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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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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을 모르는 사회

등록 2011-03-04 15:11 수정 2020-05-03 04:26

지중해 건너편, 아랍 세계에서 불어오는 혁명의 회오리가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기 전, 매콤 쌉싸래한 반역과 해방의 향기를 들이켜게 하는 요즘이다. 그 쌉쌀한 바람은 아픔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영감을 지구촌 전체에 퍼뜨린다.
아랍 혁명과 비견할 수준은 못 되지만, 한국 성악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한 실력자가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은 혁명은커녕, 연쇄 반란의 물결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증오의 대상이던 권력자가 실족했음에도 그 밑에서 신음하던 자들은 환호는커녕, 울음을 삼킨다. 뭔가 이 기이한 현상의 실체는?

아랍보다 강력한 권위주의

제자들에 대한 폭력과 권력 남용으로 얼룩진 추악한 사건의 주인공, 김인혜 교수(서울대 음대)는 변명한다.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탁했을 뿐 강요한 적 없다”. 그리고 “음해세력이 있다”고. 모든 권력자에게 그들의 행동은 선행일 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무기명의 투서가 있었고, 이후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증언들이 있지만, 사실이 명백히 규명된 바 없다.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학생들의 상당수는 후환이 두려워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로 제자들로 구성된 김인혜 팬클럽 사이트는 그간 그녀가 행해온 만행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힘내세요” “우린 선생님을 사랑해요” “이게 모두 전교조 때문이에요”라는 식의, 의식의 줄을 놓아버린 듯한, 맹목적인 충성의 문구들로 넘쳐난다. 본인은 모든 죄목을 부인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악행이 명백한 사실임을 의심치 않는다. 우린 음대에서, 비슷한 일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음대를 떠난 졸업생들은 익명으로 이런저런 인터넷 사이트에 그들이 겪었던 치욕의 에피소드를 올린다. 그러나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 스캔들이 가졌던, 100회에 육박하는 연쇄 폭발의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소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가 아랍 세계보다 더 완강한 권력에 질식당해 있기 때문이다.

음해세력이 있다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완전히 틀리진 않는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봇물 터지듯, 제왕적 권력을 남용해온 다른 음대 교수들의 사례가 줄줄이 드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백이 가져다줄 이익을 상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다른 파벌의 선생과 제자들은 완강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똑똑한’ 서울대생들이 노예처럼 맞으며 지냈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한다. 서울대에 갔다는 건,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뿐. 그것은 한편으론 그들이 얼마나 고분고분한 고교생이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훗날 음대 교수가 되어, 자신도 선생이 누렸던 뻔뻔한 권력을 누리기 위해, 부당한 선생의 행패를 끝도 없이 인내한다는 것은 똑똑은커녕, 제대로 자발적 노예 상태에 길들여 있는 것이다. 복종을 미덕으로 강요해온 권위주의 사회가 어릴 적부터 고분고분 학원과 학교를 오가면서 자아와 이성이 거세된 인간으로 아이들을 길러온 결과다.

복종이 재앙을 부른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복직 투쟁 때 알게 된 한 가지는, 우리나라 성악인의 98%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아들이 만천하에 공개한 것처럼 김인혜 교수도 “하나님의 딸로 자라나”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듯, 이들은 밑도 끝도 없이 복종하고 용서할 줄 알지만, 반역할 줄 모른다.

하워드 진은 말했다.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사건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일어났다”고.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해방은 복종이 아니라 불복종에 의해 일어났다. 복종하는 자들에겐 그들이 처한 노예 상태에 대한 절반의 책임이 있다. 특히나, 지구촌이 온통 사막에서 불어오는 반역의 바람에 휩싸일 때, 불복종할지어다.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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