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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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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부터 100살까지 지금은 평생학원 시대

학원 교육 양성화 법안 가결, 공교육의 종말 ‘점수 콘서트- 만점이 쏟아지는 밤에’ 사교육의 총아 공부신을 만나다
등록 2011-12-15 11:17 수정 2020-05-03 04:26

우리 시대 성공의 공식에 밑줄 쫙! 지금부터 ‘점수 콘서트- 만점이 쏟아지는 밤에’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MC 김청주입니다. 정말 입추의 여지가 없다, 바로 이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 10만3천 명이 메가 스타디움을 빼곡히 채워주셨습니다. 네, 네. 역시 여고생들의 환호가 제일 듣기 좋네요. 하지만 좀 아껴주세요. 이제 진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학원의 멘토, 사교육의 총아, 학원 체인 ‘점수버네’의 총수 공부신님입니다.

EBS를 끄고 학원으로 직행하라

MC 선생님 인기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때도 이만큼은 아니었는데요.

공부신 하하, 부끄럽습니다. 제가 장소를 넉넉한 곳으로 구하라고 했는데….

MC 하긴 선생님 강의실이 항상 이랬죠. 별명이 ‘아침 8시 반 신도림역’ 아니었습니까? 복도 끝까지 꽉 채워서 수업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아, 그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관객 여러분, 제가 점수버네 아나운서 학원 1기 졸업생인 거 아시죠? 그런데 그때부터가 아니에요. 고등부 때부터 공부신 선생님 특설반 출신입니다. 성골 중의 성골이죠.

공부신 김청주 학생은 얼굴도 반반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죠. 그래서 내가 마스크 하고 학원 나오라고 했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신림동의 작은 학원에서 출발해 베이징, 싱가포르, 뉴욕에까지 체인을 낸 글로벌 학원 그룹의 총수가 되셨습니다. 정말 세계 교육시장의 기적이라고 할 만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공부신 전쟁! 모든 세계적 기업들이 그랬듯이 전쟁 덕분이었죠. 그 전쟁은 7년 전 ‘학원 교육 양성화 법안’이 가결·공포되자 공식화됐습니다. 여기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때 학교가 교육의 중심이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대가 종료된 거죠. 학교 교육이 유명무실화됐으니 아예 공교육을 최소화하자, 능력 있는 학원에 교육을 넘기자, 이런 것이었죠.

MC 법안의 주요 내용이 이랬습니다. 초·중등 의무교육은 문맹퇴치 수준으로 최소화, 학교에서는 최대 6교시까지의 정규 수업만 허용, 방과 후 수업은 일절 금지, EBS 등 무료 교육 행위와 대학생 과외 등 비인가 교육 행위를 엄금.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요. 사탐 과목에 꼭 나온다고 달달 외웠죠.

공부신 법안 자체가 학원 재벌들의 로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곧바로 후속 조처들이 나왔어요.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학원이 속속 등장했고요. 처음에 30층짜리 건물 전체를 학원으로 쓴다고 했을 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죠. 하지만 5개 층을 운동장 트랙으로 만들어 체육 수업을 진행했고, 정규 과목 외에 태권도·영어·피아노 학원들까지 한 건물 안에 집어넣었어요. 애들이 이 학원, 저 학원 옮기며 샐 걱정도 없고, 급식까지 챙겨주니 공부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죠. 당일 수업 미션 통과자에 한해 건물 내에 있는 PC방과 노래방을 사용할 수 있게 했고요. 수업 불참자나 불량학생들은 학원 경비대가 철저히 단속했죠.

MC 그때 초등학교 다니던 여동생이 오전 수업만 마치고 셔틀버스 타고 학원에 갔다가 밤 9시에 집에 돌아오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 마이 갓. 여긴 버스 드라이버부터 구내 문구점 알바까지 전부 영어로 말해”.

공부신 취업난 때문에 해외 유학생 출신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바로 그 건물에서 취업 학원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지원을 했습니다.

