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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녹차라테

등록 2012-08-14 18:17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김봉규

한겨레 김봉규

어쩐지 이상했어요.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량이 ‘고무줄’이었대요. 한국소비자원이 서울·경기 지역에 100개 이상 매장이 있는 커피전문점 9곳에서 파는 아메리카노와 캐러멜마키아토를 조사해봤더니, 같은 브랜드의 같은 종류 커피가 점포마다 최대 40%까지 용량이 달랐대요. 커피전문점들은 핵심 재료인 에스프레소를 넣는 양은 일정하다고 주장했는데요. 정작 소비자가 궁금해하던 커피값 원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 ‘김 빠진 조사’가 돼버렸어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네요. 정부가 커피 용량을 지키지 않는 커피전문점과 경쟁하려고 ‘한강 녹차라테’ ‘낙동강 녹차라테’ ‘영산강 녹차라테’ 메뉴를 직접 개발해 공급에 나섰거든요. 아무래도 정부가 커피업계를 단단히 혼쭐을 내려 하나 봐요. 이번달 내내 폭염이 계속돼 한강 하류가 녹차라테처럼 변하자, 정부가 뒤늦게 4년 만에 조류주의보를 발령했어요. 이 지역은 서울·인천 시민과 경기도 23개 시·군 주민 등 2300만여 명이 먹는 수돗물을 끌어오는 곳이에요. 한강뿐만이 아니에요. 낙동강·영산강 지역에도 녹조가 퍼져 댐 방류량을 늘리는 등 난리가 났어요. 수돗물 처리 작업을 하며 활성탄으로 정제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불안한지 생수 사재기에 정신이 없어요.

이번 녹조 현상의 원인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녹조 현상은 수온이 올라가고, 일조량이 많아지고, 강물의 속도가 느려지면 발생하거든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강 곳곳에 물을 가둬두는 보를 쌓아 올리고, 강변을 콘크리트로 덮은 4대강 사업을 하고 난 뒤 녹조 현상이 벌어졌어요.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 녹조 현상이 “장기간 비가 오지 않고 폭염이 지속돼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역시, 녹색 전문가다운 자신감이에요. 짝짝짝.

그런데 요즘 이명박 대통령도 이상해요. 날도 더워 녹조가 가득한 강에 죽은 물고기가 ‘라테 아트’처럼 떠오르는데, 녹조 현장에는 절대 찾아오지 않고 있어요. 그 대신 ‘독도’로 갔어요. 그것도 런던올림픽 축구 한·일전과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말이죠.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이래요. 애국심을 자극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지지율을 잡고 싶었나 봐요. 더 무서운 건, 이 대통령이 평소 울릉도·독도가 친환경적인 ‘녹색 섬’으로 보존돼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대요. 울릉도와 독도에도 보를 세우고 자전거도로를 깔자고 하면 어쩌죠? 대통령이 ‘녹색’ 단어를 꺼내니 갑자기 불안해져요. 이러다가 생수병도 녹색 소주병으로 바꿔야 하는지 몰라요.

이상해요. 참 이상해요. 날이 너무 더워서 다들 이상한 건지도 몰라요. 그래도 가장 이상한 사람들은 강물이 녹색으로 바뀐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받들어 4대강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공무원일 거예요. 머리가 복잡해져서 물 한잔 마셔야겠네요. 그런데 물이 녹차라테처럼 보이는 건, 제가 이상한 탓이겠죠?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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