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팬 때문에 유명해진 연예인은 적잖다. 안티가 키운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키운 것은 8할이 안티다. 지난해 법무부 인권국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특별분과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일부 소수자 동네를 빼고 관심을 가지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솔직히 조용한 입법은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법무부도 조용한 입법을 바랐을 것이다. 기본법에 해당하는 법일지나, 알려지는 순간에 운명이 결정되는 법이다.
눈 밝은 안티가 논란을 키웠다. 오늘날 윤리의 심판자, 보수 기독교계가 차별금지 항목에 포함된 ‘성적 지향’을 놓칠 리 없다. 이들이 보수 언론 전면을 사서 ‘ 보고 내 아들 게이 되면 책임져라’ 같은 전대미문의 광고를 냈다. 사실 이 광고는 성동격서, 는 눈길을 끄는 소재일 뿐 진정한 목적은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 입법 저지였다. 법무부 홈페이지도 몇날 며칠 반대글로 초토화한 이들의 캠페인은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법무부는 지난 1월25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보낸 질의서에 답하며 “만약 차별금지법 제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원만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법 제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로써 2승째,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8년에도 차별금지법은 같은 반대를 거쳐서 좌초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같은 ‘진짜’ 진보 언론을 빼면 자칭 진보 언론들은 무산 소식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일부 기독교 언론만이 “법무부 관계자의 (추진 중단) 발언이 있었지만, 2011년에도 동성애 차별금지 법안 저지 모임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전한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에서 뜻밖에 추진된 법안은 예상된 차별에 부딪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40여 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외침에 세상은 대답 없는 너다.
대답 없는 민주당도 있다. 안티의 ‘덕으로’ 차별금지법 논란이 뜨거워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던 민주당은 끝까지 침묵했다. 민주당의 인식지도엔 차별 문제 따위는 너무나 소소해 자리조차 없음이 틀림없다. 실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대안적 차별금지 법안을 마련하고 민주당의 그나마 진보적인 의원에게 입법 발의를 물었지만, 역시나 “부담스럽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무상이니 보편이니 복지 타령을 하지만, 소수자 ‘복지’에 결정적인 법안에는 관심이 없는 민주당.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 장애인, 이주민 같은 소수자가 직장과 학교와 일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여지가 열리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언제 어떤 이유로 차별을 당할지 모르는 ‘모두’는 이 법의 잠재적 보호 대상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참여하고 있지만, 법사위에 법안을 발의할 의원 한 명조차 없는 형편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넘어야 할 벽이다.
차별금지법은 한국의 미래다민주당이 계승한다는 노무현 정부도 집권 말기에야 허겁지겁 밀린 숙제 해치우듯 차별금지법 카드를 꺼내들었다. 입법 추진 주체조차 확고한 의지가 없던 법은 아니나 다를까, 보수 기독교의 ‘성적 지향’ 대목에 대한 반대에 걸려 죽은 법이 되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는 기독교계 의견을 반영해 차별금지 항목에서 ‘성적 지향’을 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차별금지법이란 리트머스 종이를 통해서 본 오늘의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민주당엔 정책적 정체성보다는 드넓은 기독교 표밭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니 무상복지도 야당 시절에 하는 립서비스로 의심할 수밖에.
불행히도 차별금지법의 좌초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보여준다. 윤리적 문제가 포함된 소수자 권리 법안이 추진되면 보수적 윤리에 바탕한 기독교가 격렬히 반대하고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는 과정은 앞으로 반복되고 반복될 것이다. 오늘은 동성애, 내일은 낙태, 모래는 이민, 줄지어 그렇게 올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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