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짜 병원장이었다.
치과의사인 강정석(가명)씨의 이야기다. 그는 2010년 한 치과병원에 취직했다. 첫날, 병원에서는 그에게 ‘권리약정서’를 내밀었다. 서류에서 병원장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권한은 없었다. 병원 건물의 소유권은 물론 없었고, 직원을 채용하거나 해고할 권한도 없었다. 약정서에서 그는 ‘을’이었다. 이런 대목도 있었다.
“사업장 운영과 관련된 ‘을’ 명의의 입출금 통장은 ‘갑’의 소유이며 ‘을’은 그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 등 통장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을’이 임의로 변경 또는 분실신고 또는 재발급할 수 없다.”
비싼 치료를 많이 해야 받는 인센티브
자신의 통장까지 넘겨줬다는 얘기다. 약정서 속의 ‘갑’은 여러 의사와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는 듯했다. 강씨와 같은 ‘바지사장’, 아니 ‘바지원장’들은 명의만 빌려주고 가짜 노릇을 했다. 기본급도 없었다. 대신 월매출의 20%를 인센티브로 돌려받았다. 더 벌려면 더 많이 치료해야 했다. 이가 멀쩡한 환자라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됐다. 게다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청구액은 그의 매출에 계산되지 않았다. 고가의 비급여 치료만 그의 매출에 포함됐다. 그러니 ‘쓸데없이’ 기본적인 치료를 해서는 수입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왕이면 치료를 비싸게, 많이 해야 했다. 병원이 그에게 제시한 ‘당근’을 따라 그가 진료량을 늘리면,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병원 수입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구조였다. 뭐, 어차피 자기 병원도 아니었다. 일단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치과에서는 의사가 흔히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강씨도 환자가 찾아오면 차트에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막상 치료를 하려면, 차트에 치료 항목이 자주 늘어났다. 간호조무사나 치위생사가 한 일이었다. 그들은 환자와 직접 상담을 하며 진료량을 늘렸다. 그들도 ‘인센티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도 그가 환자와 오래 상담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아침 병원 직원회의에서도 배제됐다. 본점에서 보낸 실장이 중심이 된 경영진이 병원 운영을 좌우했다. 그는 그저, 시키는 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피고용인에 불과했다. 병원의 마케팅은 공격적이었다. ‘무료 스케일링’ 따위가 광고 문구에 붙었다. 환자도 끊이지 않았다. 환자의 회전 속도가 높으니, 돈벌이는 좋았다.
지난 5월1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강씨를 만났다. 그는 이제 그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다. 문제의 병원이 돈을 버는 생리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환자 처지에서는 무료 스케일링이라도 받고 나면 약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많이 하라고 해도 그걸 믿고 따르죠. 내 병원에서라면 환자를 그렇게 다루지 않을 겁니다. 동네에서 신뢰를 쌓으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월급쟁이로 들어가면 약간 다릅니다. 게다가 인센티브를 생각하면 더 달라지죠. 치과의사들은 대부분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는 거기를 흔히 ‘막장’이라고 합니다.”
그가 갔던 ‘어둠의 끝’은 흔히 ‘네트워크병원’이라 이른다. 네트워크병원이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병원이 같은 브랜드를 쓰며 함께 영업하는 유형을 일컫는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병원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원장이 있는 병원들이 함께 같은 브랜드를 쓰며 느슨하게 연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강씨가 몸담은 의료기관은 의료법을 위반했을 여지가 크다.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 등만 병원을 세울 수 있다. 일반인이나 영리법인은 병원을 세울 수 없다. 또 의료인이라도 2개 이상의 병원을 가질 수 없다. 병원을 소유한 법인은 병원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다른 목적에 써서는 안 되고, 병원에 고스란히 재투자해야 한다. 이런 엄격한 기준을 들이미는 이유는? 병원이 돈을 벌려고 영리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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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네트워크병원에 ‘합법 면허’준 대법
강씨가 일했던 곳과 같은 네트워크병원은 논란의 와중에도 계속 성장했다. 2003년 대법원 판결도 네트워크병원의 성장을 도왔다. 당시 법원은 병원을 하나 가진 의사가 다른 의사의 명의로 병원을 하나 더 세워서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판결했다. 일부 악덕 네트워크병원에도 사실상 ‘합법 면허’를 준 셈이었다. 덕분에 네트워크병원 시장도 팽창했다. 2006년에는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도 만들어졌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협회에 가입한 네트워크 브랜드는 56개, 소속 병·의원 수는 1천여 개였다. 네트워크병원 성장세의 그늘 속에서 음습하게 자란 일부 네트워크병원도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세력을 불렸다.
