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핵’의 핵, 대전

비상계획구역이 800m밖에 안 되는 원자로가 위치한 대전,
원전 수출 전제하에 ‘핵연료 공급회사’ 증설도 계획돼
등록 2013-07-10 11:49 수정 2020-05-03 04:27
대전에 위치한 한전원자력연료(주)가 공장 시설 증설을 준비 중이다. 핵연료를 공급하는 이 회사 공장 옆에는 연구용 원자로가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다. 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 본체를 제작하는 모습.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 제공

대전에 위치한 한전원자력연료(주)가 공장 시설 증설을 준비 중이다. 핵연료를 공급하는 이 회사 공장 옆에는 연구용 원자로가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다. 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 본체를 제작하는 모습.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 제공

대전에서 탈핵(탈원전)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대전에 있는 한전원자력연료(주)가 공장 시설을 증설하 려 하는데, 그것 때문에 지역에서 논란이 일 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환경 단체는 공장 증설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시작했다고 한 다. 얘기를 듣자마자 당장 가겠다고 했다. 한 전원자력연료(주)는 우리나라 핵발전의 시작 점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핵’ 대신 ‘원자력’을 선호하는 이유

한전원자력연료(주)는 말 그대로 원전에 서 사용할 핵연료를 공급하는 회사다. 1982 년 설립될 때는 이름이 ‘핵연료주식회사’였 는데, 1999년에 ‘원자력연료주식회사’로 바 꿨다. 사실은 ‘원자력’보다는 ‘핵’이라는 용어 가 정확한 것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발전하는 곳이 원전이기 때문 이다. 그렇지만 원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굳이 ‘원자력’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핵’이 라고 하면 ‘핵무기’가 떠오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핵발전에 쓰고 난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 들기 때문에 핵발전과 핵무기는 본질이 같은 것이다.

어쨌든 ‘핵연료주식회사’를 ‘원자력연료주 식회사’로 굳이 이름을 바꾼 건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겠 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이 회 사가 공장 증설을 하려 하자 대전의 단체들 과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무런 공론화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증설을 하 는 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원전에서 사용되는 핵 연료는 어떻게 공급되고, 쓰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처리되는 것일까? 핵발전의 연료는 우라늄이다. 우라늄은 매장량이 고르게 분 포돼 있지 않다. 세계에서 우라늄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은 오스트레일리아다. 오스트 레일리아는 전세계 우라늄 매장량의 27%를 차지한다.

천연우라늄은 그대로 연료로 쓰지 못한 다. 천연우라늄 가운데 99% 이상은 핵분열 시키기 어려운 우라늄 238이고, 핵분열시키 기 쉬운 우라늄 235는 0.7%밖에 포함돼 있 지 않다. 그래서 핵연료로 쓰려면 ‘농축’이라 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농축’은 우라늄 235 의 비율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농축 우라늄을 100% 수입한 다. 연간 500t 정도의 규모다. 수입된 농축 우라늄은 대전에 있는 한전원자력연료(주) 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원전에 사용할 수 있 는 형태로 다시 가공된다. 그런 다음 전국에 있는 23개 원전으로 옮겨져 발전에 쓰인다.

지금 있는 원전들에 공급하는 핵연료를 만드는 것은 현재 시설로도 충분하다. 그렇 다면 지금 한전원자력연료(주)가 공장 증설 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전 확대와 원전 수출 정책과 관련돼 있다. 한전원자력연료 (주)는 2030년까지 추가로 10기의 원전을 더 짓고, 아랍에미리트에 건설 중인 원전에서 사용할 물량까지 고려하면 시설이 모자란다 는 것이다.

만약 원전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손해 보는 장사를 하면서 원전을 수출하는 정책을 포기한다면? 당연히 시설 증설도 필 요하지 않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30km 지역도 오염돼

한전원자력연료(주) 바로 옆에는 한국원 자력연구원이 있다. 대전 시민들도 잘 모르 는 사실이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에는 ‘하나로’라는 30MW짜리 연구용 원자로가 있다. 그리고 대전 시내에는 방사성폐기물이 꽤 쌓여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전원자 력연료(주),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대 전분소에 쌓여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 물이 3만여 드럼이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도 2.5t이나 된다고 한다.

사실 대전에 있는 원자력 시설은 종종 논란이 돼왔다.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2004년 4월에는 중수가 누출됐고, 2005년 6월에는 빗물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 2006년에는 작업자 2명이 피폭됐고, 2007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준비 과정에서 우라늄 시료 2.7kg이 분실되기도 했다. 연구용 원자로라고 해도 원자로는 원자로다. 그래서 사고가 날 경우에 대비해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라는 것도 설정하도록 돼 있다. 긴급보호, 갑상선약 배포 등을 준비해야 하는 구역이다. 고리·월성·영광·울진에 있는 원전은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8~10km로 돼 있다. 그런데도 외국에 비해 너무 좁게 설정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그 범위를 기존 20km에서 30km로 늘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후쿠시마 사고 때만 하더라도 30km 바깥에 있는 지역까지 심하게 오염됐기 때문이다.

대전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의 경우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800m까지로 돼 있다. 아무리 연구용 원자로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이는 인근 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800m라는 근거도 전혀 없다. 연구용 원자로이고 용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까운 주거지역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대규모 주거지역이 형성된 송강동·관평동 지역까지의 거리는 불과 반경 3km이내라고 한다. 그런데도 아무런 안전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대전 지역에서 탈핵(탈원전)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 않을까? 이런 의문은 이번 강연회를 통해 어느 정도 풀렸다.

10명 중 1명이 원자력 관련 시설에

지난 7월1일 대전 한밭생협 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한전원자력연료(주)의 노동조합 간부들도 참석했다. 그분들은 생존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도 이해해달라고 했다. 생협에서 온 분은 “당장 원전을 모두 폐쇄하자는 것도 아닌데 생존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앞으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소통하는 틀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대전 지역이 처한 현실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유성구의 경우 10명 중 1명이 원자력 관련 시설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원전에 반대하는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니 대전은 핵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의 중심에 놓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 지역에서 쓰는 전기는 주로 외부에서 끌고 오지만, 대전 자체는 핵의 위험, 핵을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짚어야 할 건 탈핵(탈원전)의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독일만 하더라도 2000년에 탈핵 결정을 했지만, 모든 원전이 폐쇄되는 것은 2022년이 되어서다. 그때까지는 원전을 줄여나가기 때문에 원전 관련 산업이 모두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전을 폐쇄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려면 새로운 일들도 필요하다.

물론 탈핵(탈원전)의 과정에서 변화가 주는 불안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할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런 문제를 정책으로 푸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다.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노동자의 생존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만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