이십니다, 이런 게 아니라 그 모습이 마치 거울처럼 보이기를 바랍니다. 이분이 근사하게 보인다면 당신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 반대로 이분이 정말 나쁜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대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요.
-계속적인 질문 던지기는 굉장히 고된 작업인데, 어느 비평가가 당신을 ‘앓는 작가’라고 표현했어요. 본인을 이끄는 힘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지병입니다. 지병은 당장 치명적이지 않을지라도 불치의 병이잖아요. 잔병 있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니 오래 작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앓음을 낫고자 하지도 않아요. 스스로 초래한 병인데 낫기를 바라겠어요? 마음 안에 낙관이라곤 없습니다. 만사가 비관적인데도 궁금함은 꿈틀대요. 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은 궁금해요. (사진)이라는 이번 전시는 타인에 관한 것이지만, 사실은 저 자신에 관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자조적인 작업이죠.
좌충우돌 우왕좌왕… 몰라서 가는 길-답을 찾을까요.
=아뇨. 답을 찾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약속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찌됐건 삶은 계속되고, 의문은 남을 것이며, 그러니 작업도 이어지겠지요. 그만해라, 지겹지도 않냐, 이런 말은 누군가로부터의 질타만이 아니라 저 스스로도 매 순간 해요. 몸부림친들 달라질 게 무엇인가. 모르죠. 그걸 알면 작업을 진즉 때려치웠죠. 내가 어떻게 나를 찾아,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남을 어찌 알겠어. 매번 좌충우돌하고 허우적댑니다. 매번 우왕좌왕하고 허둥대겠죠. 어쩔 수 있겠어요.
-사진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것이 처음인데,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아요. 어깨가 무겁겠다고들 하지만,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짊어진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히 어깨가 무겁습니다. 과분한 축하와 격려를 받았어요. 특히 당신들의 고단한 모습을 찍도록 허락해주신 분들, 용산의 유가족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강정 사람들, 밀양 사람들이 따뜻하게 인사해주셨어요. 당신들에겐 유쾌할 수도, 근사할 수도 없는 장면들일 텐데 그런 장면들을 미술관 벽에 걸고, 상까지 받게 된 의미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하고 격려해주셔서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의 사진들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요. 마음속에 작은 회한이 파문을 일으킵니다. 이 생각에 머무는 동시에, 뜨거웠던 현장에서 항상 빛의 속도로 순간을 담는 노순택의 내면에 있는 ‘머뭇거림’과 ‘의문’을 떠올립니다. 우리에게는 그 머뭇거림이 없었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자신에게건, 이 사회에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자세가 없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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