일부 네트워크병원이 편법의 공간에서 성장했다면, 이른바 ‘사무장병원’은 불법의 토양에서 자라났다. 사무장병원이란 병원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의료인이 아닌 ‘사무장’이 의사를 명목상의 사장으로 고용해 영업하는 병원이다. 물론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일부 물정 모르는 의사가 불법의 공모자가 됐다. 물론 돈이 필요한 의사가 물주와 담합한 경우도 있다. 지금은 인천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오성일 원장도 불법의 덫에 걸려든 경우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오 원장은 2006년 의대 선배의 소개로 한 병원 원장 자리에 ‘부임’했다. 그는 뒤늦게 병원의 주인이 비의료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 주인과의 1년에 가까운 공방 끝에 그는 2007년 11월 대한의사협회 불법신고센터에 자진 신고를 했다. 그가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그는 300만원의 벌금과 의사 자격정지 3개월, 병원 근무 당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한 18억원에 대한 환수 조처를 당했다. 불법적인 의료행위에 대한 법률상의 책임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의 ‘진짜’ 대표를 상대로 형사고발과 민사소송 등을 했지만 모조리 졌다. 현재 의료법에서는 사무장병원의 운영에 대한 책임을 의사만이 지게 되는 맹점이 있었다. 그는 현재 사무장병원 피해자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는 “사무장병원에서 피해를 본 많은 의사들이 처벌을 두려워해 나서서 발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의 공간에 속한 사무장병원의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정부는 2010년 현장 조사를 통해 사무장병원 8곳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물론 빙산의 일각이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사무장병원으로 추정되는 60개 병원에 한정해 조사를 한 결과였다. 당시 적발된 사무장병원 8곳 가운데 6곳이 치료비를 허위·부당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의사는 “병원계에서는 ‘악마’ 의사도 ‘천사’ 사무장보다 낫다는 말이 떠돈다. 대부분의 사무장은 수익을 노리는 업자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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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MSO 활성화 통해 영리병원 길 터
사무장병원과 관련한 정부의 단속과 상충하는 국가 정책도 있다. 2006년 기획재정부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MSO)라는 새로운 기업 모델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MSO는 의료행위를 제외한 병원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회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여러 병원이 개별적으로 하던 의약품 및 기기 구매, 인력 관리, 진료비 청구, 홍보 등의 서비스를 대신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다. 병원 처지에서는 MSO를 쓰면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구입하던 물품이 공동구매를 통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이치다. 대부분의 네트워크병원이 별도의 MSO를 설립해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의사들은 경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MSO를 잘만 활용하면 병원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문제는 병원이 MSO를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말이 전도돼 오히려 MSO가 의사를 이용하는 경우다. 즉,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일부 서비스를 외부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법인인 MSO가 의사를 고용해 일부 비용을 떼주고 수익을 챙기는 유형이다. 바꿔보면, MSO가 ‘머슴’에서 ‘사무장’으로 돌변하는 셈이다. 박웅섭 관동대 교수(예방의학)는 “현행 의료법 체계하에서 금융자본이나 벤처캐피털 같은 민간자본이 병원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정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MSO를 통해 투자를 간접화해 정서적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물주’들이 병원을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의미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가 MSO를 두고 병원을 영리법인으로 만들려는 정부의 꼼수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정부 쪽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낸 ‘서비스 부문 선진화를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MSO의 활성화를 통해 영리법인병원의 단계적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왼손으로 사무장병원을 단속하는 정부가, 오른손으로는 모양만 다른 유형의 영리적 모델을 육성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도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KTB투자증권은 2010년에 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우리는 병원산업의 영리자본화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MSO에 대해 중·장기적인 관심을 권고한다. …향후 MSO 등을 통해 병원도 외부로부터 자본 조달 등이 가능해질 경우 주식시장에서 의료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할 전망이다.” 이미 MSO를 표방하는 업체들이 주식시장에 등장한 지도 오래다. 불임 시술로 유명한 차병원그룹의 차바이오앤디오스텍과 척추 수술로 유명한 우리들병원그룹의 위노바가 대표적인 예다. 김양균 경희대 교수(의료경영학)는 “MSO 모델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MSO가 병원들의 원가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돕는 구실을 하는 기업으로 자리잡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영리법인으로 가는 매개로 다르게 정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병원 급제동 건 개정 의료법
상업화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던 네트워크병원 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지난해 12월 양승조 민주통합당 의원의 발의로 개정된 의료법에서는 ‘의사 1인 1병원 개설’의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운 편법적인 네트워크병원에는 불법의 낙인이 정확히 찍혔다. 이 법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된다. 일부 네트워크병원에 급제동이 걸렸다. 시장도 빠르게 반응했다. 최근 한 비만 전문 네트워크병원은 지점 20여 곳을 대상으로 매각 작업을 시작했다. 유명 치과 네트워크병원도 최근 120여 개 지점의 운영권을 매각하며 본점에서 컨설팅을 제공하는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이 병원은 대한치과의사협의회의 누리집 게시판에 이런 광고를 냈다. “자본 투자 없이 매출 1억5000(만원) 병원을 운영하십시오. 가입비 1000만원(후불 가능), 인테리어, 시설, 장비 갖춰져 있음.” 제도 변화에 따라 네트워크병원의 변신이 진행되고 있다.
네트워크병원과 MSO가 시장에서 강하게 일으키던 병원 상업화의 바람은 한풀 꺾였을까. 의료시장 사정에 밝은 박종욱 변호사는 “병원들이 지점을 늘리는 식으로 횡적 팽창을 하는 것은 앞으로 한동안 힘들 것이다. 대신 현재의 지점망을 MSO를 매개로 느슨하게 운영하며, 본점 1곳의 규모를 키우는 형식으로 사업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풀이했다. 병원들의 사업 확장 유형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의료시장의 미래를 그리는 정부의 방침은 어떨까. 영리법인병원을 도입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외국 의료기관의 설립 허가 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4월30일 입법 예고했다. 시민단체들은 바로 다음날 보건복지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의료 분야에서 영리 모델을 그리는 자본에 정부는 든든한 ‘뒷배경’이 되고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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