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소영 기자
호랑이가 신문 배달하던 시절 ‘개 논쟁’이 있었습니다. 역사 이야깁니다. 1994년 검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상태입니다. 대학생은 시위하고, 국민은 일어납니다. 끓어넘칩니다. 검찰, 이번엔 기소합니다. 당시 검찰에 출입하던 청년 기자 속도 부글거립니다. 그때 한 검사, 기자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 서류 뒤적이며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검찰의 과거 청산 떳떳한가’란 칼럼( 1995년12월18일치) 이렇게 태어납니다. 술자리 뒷담화 통신에 따르면, 개 논쟁은 회사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개’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기에 좀 거시기하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그냥 ‘시녀’ 정도로 가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진실인지 구라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 밤 청년 기자는 편집부에 남몰래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개’라고 고쳐놓습니다. 편집자가 ‘시녀’로 고칩니다. 개-시녀-개-시녀….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검사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습니다. 고시에 패스해 지적인데다 대부분 젠틀맨, 젠틀우먼입니다. 개로 치면 요크셔테리어…, 가 아니라 개는커녕 개주인에 해당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검찰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고발 수사에서 행여 편파적일까 걱정 마시라는 겁니다.
10월21일 이른바 보수 시민단체가 박원순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박 시장이 불법 기부금 모금을 했다는 게 고발장 내용입니다. 당시 검찰은 선거 기간이라 수사를 보류한다고 밝혔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걱정 마십시오. 검찰은 법과 원칙대로 잘할 겁니다. 법과 원칙은 정말 소중한 겁니다. 보리물밥과 굴비, 새우깡과 소주, 요크셔테리어와 개껌처럼, 검찰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검찰은 법과 원칙대로, 아름다운재단의 최근 10년간 기부금과 수입 내역, 지출 내역, 상근자 월급명세서, 과거 사업 내역, 사업 담당 주체, 전·현직 재단 직원, 임원, 회의록, 기부자 명단, 아름다운재단이 만든 모든 은행 계좌, 그 계좌에서 오고 간 돈의 내역을 모두 살펴볼 것이며, 최근 10년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거나 공동사업을 했던 모든 기업체에 후원한 이유를 질문할 것이며, 그렇게 출석요구서를 받아든 ○○기업 아무개 부장님, 학생운동이란 건 모르던 대학시절에 보내셨던 그분, 생전 처음 검사 사무실 문을 빠꼼히 열고 들어가 검찰 조사관 앞에 각 잡고 앉다가, 짐짓 무뚝뚝한 표정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힘껏 내리치는 검찰 조사관의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며, 그러므로 부장님 머릿속에는 ‘그래, 역시 이 정권에서 위험한 사람들과 뭘 하면 안 되겠어’라는 잠시의 후회가 지나갈 겁니다. 그게 어때서요. 법과 원칙이 허용하는 수사의 기본 중 기본인데요, 뭘.
사족 하나. 단, 법과 원칙은 좀 폭이 넓습니다. 고발장이 들어왔다고 다 저렇게 수사하는 건 아닙니다. 재벌 회장님처럼 고소·고발장 수백 개 들어와도 서면조사 1회로 그칠 때 많습니다. 지난 강원도지사 재보선 때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 불법 전화 선거운동을 하던 아줌마들처럼 기소유예되기도 합니다. 검찰이 아름다운재단을 제 추측대로 수사한다면, 그건 검찰이 개…개…개엔찮은 조직이기 때문일 겁니다, 법과 원칙을 사랑하는. 개밥 주러 전 이만.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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