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꽃의 바다다. 봄의 전령사들인 매화·개나리·진달래·벚꽃·목련이 물러난 자리에 라일락·철쭉·민들레 따위가 만발이다. 동네 뒷산을 걷다 보면 푸른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번지는 걸 실감한다. 빛나는 신록이 황홀하다. 봄은 눈부신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게 하는 탄생의 계절이다.
오십 줄에 다가선 이제야 조금 알겠다. 왜 노인들이 아이들을 보곤 너나 할 것 없이 ‘예쁘다’ ‘잘생겼다’를 연발하시는지. 학생 시절 내 사진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땐 실물보다 사진이 못 나왔다(?)며 불만이었는데, 이제 보니 생기가 넘친다. 누군가의 삶의 이력으로 따지자면,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시기는, 짧게 잡으면 스무 살 이전, 길게 잡아도 서른 살 이전까지일 것 같다. 그 뒤로는 낯빛에서 생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세월의 무게가 무심히 쌓이지 않나. 생명의 기운. 아름다움의 비밀은 바로 그것이다. 5월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한데 모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기의 화신인 청소년의 일상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5월2일 발표한 ‘2012 청소년 통계’를 보면, 무미건조한 통계 수치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2010년 기준으로 15~24살 사망 원인 가운데 1위는, 교통사고나 질병이 아닌, 자살! 10만 명에 13명꼴로 자살한다. 왜?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과 방송 보도로 전해지지만, 부모를 포함해 과연 몇이나 삶을 포기하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넋 놓고 있을 순 없으니 통계 수치라도 다시 들여다보자. 15~19살 중·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 10명 가운데 7명이 학교생활과 전반적인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조사 대상의 55.3%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공부’(성적)를 꼽았다. 이성교제(1.0%)나 용돈 부족(4.1%), 가정환경(6.8%), 외모(16.6%) 따위 다른 모든 고민을 더한 수치를 압도한다. 10명에 1명꼴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데,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및 진학 문제’(53.4%).
지금 한국의 10대는 ‘성적기계, 시험기계’로서의 삶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이게 현실이다. 학교폭력, 왕따문화, 게임중독 따위나 탓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부모들도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체제와 무심한 세상 탓만 하며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하면 내 아이가 죽는다. 그러니 이 땅의 부모들은 자문할 일이다. ‘나 또한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원흉이 아닌가?’
쓰다 보니 참 헛헛하다. 먹먹하다. 이 땅의 부모들께 질문 하나 던지는 걸로 마무리해야겠다. 공자의 말을 간추렸다는 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옛 지혜’를 따라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기존 질서의 보존과 계승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반면 노자가 지었다는 은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로 시작한다. 표현은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과 다르다는 것인데, ‘옛 지혜’에 얽매이지 말고 자율과 창의로 새 길을 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공자와 노자는 이렇게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당신의 아이에게 공자와 노자 가운데 누구 얘기를 더 많이 해주고 싶은가?
이제훈 편집장 nomad@hani.co.kr
*그동안 좋은 글·사진 기사로 독자들을 만나온 곽정수·김경호·이정훈·조혜정·하어영 기자가 편집국으로 갑니다. 이와 함께 구둘래·정은주·박현정·김명진·김성환 기자가 취재진에 합류합니다. 오고 가는 모두에게 따뜻한 박수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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