폭탄주 제조, 비자금 관리도 학원에서 배워라

MC ‘학원 교육 양성화 법안’을 처음 만들 때는 영세 사업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PC방이나 만화대여점처럼 잠깐 붐을 이루다가 사라졌어요. 학원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져 만점벅스, 열공리아, 책도날드 3대 메이저 학원 체인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러자 전교조를 중심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반발이 생겨났어요. 교육부에서도 학원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고 여러 조처를 취하기도 했고요.

공부신 소 잃고 외양간 불 지르고, 도랑 엎고 가재 방목한 셈이죠. 이미 학원 대기업에는 미국 중심의 다국적 자본이 몰려들어와 있었고, 그들에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었습니다. 4년 전 일부 학교에서 학원 선행학습, 그러니까 학원에서 배울 걸 미리 학교에서 가르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걸 교육부에서 덮어버리려 했는데,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제소로 천문학적 액수를 배상할 위기에 처하자 바로 깨갱 했죠.

MC 바로 그 시점에 공부신 선생님의 점수버네가 후발주자로 뛰어듭니다. 공룡 학원들과의 전쟁,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공부신 제가 이리저리 스카우트되며 3대 메이저 학원에 강사로 있어봤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게 한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 방식의 학원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수십억원대 연봉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제가 20여 년 학원 강사를 하며 요식업을 병행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공부는 누가 하나? 학생들만. 그럼 밥은 누가 먹나? 3살부터 100살까지. 제 책상 앞에 적었습니다. ‘평생 학원! 3살부터 100살까지.’ 어릴 때부터 학원 강사가 골라주고 찍어주는 방식으로 공부해온 아이들. 그래서 일류대 가면 자기가 알아서 공부할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또 그렇게 대학 나오면 철썩 취업되고 바로 밥벌이 됩니까? 아니죠. 각종 자격증에 영어회화에 챙길 것 많습니다. 회사에서 승진하고, 사회생활에서 인정받고… 이런 것도 자기 머리로 못해요. 하나하나 찍어서 외우라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MC 다른 메이저 학원들이 대형 빌딩에 매달릴 때 점수버네는 동네의 작은 점포들을 공략했어요. 브랜드도 다양하게 만들었죠. 대학생들을 위한 ‘학점버네’, 졸업 뒤의 ‘취업버네’, 주부들을 위한 ‘요리버네’ 등이 있고요. ‘실버버네’는 노년층을 위한 건강 관리, 사기 방지, 며느리 다스리기 등으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핵심은 ‘골드버네’였죠.

공부신 처음부터 메인 타깃이었습니다. 동네 학원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해서도 그룹을 대표할 만한 주력 얼굴이 필요했습니다. 골드버네는 성인 직장인과 사업자를 대상으로 사회생활을 위한 모든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나 프레젠테이션은 기본이고요. ‘접대 골프 져주기’ ‘폭탄주 제조 31종’ ‘상사에게 사랑받는 장기자랑’ ‘비자금 관리와 꼬리 자르기’ 등의 세부 강좌들이 있죠. 과거에는 명문대학교 출신의 학연이 이 사회를 지배했지만, 이제 메이저 학원이 더 강력한 커넥션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3년간 국내 5대 기업 신규 사원의 27%가 저희 학원 출신이죠. 사내에서도 끈끈하게 잘 뭉치고 서로 밀어주기로 유명합니다.

청춘? 점수로 증명하라

MC 요즘은 연예인들도 ‘버네 사단’이 제일 알아줍니다. 학원에서 배운 ‘스캔들 관리법’ ‘노이즈 터뜨리기’ ‘뜻밖의 몸 개그’ 등의 강좌가 아주 유용했다고 들었어요.

공부신 아이돌 학원은 버네 글로벌 사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중국 및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면 한류 마케팅이 필수인데, 연예기획사의 콧대가 아휴…. 그래서 우리가 직접 키우자, 이렇게 된 거죠. 덕분에 현재 중국 및 아시아 시장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까지 버네 체인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사교육, 이거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 될 겁니다.

MC 끝으로 이 자리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선생님에게 ‘청춘’은 무엇입니까?

공부신 예전에 누군가 ‘청춘 콘서트’ 따위를 하며 말하더군요.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이라는 뜻이라고요. 저는 말합니다. 그 새싹이 돋아났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그건 점수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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