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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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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들 철 좀 들게 해주세요

음주운전·성희롱·가정폭력·학원폭력 및 중독성 범죄
재발 막으려고 법원 산하 유모사(乳母師) 김판순이 떴다
등록 2012-02-09 10:13 수정 2020-05-03 04:26

“제군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법원 산하의 신입 유모사(乳母師) 교육대에서 교관이 말했다. “저승사자 위에 바로 이 몸, 악마 교관이 있어. 하지만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 위에는 유모가 있지. 염라대왕도 무서워하는 염라유모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오늘, 혹독한 교육과정을 마친 나는 수련 유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악마 교관이 말한 그 전설을 확인할 순간이 찾아왔다. 저기 복도를 돌아오는 그림자가 그 주인공이다.

일러스트 조승연

일러스트 조승연

철 안 든 아이같은 모습의 범죄자들

“수, 수련 유모 지승기입니다.” 나는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아따, 귀청 떨어지겠네. 나는 김판순이여.” 50대 후반의 작달막한 아주머니, 얼핏 보기에 화장품 외판원이나 보험설계사 같은 느낌. 하지만 이 사람이 유모계의 4대 천왕, 그중 염라유모라는 별명을 가진 김판순 유모사다. “오늘부터 유모사님과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려. 운전은 할 줄 알지?” 나와 유모사는 공용 경차에 올라탔다.

“승기군,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조수석에 앉은 유모사는 나직이 물었다. “법원 산하 전문 유모사입니다. 그, 그러니까… 그동안 음주운전·성희롱·가정폭력·학원폭력 등 습관 및 중독성 범죄자의 경우 단순 구금 및 벌금으로는 범죄의 재발을 막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회봉사·수강명령 등 범죄 치료 프로그램이 시행되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해서 ‘전문 교정 유모사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범죄 치료와 보호관찰이 결합된 형태로, 일정 기간 동안 국가가 범죄자의 일상생활 속에 유모를 파견해 언행을 교정하도록 한 것이지요.” “잘도 외웠군. 단순하게 생각해. 이건 유모 일이야. 그러니까 애들 다루는 거지. 아, 저 차 막아!”

끼이익!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차는 빌라에서 나오던 빨간색 고급 승용차와 김 한 장 차이로 접촉사고를 면했다. 관리인이 노발대발해서 달려오는데, 유모사가 차에서 내리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돌아섰다. 빨간 승용차의 운전자는 국민 여배우 김래희. 그래, 몇 달 전 난폭운전으로 입건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와 유모사는 김래희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내 허락 없이 운전대 잡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김래희는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소리를 질렀다. “아, 오늘 촬영이 있다고요. 매니저는 아파서 쓰러졌고.” 상대는 평소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여배우. 그러나 “또 또 이런다” 하면서 유모사가 노려보자 호랑이 앞의 강아지가 되어 눈을 찔끔거렸다. 유모사는 그녀를 조심스레 감싸안더니 가방에서 초콜릿바를 꺼냈다.

우리는 여배우를 매니저에게 인계한 뒤, 다음 행선지로 움직였다. 내가 말했다. “영화에서는 온갖 거드름을 피우더니 완전히 응석쟁이네요.” 유모사가 말했다. “문제는 그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거야. 주변에선 다 공주님이라고 오냐오냐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니저나 주변 사람에게 소리 지르다가 결국 난폭운전같이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딱 철 안 든 애들 모습인데, 부모든 선생이든 엄하게 잡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국가가 나서게 된 거지.” “역시 애 달래는 데는 초콜릿인가요?” 유모사는 피식 웃었다. “저 여자의 또 다른 문제는 혈당치가 떨어져 있는 거야. 몸매 관리 때문이겠지.”

