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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예산 100조원, 걱정이다?

등록 2013-01-11 02:10 수정 2020-05-02 19:27

2013년 정부 예산을 두고 말이 많다. 표적은 복지 예산이다. 넓은 의미의 복지(보건·복지·노동) 예산이 97조4천억원. 여기에 민간위탁 복지사업비를 더하면 103조원이다. 총예산 342조원의 30%를 넘어서며 ‘복지 예산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정부 예산안을 여야가 해를 넘기며 협의해 합의 처리했으니, 비판이 나온다면 입법·행정부 밖 시민사회 쪽이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이런 것. 저소득층 의료 지원 예산 2824억원, 학교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823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의 한 끼 급식비는, 보건복지부의 권고가 3500원인데, 1420원에서 1520원으로 기껏 100원 올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날선 비판의 주역은 떠나는 이명박 정부다. 명분은 국방 예산 삭감 반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안보를 희생해 복지를 하겠다는 건 옳은 방향이 아니다” “택시 지원할 돈이면 북한 장사정포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은 “안보 없이는 복지와 민생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상은 이렇다. 국회가 정부의 국방 예산안을 심의하며 2898억원을 삭감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삭감 폭이 정부안의 1%도 안 될뿐더러 최종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4.2% 증액됐다. 총예산이 5.1%, 복지 예산이 5.2% 증액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희생’ 운운할 일이 아니다. 북쪽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장사정포는,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1차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다. 1조원으로 그 위협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면 어느 정부가 그걸 하지 않았겠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주장은 저잣거리의 사기꾼도 민망해할 혹세무민·참주선동이다.
왜 이런 막말이 난무하는 것일까. “복지 확대를 걱정하는 보수세력이 많다”는 극우 논객 조갑제씨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정권을 잡았으니 대선의 핵심 화두였던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팽개치자는 강경 보수세력의 흔들기인 셈이다.
그러나 그리하면 한국 사회가 무너질지 모른다. 각 언론사가 1월1일치에 돋보이게 다룬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조사에서 양극화 및 격차가 심각하다는 답변이 89.4%에 이른다. 새 정부의 최대 중점 과제를 두고도 조사(복수 응답)에서 양극화 및 빈부 격차 해소(41.8%)와 청년 일자리 창출(39.1%)이 첫손에 꼽혔고, 조사에서는 59.2%가 경제 문제(성장·양극화해소·경제민주화) 해결을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 관심사라는 얘기다. ‘불안’의 징후는 또렷하다. 여러 조사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긴다는 이는 10명에 3명꼴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조사를 보면, 대선 지지 후보에 따라 선호하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크게 엇갈린다. 박근혜 지지자는 ‘성장 우선’(49.8%)이 ‘복지·분배 우선’(46.0%)을 근소하게 앞섰다. 문재인 지지자의 77.9%가 ‘복지·분배 우선’(성장 우선 21.8%)을 꼽은 것과 대비된다.
성장과 복지는 원칙적으로 상충하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를 야기한다. 한정된 재원을 대기업에 먼저 투입할지, 중소기업·자영업자·사회적 약자에 먼저 투입할지 따위를 가르기 때문이다. 그 우선순위는 1차적으로는 행정부의 선택 및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에 달렸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사회세력 간 힘겨루기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대선은 끝났지만, 한국 사회의 향방과 개개인의 삶을 둘러싼 쟁투는 쉼없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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