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을 했고, 단칼에 물러나는 용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문제의 따님은? 온실에서만 곱게 자라난 철없는 딸내미니까 그 딸자식의 죄까지는 묻지 않는 게 예의? 그러기엔 그녀의 나이는 사뭇 지긋하시다. 서른하고도 다섯. 자긴 아무것도 모르고, 아랫분들이 알아서 관행대로 벌여주시는 불법 인사 과정에서 그저 천진한 두 눈을 깜빡거렸을 뿐, 가끔 피곤하면 엄마 시켜 전화하게 하고, 휴식을 취하곤 했을 뿐? 40년 만에 한반도를 뒤덮었던 더위 탓인가, 네티즌들에 의해 하룻만에 털리곤 하던 시시콜콜한 신상도, 사진도 이번엔 잠잠하다. 유 전 장관이 포털들과의 빅딜이라도 한 걸까. 내가 사표를 던질 테니 대신 내 딸의 사진만은…?
국가가 뒤치다꺼리하는 이너서클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18년 전, 국영기업체에 입사했을 때, 입사 동기인 한 외교관의 딸이 들려주던, 자신이 대학 시절을 보냈던 외교관 자녀 기숙사에서의 추억담이. 그때, 그녀의 얘길 들으며 외교관 패밀리들이 이너서클 안에서 만들어내는 짝짓기의 네트워크가 슬쩍 드러나며 풍기던 묘한 향기가. 서울 강남에 있는 이 기숙사는 외교협회에서 운영하고, 그 외교협회는 “민간 외교 활동을 통해 국가 외교 수행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란다. 외교·국제 문제에 관한 국민 인식의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는 이 협회가 알려주는 협회 소식의 98%는 외교관 가족의 경조사 소식들. 누구의 아들딸이 결혼을 어디서 하며, 누구의 모친께서 별세하셨다는…. 단순한 상조회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단체가, 허울 좋은 명목하에, 외교통상부의 산하단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들끼리의 경조사를 열심히 챙기다 보면, 국가 외교 수행은 측면 지원되고, 국민의 국제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제고될 수도 있다는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또 어렴풋이 떠오른다.
10년쯤 전,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표부에서 직원을 뽑는 공고를 보고 요란한 면접을 거쳐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프랑스 친구가 취직되었던 일. 결국 그녀가 맡은 일은 OECD 한국대표부에 나와 있는 주재원 가족을 위한 각종 뒤치다꺼리(주거·여행·진학 관련 잡다한 일들)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뛰쳐나왔다는 이야기가. 도청 직원을 개인 가사도우미로 활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하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연상케 하는 외교가 사람들의 놀라운 사고의 유연성이. 그렇게 한 번 발 디디면, 그 안에서 곱게 공주 노릇 하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잘 짜인 그들의 이너서클에 놀랐던 기억이.
유부무죄(有父無罪), 무부유죄(無父有罪)
신정아 혼자서 줄줄이 사탕들을 엮어냈던 3년 전 학력위조 스캔들처럼, 유명환의 이 곱게 키우신 따님은 본의 아니게도, 어마어마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는데. 그녀는 아빠의 바짓가랑이 뒤에서 한사코 숨어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위선의 판도라 상자를 각각 열어젖힌 헤로인들의 운명치곤, 두 여자에게 가해진 세상의 비난 수위는 판이하다. 역시 부모를 잘 타고나야 하는 건가? 위선의 청소부에게 막말을 퍼부었던 경희대 패륜녀도 그녀를 잘못 키운(?) 부모가 대신 가서 사과했던 것처럼. 공주들은 여전히 드레스에 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여전히 진흙탕을 폴짝 뛰어넘으려고만 한다. 잘 차려놓은 상에 사뿐히 앉아 잘 먹기만 했을 뿐이라도 스태프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하듯, 그렇게 차려진 불법의 밥상에 앉아 꿀꺽 불공정의 녹을 삼키려던 그녀도 똑같이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언제까지 공주 노릇으로 인생을 허송할 셈인가.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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