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도 롤도 일관성도 없는 난장판의 매력
소란하고 역동적이며 변덕스럽게 무작정 버텨오기
무엇을 담아도 이상하지 않을 마법의 그릇이 되다
여기 이상한 예능이 있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르와 콘 셉트 같은 명확한 틀이 존재한다. 그 안에 고정출연자와 게스트가 들어가 틀이 규정해 놓은 롤(role)을 매주 수행한다. 이 틀이 제 대로 작동하면 프로그램은 성공적이라는 평 가를 듣는다.
그런데 이 이상한 예능 프로그램은 다르 다. 여기에는 고정출연자와 카메라만 있다. 틀이 없다. 틀이 없기 때문에 미리 규정된 롤 도 없다. 출연자들이 수행하는 롤은 매주 바 뀐다. 그래서 다음 내용을 가늠하는 것이 사 실상 불가능하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으 로서 이건 사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다른 프로그램이 이런 태도를 취했다면 “도 대체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으 며 일찌감치 종영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들은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버텨내는 동안 프로그램의 이름 자체가 콘셉트가 되고 틀 이 되었으며 출연진은 장르가 되었다. 이제 이 프로그램은 그 안에 무엇을 바꿔 담아도 이상할 게 없는 그릇이 되었다. 그렇게 이 8주년을 맞이했다.
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한다 면, 거기에는 ‘난장’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 릴 것이다. 봅슬레이를 타고 레슬링을 하고 가요제를 치르고 돈가방을 가지고 튀더라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코드는 언 제나 난장이었다. 이라는 난장의 소란스러움은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동물처럼 구르고 뛰었던 순간들, 그 소리와 흙냄새 같 은 것을 환기시킨다. 마음에 남아 있는 단 하 나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확실 한 건 우리 모두 이 바보 같은 소란스러움에 위로받은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이 조금 변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전의 이 누 구에게 어떻게 보이든 신경 쓰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노는 초등학생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은 옆 동네 여학생에게 어 떻게 비칠지 의식하고 몸짓 하나라도 신경 써 가며 노는 중학교 2학년생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8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출연진 모 두 나이가 들었고, 그들 모두 위상이 전과 같 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결국 이 아닌가 싶어진다. 떠올려보면 ‘한 결같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 미덕이었던 적이 없다. 의 혼은 근 사하고 세련된 일관성이 아닌, 소란스럽고 역동적이며 변덕이 심하고 싫증을 자주 내는 그 상태로 무려 8년을 버틸 수 있었던 생명력 에 있다. 지난 방송에서 정준하 과장은 무한 상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 글이 잡 지에 실릴 시점에, 정준하 과장은 치킨집을 개업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지난 8년 동안 온몸으로 증명 한 것, 삶을 관통하는 가장 치명적인 지혜가 바로 거기에 있다. 버티어내는 것 말이다.
허지웅 문화평론가예능을 뛰어넘는 예능 프로그램 8년
연출자의 끼와 출연진 열정이 빚어낸 예능의 신기원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이 전파를 탄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다. 2005 년 4월 이란 이름으로 한 예 능 프로그램의 코너로 시작된 이 ‘무모한’ 프 로젝트는, 2006년 5월 현재의 이름으로 독 립 편성돼 지금까지 327번째를 이어오고 있 다. 특히 8주년 특집으로 마련된 ‘무한상사’ 편은 이 시대의 아픔인 직장인의 정리해고 를 뮤지컬 형식으로 다루어 시청자에게 웃 음 이상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토록 꾸준한 인기를 얻은 데는 세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 김태호 PD의 뛰어난 연출 역량이다. 그는 적 절한 주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 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지금까지 그가 선정한 주제들은 무모하면서 무리하기 도 했지만, 무한하게 상상 가능한 것들이었 다. 그는 포맷과 임기응변에 능하다. 매년 개 최하는 가요제나 매년 계속되는 달력 촬영 과 배달 코너, 그리고 필요에 따라 삽입하는 ‘무한상사’ 같은 고정 포맷은 시청자의 기다 림에 보답하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 외의 코 너들은 대개 즉흥적이고 자생적이다. 김태 호 PD는 예견 가능한 기대와 예측 불가능한 충격 효과를 잘 배합한다.
두 번째는 각기 개성이 강한 출연진 7명의 열정이다.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서 리더의 소중함을 외치는 유재석은 사건 속에서 능 력의 부족함을 순수한 헌신으로 메울 수 있 는 유일한 존재다. 2인자 거성 박명수는 막 말에 이기적 행동으로 미움을 살 때도 있지 만, 오로지 그가 하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특유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쩌리짱’이라 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정준하는 신체와 어 긋나는 바보짓과 애교라는 그만의 독특한 양념을 가지고 있다.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 한다는 정형돈은 요즘 제법 웃기는 중이다. 저질·배신의 아이콘 노홍철은 일관된 야비 함의 캐릭터를 승화시켜 대적할 자를 없게 만들었다. ‘꼬마 석사’ 하하는 석사에 어울리 지 않게 떼쓰는 듯 몰상식한 행동을 보이지 만, 꼬마이기 때문에 귀엽다. 중간에 합류한 길은 다음을 대비하지 않는 과한 의욕으로 욕을 먹지만, 반전의 카드가 있어 사건의 캐 스팅보트를 간혹 쥐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웃음 이상의 개념 예능을 포 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녹화 현장 배경으 로 간간이 엿볼 수 있는 정치·시사적 메시 지, MBC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장기간 제작 을 포기한 용기, 시대의 아픔을 웃음으로 안 으려는 따뜻한 마음이 시청률 그 이상의 의 미를 갖게 한다. ‘무한상사’ 편은 비록 평균보 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이 지속돼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시청자 에게 알려주었다. 이 세 가지가 무한한 도전 속에서 예능 이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만의 비결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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