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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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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밭두렁 카지노에서 잭팟 한번 터뜨려보시렵니까?

해외 시찰 빙자한 외유로 눈총받는 허풍선 의원이 제안하는 한국을 관광대국으로 만드는 방법
등록 2011-09-02 17:13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안녕하십니까? HTN TV의 ‘의원 직격 인터뷰’ 시간입니다. 오늘은 각계의 비난에도 틈만 나면 해외 시찰을 빙자한 외유로 눈총을 사고 있는 국회 관광위원회 소속 허풍선 의원을 만나보겠습니다. 허 의원은 지난해 국회 출석 일수보다 해외에 머문 날짜가 더 많았고, 임시국회 회기 임에도 60일 동안이나 해외 도박사업 체험, 국회의원 리베이트 제도 탐방, 선진 섹스박람회 시찰 등의 명목으로 미국과 중남미 지역을 유람했습니다.

걸어다니는 관광자원 육성 계획

H: 허 의원님 만나뵙기가 교황 알현보다 어렵다는 게 사실이군요. 오늘도 인천공항 환승터미널까지 찾아와서 겨우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간에는 의원님이 임기 중에 항공 마일리지를 긁어모아 퇴임 뒤 세계 일주하는 꿈을 꾸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허: 어허, 만날 국회의사당에 앉아 있어봤자 무슨 소용입니까? 여야 간의 당리당략으로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야 외국으로 나가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이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여러 언론에서 국민의 혈세로 놀러다니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출장이 아닌 외유는 외국의 기업이나 단체들이 스폰서가 되어줍니다. 그러면 저희 마음도 편하고 여비도 펑펑 쓸 수 있죠.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게 ‘국회 부재자투표’입니다. 국회의원들이 해외에서도 여러 법안에 투표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법안 통과도 쉬울 거예요. 여야 의원들이 국내에서는 툭탁거리지만 외국에서 같이 온천도 하고 야자수 아래서 칵테일도 마시고 하면 관계가 참 돈독해지거든요.

H: 네, 국회 회기가 끝나면 외유를 신청하는 숫자가 제적 의원의 3분의 2를 넘는다더군요. 국회 부재자투표 제도가 생기면, 의원들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같은 데 모여 개헌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어쨌든, 오늘은 허 의원님이 21세기 관광 한국을 일으킬 획기적인 방안을 발표하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허: 먼저 ‘걸어다니는 관광자원 육성사업’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경주 불국사니 서울 남산타워니 하며 너무 관광지 위주로 사업을 개발해왔습니다.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가 쿠바를 갔더니 시내 곳곳에 멋지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나 섹시한 민속의상의 여성들이 서 있는 겁니다. “원더풀! 섹시우먼!”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죠. 그랬더니 이것들이 촬영료를 달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기분 나빴죠. 그런데 뭔가 확 떠오르는 겁니다. 바로 이거야. 우리에게도 ’돌+아이’ 노흥칠이나 ‘똥습녀’처럼 보기만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기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서 주요 관광지 근처를 돌아다니게 하는 겁니다. 외국 관광객이 그 사람을 찍을 때마다 수당을 지불하고요. 그리고 관광안내소로는 부족합니다. ‘행인 아르바이트’가 필요합니다. 영어 및 외국어 능통자를 고궁과 주요 관광지에 배치하는 거예요. 외국인들에게 행인인 척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맛집을 소개하게 하는 겁니다.

4대강 공사 현장에서 머드 축제를

H: 하하, 역시 예산을 못 써서 안달하시는 것도 지병이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류와 관련된 이벤트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습니다.

허: 물론 빠뜨릴 수 없는 포인트죠. 제가 또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한류 군문화 체험 사업’입니다. 요즘 훤빈, 뷔 등의 한류 스타들이 꾸준히 군에 입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훈련소 앞에는 일본과 아시아 각국에서 온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외국 팬들이 한류 스타들과 함께 군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이벤트를 벌일까 합니다. 그러니까 훤빈과 함께 유격 훈련을 하고, 뷔와 함께 화생방 훈련을 하는 거죠. 행사가 끝나면 훤빈의 땀에 젖은 국방색 러닝셔츠를 경매로 팔고요. 항공사와 제휴해 ‘뷔가 오늘 먹고 있는 짬밥’을 기내식으로 제공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H: 네네, 세계에서 군사문화를 체험하기에 우리나라만큼 좋은 곳도 없죠. 의원님이 주신 브리핑 자료 중에 ‘유람하는 모래사장’이라는 게 있는데, 이건 뭡니까?

