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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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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빠져, 사랑해

등록 2013-03-29 17:51 수정 2020-05-03 04:27

얼마나 어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린 나는 ‘사랑한다’ 또는 ‘좋아한다’와 ‘불쌍하다’가 동의어인 줄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 좋으면 ‘불쌍하다’고 표현해서 엄마한테 자주 혼났다. 불쌍한 상대가 주로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 어린 동생이 귀엽고 보살펴주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애정을 느낄 때마다 “불쌍해“ 하면서 뽀뽀를 했을 거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천직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러면 엄마는 십중팔구 야단을 쳤다. 야단맞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좋다고 말하는데 왜 혼나는지 몰랐다. 그 표현이 ‘사랑한다’, 또는 ‘좋아한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어린 나는, 오랫동안 ‘불쌍하다’는 애정 표현을 썼다고, 한다. 유전된 것이 마음인지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도 어렸을 때 자주 불쌍하다는 말을 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아빠를 보고 불쌍하다고 했고 자기가 아끼는 강아지인형을 불쌍하다 했다. 어느 날 “침대에서 쿵 하고 떨어져 잠이 깼더니 엄마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어.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어”라고 했다. 아이 역시 정체를 알 수없는 감정, 어렵고 부족하고 힘겨워 보이는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마음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동정심이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곤경에 처한 다른 존재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운 감정.

21세기 초반에 조용환 변호사가 쓴 글을 보면서 나와 내 딸의 감정의 정체를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권운동가를 일러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주장이 언제나 정치적·이념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지탱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조건에 관한 깊은 직관이다. 고통받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자 불의에 대한 원초적인 항거이다…. 인권운동가들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직관적인 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다수 인권운동가들은 이런 믿음에서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이게 바로 인권운동가들을 정치운동가나 법률전문가나 인권학자와 구분하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이른바 초발심인 것이다. 21세기를 맞으며 우리의 소중한 초발심을 되새겨보면서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운동 하는 나는, 천직에 종사 중이다.

결국 나는 불쌍하다거나 눈물이 난다거나 하는 약한 감정을 신뢰하게 되었다. 딸에게도 그런 감정 따위 필요 없다, 사회를 살아가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조언 따위 해줄 생각이 없다.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리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자기를 버리고 그곳으로 가라.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면 감정을 믿고 따라야 한다. 약아빠진 처세술이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한다. 흔들리고 믿을 수 없는 감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기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누구일까?’라는 원점 같은 질문이 괴롭힐 때마다 심장을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곳으로 가라. 두근거리는 곳이 아프리카 수단이라면 그곳으로 가고, 카리브섬의 어느 바닷가라면 그곳으로 가라. 세상 사람들의 셈법으로 계산되지 않는 약한 마음이 원하는 곳이면 언제라도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약해빠진 너를 응원해

오늘도 아이는 사자굴 같은 학교로 씩씩히 걸어서 갔다. 나는 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고 온 아이의 하루하루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외치는 다수의 사회에서 휘둘리고 때로는 짓밟혀도 그들 방식처럼 살지 않을, 약해빠진 내 딸을 응원할 것이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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