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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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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다쳤을 때, 배상할까 치료할까

동물을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물건으로 보는 대한민국… 실효성 없는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정하는 운동 시작돼
등록 2013-03-23 15:55 수정 2020-05-03 04:27

국가를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 을 수 있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상의 국가는 두 종류로 나눌 수도 있다. 하나는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국가고, 다른 하나는 동물을 생명으로 보는 국가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속할까?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전자 에 속한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어린이가 장애인 안내견과 놀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어린이가 장애인 안내견과 놀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오스트리아, ‘시가’ 넘는 치료비도 배상해야

‘동물이 물건인지 아닌지가 무슨 의미가 있 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 을 가구나 가전제품 같은 물건으로 취급하 는 것과 생명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 가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 이 반려동물과 함께 가다가 동물이 차에 치 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 경우 사고를 낸 운전 자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어떻게 될까?

만약 동물을 다른 물건과 동일하게 본다 면, 다친 동물 대신 새로운 동물을 살 수 있 을 정도의 돈을 배상하면 될 것이다. 일반적 인 물건이라면 수리비가 물건의 시가보다 많 이 나올 때는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가 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얘기는 받 아들일 수 없다. 반려동물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교감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은 다친 동물 을 치료할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동 물을 다치게 한 운전자의 보험회사는 동물의 시가에 해당하는 30만원만 배상하겠다고 했 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치료비와 위 자료까지 청구했다. 우리나라 민법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규정이 없지만, 1심 법원은 반려 동물의 특수성을 인정해서 치료비와 위자료 까지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이상 반려동물 과 관련해서 이런 분쟁은 계속 생길 수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한 나라에서 는 사정이 다르다. 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 등이 그런 나라들이다. 오스트리아는 1988 년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 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물이 다쳤을 때는 치 료비를 배상하도록 명시했다. 치료비가 동물 의 교환가치(시가)를 넘을 때도 실제 들어간 치료비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민법에 넣은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을 강제집행(압 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도 추가했 다. 반려동물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기 때문 에 압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동물이 물건이냐 아니냐는 동물을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에 관한 문제다. 이 기 본적 관점의 차이는 더 구체적인 법률을 통 해서도 드러난다. 인권을 보호하는 법률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그런 법률이 필요하다. 그래서 동물복지법·동물보호법 같은 법률 이 나라마다 만들어져 있다. 대한민국에도 동물보호법이라는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권에 관한 법조항이 있어도 지켜 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동물보호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을 유기 (遺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 동물을 유 기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 록 돼 있다. 이런 법조항이 있음에도 한 해에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게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과태료가 부과되는 경우 도 거의 없다.

악마 에쿠스와 캣맘 폭행

동물보호법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 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을 금지하 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 렇지만 실제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기관도 동물 학대 사건에는 소극적으로 법을 적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4월 발생한 ‘악마 에쿠스’ 사건이다. 이는 에쿠스 승용차가 개의 목을 트렁크에 매단 채 질주해서 개가 죽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수사기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런 현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범죄’라는 의식이 없었던 수십 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에 대한 적대는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인천에서 문제가 되었던 ‘캣맘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여성을 때리고 음식물쓰레기통에 거꾸로 집어넣는 행동을 한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나마 있는 동물보호법도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현행 동물보호법 자체도 실효성이 약하다. 예를 들어 동물을 운송하는 사람은 운송 중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런 조항을 어기더라도 운송인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해 7월에는 개를 짐짝처럼 층층이 포개서 운송하던 트럭이 발견되기도 했다. 수백 년 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진 흑인 노예들 중 3분의 1이 생명을 잃었던 비인간적인 현실을 지금 동물들이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인권을 짓밟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더 강력한 인권법이 필요했듯이, 동물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예 법의 이름부터 동물보호법이 아니라 ‘동물복지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국가의 도덕성을 알 수 있는 기준

지난해 하반기부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녹색당, 그리고 동물에게 관심 있는 국회의원들이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연속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를 정리해서 올해 상반기 중으로 획기적인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법률가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권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이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듯이, 동물의 생명을 옹호하겠다는 젊은 변호사들이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동물보호법 개정은 방대한 작업이다. 인권에 관한 법이 여성·장애인·성소수자·청소년 등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듯이, 동물보호법도 반려동물·농장동물·실험동물·전시동물 등 동물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마다 첨예한 이슈가 있고, 산업적 이해관계가 걸린 부분도 많다. 이윤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돼온 사회였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명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회에서는 인간 학대도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동물은 사람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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