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로 개인을 배제하는 방식, 자본의 노동자 배제 논리와 닮아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의 이유는 사 쪽의 정리해고였다. 정리해고 사유는 ‘경영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본질은 2005년 쌍용차의 ‘구세주’로 등장한 상하이차가 핵심 기술을 유출하고 회계를 조작해 회사를 법정관리 체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정리해고 뒤 법정 관리인은 회사의 운명과 국가 경제를 대의로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정부와 언론은 그 논리를 차용했다.
공지영이 ‘첫 르포르타주’란 타이틀을 걸고 펴낸 가 일부 글을 ‘예외적 인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벌어진 논란은 3년 전 기억과 겹친다. 하종강과 이선옥이 과 에 기고한 칼럼과 르포르타주의 일부는 22~24쪽에 공지영이 쓴 것처럼 옮겨져 있다. 책 말미 ‘출처 및 참고자료’에 하종강 칼럼을 표시했지만, 22~24쪽만 봤을 땐 인용 글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 다른 인용 글은 앞에도 저자를 밝히고 있고 들여쓰기도 돼 있지만, 유독 22~24쪽만 달랐다. 하종강과 이선옥은 문제를 제기했고, 출판사인 휴머니스트 편집진은 공지영을 대리해 ‘울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정작 당사자인 공지영은 문제를 외면했다.
그러자 논란이 이상하게 흘렀다. 지적재산권이 문제의 본질처럼 호도됐다. 공지영의 ‘싸가지’에 대한 편견이 핵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진중권은 트위터로 이 흐름의 물꼬를 텄다. 급기야 출판사는 지난 8월16일 ‘표절위원회 위원’에게 자문해 가 표절이 아니고, 법적 하자도 없다고 해명했다. 하종강과 이선옥은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요구한 적도, 애초에 공지영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도 없다. 적어도 공지영이 트위터에서 ‘내부의 적’ 운운하기 전까지는.
핵심은 어떤 대의에 의해 배제된 한 르포작가의 존재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르포르타주란 형식으로 대의를 추구한 공지영에게 필요했던 건, 자신이 배제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직접 쓴 르포르타주에 빚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 아닐까. 하지만 공지영은 ‘쌍용차 노동자를 위함’이란 대의를 내세우며 또 다른 노동자의 실존을 외면했고, 진중권은 그 논리를 차용해 대의의 깃발만 강조했다.
트위터에서 많은 이들이 이선옥의 처지에 동의했던 것은 어떤 동정의 감정이나 공지영의 ‘싸가지’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들은 진보 진영 내에서 어떤 대의를 추구할 때 늘 ‘별것 아닌 문제’로 치부되고 말았던 어떤 실존에 대한 배제가 언제든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연대했다. 이번 논란에서 ‘노동자의 절절한 목소리가 더 널리 퍼져야 하는’ 대의를 빌려 담론이 유통되는 방식은, 회사 존속과 경제 회복의 논리를 빌려 노동자를 배제하는 방식과 아프게도 닮았다. 3년 넘도록 평택과 대한문 텐트, 그리고 희망식당을 오가며 함께 뒹굴었던 쌍용차 노동자들과 이선옥을 같은 방식으로 배제하는 그 대의는 결국 누구를 위함인가.
이재훈 한겨레 기자<hr color="red"><hr color="green">
노동 없는 노동운동의 딜레마
트위터가 열어주고 유명인이 대표하는 노동운동 현실 드러내
를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가? 이 논란은 공지영이라는 스타 작가가 이선옥이라는 ‘무명’ 르포작가의 글을 이선옥 본인이 모르는 상황에서 사용한 것에서 촉발됐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문화권력’에 대한 견제가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것 같다. ‘공지영 대 이선옥’이라는 대립 구도가 만들어지고, 둘 중 누가 옳은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화권력 문제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쌍용자동차 문제나 르포작가의 권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실종돼버렸으니 말이다. 모두 옳은 소리를 했지만, 누구도 옳은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지영이 책임 있게 사과한다고 해서 쌍용자동차나 르포작가의 권리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선옥이 대의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두 문제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공지영 대 이선옥’이라는 개인의 범주를 잠시 접어두고 생각해보는 일이다.
공지영과 이선옥을 지우고 보면 남는 것은 쌍용자동차와 르포작가의 권리다. 이 둘이 과연 대립적인 문제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문제들은 서로 연대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나 르포작가의 권리 문제는 결국 한국 사회의 노동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문제를 둘로 갈라놓는 것은 무엇인가? 우습게도 ‘공지영 책임론’이다.
공지영은 문제를 노동운동 내에 머물게 하지 않고 트위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이런 까닭에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계기를 공지영이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안타깝지만, 이로 인해 논란은 쌍용자동차도 아니고 르포작가의 권리도 아닌 ‘공지영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선옥이 올린 트윗(@namufree)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희망버스를 일컬어 혹자는 ‘노동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말이 지칭하는 의미를 이 트윗은 잘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난 것일까? 트위터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 ‘덕분’이다. 셀러브리티들과 그 팬덤이 노동운동 바깥에 머물지 않고 그 안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이들은 평생 노동운동을 위해 몸 바친 ‘활동가들’에게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진보’를 떠받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의 논란은 이처럼 ‘노동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내는 증상이라고 하겠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공지영 같은 스타 작가도 애초 기획에서 필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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