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영화 를 보고 있었다. ‘제이슨 본’이 연상되는 원빈의 박력 있는 액션, 의 마틸다가 떠오르는 여자 아역, 속의 형사 캐릭터가 잘 반죽된 상태의 밀가루처럼 촘촘했다. 영화는 잔인했다. 마약, 장기매매, 살인이 주요 소재였던 만큼 화면은 핏빛으로 얼룩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한국 사회에는 영화보다 더욱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8월17일 밤 방송될 예정이던 문화방송 〈PD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불방된 것이다. 문화방송 이사회에서 프로그램 사전 시사를 제작진에게 요구했고, 제작진이 이를 거부했다는 게 방송 보류 결정의 이유였다.
소식이 알려지자 게시판, 블로그, 트위터, 미투데이 등 누리꾼들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PD수첩〉의 예고편과 시놉시스 등을 찾아내 퍼나르기도 하고, 다음 ‘아고라’에서는 방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미투데이의 한 이용자는 “〈PD수첩〉 불방이 국민적 관심과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니 지능형 안티에 가깝다”고 비꼬았다.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MBC가 MB 채널이 된 게 아니냐”며 문화방송을 질타했다.
최근 등 신체 훼손이 자주 등장하는 잔혹한 영화가 사회현상이 되기 시작했다. 카뮈는 에서 “단절의 지속이 부조리”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신체 절단의 이미지는 이러한 ‘부조리한 상태’의 은유로 볼 수도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작정하고 단절한 듯한 정부를 보면 왜 이런 영화가 유행하는지 이해가 된다. ‘영화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명언을 되돌려보면 사회는 이미 충분히 잔인하다.
이정국 기자 한겨레 오피니언넷부문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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