허: 제가 지난여름 프랑스 파리를 갔습니다. 거기 센강변에 모래사장을 만들어놓고 마치 해수욕장에 온 듯 선탠을 하는 비키니 여성들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우리 정부가 지금 4대강 사업을 위해 강이란 강은 모두 파헤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걸 이용하는 겁니다. 준설선이 강바닥을 파낸 뒤 모래를 쌓아 이동하는데, 이 모래를 바로 갑판에 쌓아 움직이는 모래사장을 만드는 겁니다. 관광여객선 위에서 일광욕도 하고, 모래 찜질도 하고… 그러다가 곳곳에서 부실공사와 산사태로 진흙밭이 된 곳을 만나게 될 겁니다. 거기에서 수해 복구를 하며 진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산사태 머드 축제’ 코스를 만들 예정입니다.

H: 정말 온 국토를 뻘밭으로 만들면서 뻘짓하는 꼴이 아닐까 우려도 되는데요. 외국 관광객을 많이 불러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갑을 여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허: 하하하. 제 전공이 또 사행성 관광입니다.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모나코… 각국 카지노에서 수억원씩 날리며 이를 갈았지요.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도 이런 걸 만들어 외국 관광객들 가산을 탕진시키자. 그러나 평범한 카지노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논두렁 밭두렁 카지노’입니다. 얼마 전 국내 마늘밭에서 수백억원의 돈다발이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아예 관광상품화하자는 겁니다. ‘논두렁 밭두렁 카지노’에는 마늘밭, 송이버섯 작목장, 차밭 등 겉보기에는 체험관광을 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땅속 곳곳에 현금 다발이 묻혀 있는 겁니다. 작물 캐기 체험도 하고 대박도 터뜨리고 일석이조의 재미를 누릴 수 있죠. 제주도의 조랑말들에게 금반지를 먹여 그 말이 싼 똥에서 반지를 찾는 코스도 개발 중입니다.

H: 카지노 좋아하신다더니, 이런 정책 자체가 도박일 것 같은데요. 실패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이신 거죠? 정부 예산으로 일 벌여서 관련 업자들 챙겨주면, 업자들이 또 알아서 성금 모아 외유 보내주고….

상생을 추구하는 비빔밥 난타 온천?

허: 제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생’입니다. 그래서 온천, 식도락, 공연 사업이 함께 손잡을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할까 합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여러 종류의 온천 시설이 가족과 연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황 온천, 미네랄 온천만이 아니라 카레 온천, 라면 온천 같은 이색 온천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죠. 제가 제안하는 것은 ‘비빔밥 난타 온천’입니다. 먼저 돌솥처럼 생긴 가족탕에 십수 명의 사람들을 넣어 서로 밀착시킵니다. 탕이 자동으로 돌아가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비빔밥의 여러 재료처럼 섞이죠. 여기에 톡 쏘는 고추장 온천수를 들이붓습니다. 항암, 항비만, 항산화 효과 등 건강이 좋아지는 재료를 온몸에 묻히고 나온 손님들은 때밀이 테이블 위에 줄줄이 엎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난타 목욕 관리사들이 흥겨운 타악 리듬에 맞추어 때를 밀기 시작합니다. 퉁다락락 투라락닥 덩덩, 그러다가 착착! 박수를 치면 손님들이 뒤로 돌아눕게 되죠. 다시 퉁다락락 투라락락 두드리다가… 마지막으로 거대한 김 타월로 몸을 감싸주면 멋진 코스가 완성됩니다.

H: 하긴 엉터리 같은 소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는 논개 체험, 섹스프리 특구 같은 관광사업 아이템이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인천공항에서 국회 관광위원회를 관광동호회로 만들고 있는 허풍선 의원과 함께했습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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