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싸코 마트, 만능콜 전화 주문 센터입니다.” “아, 여기 대치동인데요. 글쎄 우리 아들이 저녁도 안 먹고 자기 방에 처박혀 게임만 하고 있네요.” “네네, 먼저 주문자 정보 체크하겠습니다. 아드님 성함이 김개동군. 필승고등학교 2학년이시고요.” “맞아요. 내일모레가 기말고사인데 방문도 걸어잠그고….” “네네, 저희 싸코 학원 방과 후 과정 이용하고 계시네요. 현재 내신 3등급이 아슬아슬 걸려 있고요. 기말고사에서 전교 석차를 20등은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시죠? 아무래도 저희 용역 서비스를 이용하셔야겠는데요.” “그래요. 당장 어떻게 좀 해줘요. 아이 덩치가 코끼리 같아서 애 아버지도 못 당해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싸코 용역 일꾼들은 전국의 파업 현장에서 솜씨를 갈고닦은 인간 철거 전문가들이에요. 그런데 이런 경우 몇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1단계 방문 잠금 해제 및 학생 진압, 2단계 강제 식사 및 잔소리, 3단계 얼차려 및 체벌 옵션이 있어요. 몇 단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 2단계로 먼저 해주고요. 안 되면 3단계로 바로 바꿀 수 있나요?” “네네, 주문 접수됐고요. 지금 바로 용역 일꾼들과 함께 전문 잔소리 기능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구멍가게 끝, 행복 시작? </font></font>안녕하세요. 싸코 홈쇼핑입니다. 조금 전 저희 방송 잘 보셨어요? 요즘 최고의 히트 상품, 4주 연속 완판을 기록한 ‘자녀관리 용역 서비스’ 이용 장면인데요. 방송이 끝나고 열기가 굉장했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관리하는 토털 상품까지 모두 매진됐어요. 또 하나, 이런 문의가 많았어요. “야, 이런 서비스 참 좋네. 우리 동네는 아직 업체가 없던데, 대리점 모집은 안 하는 겁니까?” 왜 안 하겠습니까? 저희 싸코의 모토가 뭡니까? ‘고객이 원하면 얹어서 팔자!’ 이거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자, 놀라지 마십시오. 오늘 판매할 상품은요. 싸코 용역 서비스를 비롯해 싸코몰의 히트 상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싸코 편의점, 싸코 마트 체인 운영권입니다. 먼저 문의하신 고객분의 말씀부터 들어볼까요?
강국진(47·마트 운영 희망자): “편의점이다, 마트다… 말이 좋지. 걸리는 게 너무 많아. 장사 좀 하려면 사방에서 ‘이건 규제 사항이다’ ‘허가가 안 떨어졌다’ 귀찮게 하는 게 한두 가지라야지. 그리고 기껏 가게 오픈해서 홍보 전단을 돌리니까, 무슨 대기업이 골목에 침입했느니…. 아, 언제까지 피자가게라고 숨기며 몰래 인테리어 하고 그래야 해?”
그렇습니다. 우리 예비 사장님들, 편의점 하나 차리기 참 힘드셨죠? 그런데 오늘 새벽 아주 멋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국회에서 ‘상거래 완전 자유법’이 번개같이 통과됐어요. 정말 여당 의원님들, 덩치도 좋으신데 어찌 그리 날쌔기까지 하시는지. 기습 상정해서 5분 만에 땅땅땅! 그래서 우리 자영업자들에게는 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차별하는 악법, 대기업 마트의 판매 상품을 제한하던 못된 법률이 완전히 폐기됐어요. 재래시장 500m 안에 대형마트를 못 들어오게 하던 법도 없어졌고요. 우리 주부님들, 이제 군내 나는 시장에 안 가셔도 됩니다. 구멍가게 끝, 행복 시작이에요.
