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가 ‘2012 FIFA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축구를 가장 잘한 선수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인했다는 뜻이다. 4년 연속 수상. 세계 축구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발롱도르는 ‘황금빛 공’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성장호르몬 장애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의 키 작은 소년, 메시가 ‘초능력자’ ‘외계인’이라 불리며 “역사상 최고의 선수”(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거듭난 데에는 그의 소속 구단인 FC 바르셀로나의 시스템이 큰 구실을 했다. 메시는, 기술보다 동료애·헌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우며 질병을 치료했다.
‘바르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명문구단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협동조합기업이다. 20만 명 가까운 조합원이 주인이다. 첼시처럼 구단주가 전횡을 일삼을 수 없다. 홈구장 ‘캄프누’ 2층 축구박물관 입구의 ‘민주주의’ ‘바르사의 주인은 조합원’이라는 문구, 관중석에 노란 글씨로 적힌 ‘ME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이라는 슬로건은 결코 내용 없는 홍보용 수사가 아니다(‘신문 그 이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어떤 신문을 떠올리지 마시길). 회비 150유로를 내면 전세계 누구나 바르사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18살 이상으로 1년 넘게 조합원이면 누구나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고, 6년마다 캄프누에서 열리는 클럽 회장 선거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다른 구단 팬클럽 회원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권리다. 바르사는 협동조합이므로 잉여 처리 방식도, 주주에게 우선 배당하는 주식회사와 다르다. 적립금을 쌓고 유·무형의 인프라 개선을 앞세운다. 메시 등 바르사 소속 선수의 다수가 바르사 유소년팀 출신이라는 사실은 협동조합 시스템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협동조합도 기업이다. 주식회사가 주주 이익을 앞세우듯,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중시한다. 그런데 둘은 많이 다르다. 주식회사의 작동 원리는 ‘1주 1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차별한다. ‘1주 1표’는 대주주의 지배 수단이다. 협동조합의 운영 원리는 ‘1인 1표’다. 납입금의 다소와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이 ‘한 표’씩 행사한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달리 민주적이다. 그리해도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협동조합기업은 공장(122개)·금융조직(6개)·소매사업체(14개)·연구센터(7개)·대학(1개)·국제무역회사(14개) 등으로 이뤄진 거대 기업군이다. 고용인원 10만 명에 총매출 139억유로(2009년 기준)다. 캐나다 퀘벡주에선 주민의 70% 남짓이 각종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퀘벡 협동조합운동의 상징이자 중추인 데잘댕금융그룹은 인구 800만 명의 퀘벡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이자 가장 큰 민간 고용주다(조합원 540만 명, 직원 5만 명, 총자산 215조원).
몬드라곤과 퀘벡, 바르사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주식회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크고 강한 기업일 수 있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주식회사가 아니어서. 몬드라곤에선 해고가 없다. 소득 격차도 적다. 최하위 신규 노동자와 최상위 관리자의 소득 배분율이 평균 1 대 5 수준이다. 거액을 받고 삼성 로고를 유니폼에 새긴 첼시와 달리 바르사는 유니세프 로고를 유니폼에 노출하는 대가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에이즈 위험 퇴치에 쓰라며 클럽 수익의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해왔다.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협동조합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됐다. 5명만 모이면 각종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다. 대리운전기사, 동네 슈퍼 주인들, 통신 소비자들이 협동조합 설립에 나서는 등 법 시행의 반향이 크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언젠가, 한국에서도 바르사와 몬드라곤과 데잘댕이 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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