“철이 들어야지, 길들여져선 안 돼”

법원에서 유모사가 파견되는 경우는 200~300시간 장기간 교육 명령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된 사람들은 이 기간이 군 생활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런데 유모사가 붙으면 정지 기간을 10분의 1 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다. 유모사만 합격 판정을 내리면, 바로 면허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유모사가 달라붙으면 질겁을 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혹독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음에 도착한 곳은 허름한 복도형 아파트 단지. 근처에 오자마자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3층 끝 집에서 고함과 물건 깨지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유모사는 벨을 세 번 울리더니, 나에게 현관문을 열라고 했다. 순간 눈앞으로 프라이팬이 날아왔다. “어떤 새끼가 남의 집에 들어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남자가 마구잡이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내가 팔로 얼굴을 가리고 달아나려는 순간, 유모사는 족제비처럼 날아오는 물건을 이리저리 피하더니 남자의 팔을 꺾어 바닥에 꿇어앉혔다. “지금부터 법원 명령에 의한 유모사의 교정 프로그램을 실시하겠습니다.” 남자는 버둥댔지만 비명도 못 질렀다. 그제야 싱크대 옆에 쪼그리고 앉은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유모사는 말했다. “3주차 훈련, 30분간 부부 역할 바꾸기 상황극을 실시합니다.”

유모사 제도가 생긴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만 불러모아 교육하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문제가 쉽게 재발된다. 강아지 버릇을 고치려면 주인부터 고쳐야 하듯, 가족이나 주변인들을 교육해 그 사람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에게 앞치마를 입혀 부인 역할을 하게 하고, 부인에게 남편처럼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라고 했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주저하던 부인, 그러나 얼마 뒤 그동안의 울화통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남편을 작살내버렸다. 나는 얼떨결에 남편 편만 드는 시어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내 연기력이 출중했던지 부인 역할로 빙의된 남편이 목을 조르려고 달려들어 큰일을 당할 뻔했다. 다행히 우리의 염라유모께서 남편을 제압했다. 그는 엉엉 울며 말했다. “처음에 집에 유모가 왔을 때는 화도 나고 창피하고 아내가 원망스러웠는데… 그동안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나 싶네요. 인생 새로 배우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차에서 한껏 으쓱해진 나는 우헤헤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철썩하고 유모사님이 등을 후려갈기는 게 아닌가? “이런 일이 늘 있을 것 같지? 천만에야. 사람 버릇 고치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아?” 나는 손으로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을 우리 맘대로 길들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다시 한번 철썩, 이번엔 정말 매운 손매였다. “큰일 날 소리! 우리가 하는 일은 철들게 하는 거지 길들이는 게 아냐. 그리고… 철드는 게 꼭 좋은 건가 싶어. 지난해 TV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홀랑 벗고 공연하다 음란죄로 걸린 애들 있지?” “네, 유모사님이 완전히 모범생들로 개조했잖아요. 저희 교육 때 그 주제로 발표도 했습니다.” “창피해. 머리 깔끔하게 깎고 건전가요 부르고… 나는 걔들을 바보로 만들었어.”

성희롱 정부장은 맞아도 싼가요?

유모사의 활동은 밤낮이 없다. 그날 우리의 마지막 행선은 어느 무역회사의 회식 자리였다. 그 회사의 정 부장이라는 자가 상습 성희롱으로 유모 교육을 명령받은 것이다. 평소엔 괜찮다가 술만 마시면 버릇이 되살아난다더니, 과연 3차로 간 노래방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유모사님이 일어섰다. 드디어 정 부장을 응징하려는 건가? 뜻밖에도 유모사는 여직원들을 한 명씩 복도로 불러냈다. “상황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이 바로 싫다는 표시를 해야 해요.” 그렇게 마지막 직원을 교육하는 순간, 방 안에서 퍽 소리가 났다. 놀라서 달려들어가니 정 부장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옆에 있던 여직원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 제가 고등학교 때 배구 선수였는데… 깜빡 잊고.”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 어디 여자가!” 남자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유모사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손은 괜찮아요?” “그럼요! 제가 레프트 주공격수였는걸요.” “그럼, 다른 남자 직원분들, 폭탄주 말아서 한 잔씩 드시고요. 시원하게 한 대씩 맞으세요. 그럼 깨끗이 잊어버릴 겁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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