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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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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봉창 가을올림픽을 유치하라

추수의 계절, 최첨단 비닐하우스 돔구장 구축 예정…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등 농업 밀착형 경기 기대하세요
등록 2011-07-21 19:14 수정 2020-05-03 04:26

“봉봉봉봉~ 봉창으로 오세요. 두드락두드락 봉창으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를 빛내주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여러분, 그리고 전세계의 스포츠 애호가 여러분. 저는 한국이 자랑하는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를 더욱 세계화한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의 계승자인 전옥순입니다. 아름다운 이 밤, 저는 2022년 봉창 가을올림픽의 멋진 그림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4대 국제대회로는 부족하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대한민국은 이미 4대 국제 스포츠 대회인 여름과 겨울 올림픽, 월드컵 축구, 그리고 세계육상선수권을 모두 개최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말합니다. “아직도 나는 배고프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기적의 4강을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우리의 위장에 남긴 말인데요. 이후 우리 국민의 마음을 절절히 대변하는 말이 돼왔습니다. 사시사철 방방곡곡에서 국제행사를 하고, 학생과 공무원과 군인이 동원 행사에 혼절할 지경이어도, 아직도 우리는 허기가 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올림픽은 여름과 겨울만으로는 부족하다. 4년에 한 번이면 남은 3년은 무슨 재미로 사나? 그리하여 한국인이 주축이 되어 가을올림픽을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올림픽은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농업 올림픽, 웰빙 올림픽입니다. 여름과 겨울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던, 역사가 깊고 생활에 밀착된 종목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나라별로 정식 종목 채택에 이견이 많았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종목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논농사가 강세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삼모작 모내기, 작은 키가 장점인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차잎 따기를 제안했습니다. 스페인의 토마토 던지기, 황소 풀고 도망 다니기, 영국의 미스터리 서클 만들기는 유럽을 대표하는 종목입니다. 미 대륙이 자랑하는 헬기로 100만ha 농약 살포, 밀집 축사에 돼지 많이 키우기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아프리카가 중심인 카카오·파인애플·고무나무 채취 경기는 지역 전통에 따라 10살 미만의 어린이도 참가하도록 했습니다.

한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스포츠 공화국, 국제행사 전문 국가로 위상을 드높여왔습니다. 어떤 국제행사도 한국에서 진행하면 일사천리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초대형 경기장을 뚝딱 만들어내는 걸로 유명한 건설사들은 언제든 국제행사장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들과 긴밀한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 부지를 미리 매입해두었다고 합니다. 대회 흥행에 실패해 적자가 나도 세금으로 보상해주고 있으니, 돈 떼일 걱정도 없습니다.

경찰과 군부대는 완벽한 교통 통제로 경기장 인근의 잡음을 없애줍니다. 심지어 국제행사장 부근에서는 이념이 적힌 티셔츠를 입는 것까지 철저히 막아주고 있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유니세프’(UNICEF) 복장의 어린이, 한국에 올 때는 옷 갈아입고 와요. 경찰이 잡아갑니다. 하하, 조크입니다. 웃어주세요. 설마 외국인들에게 그러겠어요? 한국 경찰은 자국민에게 냉정하고 서양인에겐 관대합니다. 주변에 미군 친구가 있으면 물어보세요. 또한 노동자에게 깐깐하고 스포츠 정치인에겐 너그러운 전통으로 인해, IOC 위원이라면 다채로운 범죄행위도 사면해줍니다. 대신 ‘쥐 20’ 같은 국제행사 포스터에 ‘쥐’ 낙서를 한다든‘쥐’ 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하고 있습‘쥐’요.

경제 유발 효과는 평창의 2배

월드컵 축구는 국가별 개최이지만, 올림픽은 도시별 개최이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홍보 문건에 올림픽·월드컵 유치 공약을 기본으로 인쇄하도록 선거법에 명시돼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얼마나 훈훈합니까? 일찍이 올림픽을 주도했던 서구 국가들은 지금 경제적 리스크, 환경 훼손, 교통문제 등을 따지며 행사를 기피하는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세계인의 축제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습니다. 물론 경제 효과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일단 베팅하자,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다는 스포츠 정신으로 모든 행사에 개최 신청서를 써넣고 있습니다.

이미 가을올림픽을 위해 한국 내 여러 도시들이 사전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벌였습니다. 1988년 여름올림픽을 개최한 서울은 너무 현대화된 도시이기 때문에 농업 올림픽을 위한 경기장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울 시장은 벼베기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여의도의 빌딩숲을 밀고 섬의 절반을 벼농사 지역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한강 전체를 흙으로 매몰해 거대한 논을 만들자, 4대강 사업 이후 강이 흙탕물로 바뀌고 수변 공원들이 장마 때면 펄밭이 되는데 조금만 더 투자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대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개최지이자 과수원의 고장입니다. 지난 육상대회 시범 종목으로 ‘사과 따면서 허들 달리기’ 경기를 벌였는데, 사과밭의 작황이 좋지 않자 지역 중·고등학생을 동원해 수만 개의 수입 사과를 하룻밤 사이에 달아놓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봉창은 이런 지역 경쟁을 뚫고 한국의 대표가 된 도시, 오직 가을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오랫동안 반목을 일으킨 영호남과 충청도 사이에 건설된 가을 스포츠 전문 도시로, 모두 5개의 최첨단 비닐하우스 돔 구장이 건설될 예정입니다. 가을올림픽의 특성상 많은 경기에 농산물이 필요한데, 매년 기후와 상관없이 일정한 작황을 유지해 최선의 경기력을 구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난 현장 실사 때 작열하는 열기로 인해 관중석이 쪄죽을 지경이더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아직 쪄죽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우리 봉창시는 해외 관람객에 한해 선크림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선수 천하지대본’은 봉창의 깃발, 대한민국의 모토입니다. 한국은 각종 스포츠 경기를 통해 국위를 선양해온 여러 영웅들을 보아왔고, 또 그들에게 최선의 대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높은 학구열과 경제우선주의는 한국인의 신앙과도 같지만,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군대는 가야 합니다. 오직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만은 군대 면제와 각종 연금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국가대표 선수, 그리고 우승자들에게만 돌아갑니다. 생활체육 등은 뒤로 물러나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과감한 투자 때문에 ‘과연 경제적 위험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 정부가 누굽니까? 무엇보다 경제적 효과를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평창 겨울올림픽의 경우 경기장 및 숙박시설 건설, 교통망 확충 등에 투자되는 금액, 그로 인한 경기 활성화와 관련된 소비지출 등을 합한 총생산액 유발 효과만 20조원을 넘는다고 한국의 산업연구원이 발표했습니다. 봉창 가을올림픽은 그 두 배에 해당할 것으로 보는데요. 이유는, 경기장을 비롯한 모든 건물을 새로 지을 뿐만 아니라, 대회가 끝나면 아무 쓸 데가 없으니 다시 부수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념 집약한 추계 7종 경기는?

마지막으로 봉창 가을올림픽의 이념을 집약한 종목을 화면으로 보여드릴까 합니다. 한국 농촌의 속담을 테마로 야심차게 기획한 ‘추계 7종 경기’입니다. 국민의 세금과 희생으로 세계인의 축제를 벌이는 봉창 올림픽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남의 논에 물 대기’를 비롯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벼룩의 간 빼먹기’ ‘울며 겨자 먹기’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기’ 등의 종목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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