자, 그럼 어떤 게 달라졌나? 먼저 일요일에 감기약 하나 못 구해서 콜록거리며 사방을 뛰어다닐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에 대통령님이 한번 버럭해주셔서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비롯해 일부 약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번 상거래 자유법 통과 때 약사법을 살짝 얹어서 한꺼번에 개정했어요. 그래서 이제 동네 편의점에서도 감기약, 진통제, 치질약, 피임약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욱 멋진 소식, 저희 싸코 마트가 특별히 제작한 DIY 수술 키트인 포경·맹장·쌍꺼풀·낙태 수술 키트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동안 건강보험 민영화 때문에 비싼 약값과 수술비로 고생하셨지요. 이제 그런 걱정 싹 털어버리세요. 뭐라고요? 아무래도 직접 수술하는 건 두려우시다고요? 맹장 자른다고 칼 댔더니 쓸개가 댕강 떨어지고, 쌍꺼풀을 한다고 했는데 한쪽 눈에만 세 겹으로 생기고…. 그래서 저희가 또 준비했습니다. 의사·간호사 패키지! 전화로 주문만 하시면 저희 의료진이 직접 가정으로 방문해 각종 수술과 치료를 도와드립니다. 이번달 말까지가 오픈 기념 판촉 기간인데요. 지방대 의사 진료 가격으로 SKY 출신 의사로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장례도 허례허식이라면 ‘대찬 장례’를</font></font>
그것뿐이냐? 여러분 ‘알라딘의 램프’ 아시죠? 쓱쓱 문지르면 거인이 튀어나서 ‘주인님, 소원을 말해보세요’ 이러잖아요. 이제 편의점이 램프의 요정이 됩니다. 주부님들 화장실 변기가 막히거나 장마철에 지붕이 샐 때 동네 설비업자 아저씨와 한바탕하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당장 수도관이 터져셔 홍수가 났는데 전화를 해도 오는지 마는지, 한참 뒤에 막걸리 한잔 하고 나타나서는 들춰보지도 않고 수도관을 통째로 갈아야 한다는 둥 바가지를 씌우고…. 이제 걱정 마세요. 동네 아저씨 눈치 보실 필요 없습니다. 모든 설비수리 서비스도 편의점에 신청해서 처리하세요. 동네 약국, 문구점, 반찬가게 하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슬슬 문 닫을 준비 하셔야겠어요. 대신 저희 싸코 편의점·마트로 갈아타셔야죠. 요새 동네 빵집 없잖아요. 전부 대기업 체인이지. 눈치채셨으면 얼른 상담전화 주세요. 그럼, 잠시 고객님 말씀 좀 들어볼까요?
지국선(28·가명·싸코 마트 VVIP 고객): “뭐니뭐니 해도 용역 서비스가 짱이에요. 아파트에서 옆집 개가 짖거나 집들이를 한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때 많잖아요. 그렇다고 요새 누가 초인종 누르고 직접 말해요. 험한 꼴 당하려고? 그냥 용역 불러서 진압하는 게 최고더라고요.”
자, 말씀드리는 순간… 완판! 완판! 싸코 24시 편의점 예약 물량이 전부 소진됐네요. 정말 안타깝네요. 하지만 이거 아세요? 이게 기횝니다. 아직 마트 운영권은 남아 있어요. 편의점은 아무래도 수익이 소소하잖아요. 좀더 과감하게 싸코 마트 체인 운영권에 도전해보세요. 여기에서 귀띔 하나 해드리죠. 저희 싸코 마트가 대찬 치킨, 대찬 피자로 큰 인기를 모았잖아요. 시중의 절반 가격에 닭이랑 피자랑 마구 드렸잖아요. 다음주에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됩니다. 대찬 상조, 대찬 장례!
늙으신 부모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죠. 중년 가장들 자살 소식도 계속 들려옵니다. 그런데 불량스러운 상조회사들 때문에 믿고 맡길 데가 없어요. 그렇다면 저희 싸코 마트의 ‘대찬 상조’를 이용해주세요. 마트 지하 주차장에 영안실을 마련해, 매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시중가에서 최고 45% 할인된 가격으로 장례를 치르게 해드립니다. 이런 것도 과하다, 장례도 허례허식 아니냐? 그렇다면 ‘대찬 화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트에 물건을 구입하러 오실 때 입구에 고인을 맡겨주세요. 그러면 장 보시는 사이에 깔끔하게 화장해서 고급 용기에 담아드립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부도나면 해외 도피 도와드립니다</font></font>이 가격, 이 조건 마지막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지금 정말 많은 분이 전화 주시고 계신데요. 상담원과 통화 대신 자동주문하시는 열 분에게 특별히 구성된 ‘기업 안심 보험 서비스’ 당첨 기회를 드립니다. 아주 환상적인 패키지인데요. 먼저 ‘근로자 관리 서비스’, 대규모 매장에서 파업이 일어날 경우 즉각 최정예 진압 용역을 보내드립니다. 다음 ‘부도 처리 서비스’, 매장이 부도나서 고소·고발에 들어가도 곧바로 해외 도피를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이제 종료 3분 전. 자유 대한민국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결정하십시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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