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에 갔다.
수년간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던 그 울렁거리는 추문의 진원지에, 아이 손을 잡고, 삼복더위를 헤치며 갔던 건, 차마 썩힐 수 없던 선물받은 ‘자유이용권’의 압박. 하루 종일, 그 희한한 세계를 탐험하며, 지금 내가 겪는 것이 고통인지 기쁨인지 잘 구분가지 않는 포스트모던한 놀이공원의 자극을 제대로 흡수해야 했다.
아이에 대한 칭찬마저 똑같아
몽키랜드를 벗어나오자, 마치 우연히 잠시 서 있는 듯한, 그러나 직원임이 분명한 언니가 “고객님 즐겁게 구경하셨어요?”도 아니고, “너 참 예쁘게 생겼다… 부럽다”는 사변적인 감탄사를 아이에게 날린다. 뭐라 할 말도 없고, 잠시 어깨만 으쓱하며 주춤주춤 서서 동행을 기다리노라니, 뒤에 나오는 또 다른 여자아이에게, 그 언니, 똑같은 어조로, 방금 들었던 멘트를 “부럽다”의 애틋한 뉘앙스까지 그대로 재발사하신다. 한국통신이 남발하던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구시대 유물로 따돌려버리는, 사적인 감탄을 가장한 이 친절 마케팅은 그들의 계산이 고단수였던 것만큼, 들켜버리는 순간의 충격도 진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컵에 아이와 함께 몸을 실었다. 이용자들의 머릿수를 세어 자리에 앉히는 역할을 하는 직원은, 컵이 돌아가는 동안, 미소를 지으며,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손과 발을 움직여 춤을 춘다. 차라리 이 삼복더위에 두꺼운 곰인형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노동이 더 편할 것 같은, 그녀의 억압된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무에서 오는 고통을 유발한다.
일찍이 우린, 텔레마케터들, 혹은 전화를 통해야 하는 온갖 서비스에서 인조인간의 향기를 맡아왔다. 아무리 내 쪽에서 사람같이 말해도, 그쪽에선 끝끝내 허물어지지 않고 로봇처럼 말하는 그 낭패감을. 사람이면서도,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울 수는 없다는 듯이. 아무리 찔러보고, 헛소리를 살짝 날려봐도, 상대는 동일 톤으로 감정을 유지하는 알약이라도 삼킨 듯 요지부동이던 때의 허망함을 이미 오래전부터 들이켜야만 했다.
라면 몇 봉지 사러 이마트에 들어가면, 90도로 내게 인사하는 남자와 마주쳐야 하고,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대려면, 빨간 망토를 입고, 인형처럼 깜찍한 동작으로,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셔도 좋다는 뻔한 사실을 알려주는 어린 처녀의 슬픈 몸짓을 소비해야 한다. 동족인 인간들이 점점 기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두려움이 우리의 뒷덜미를 부지불식간에 조여오고….
8시간 동안 로봇이던 저 처녀가,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찢어진 청바지로 갈아입으면, 자신의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은 순식간에 되돌아오는 걸까. 태엽 감긴 인형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각만큼 자동으로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신자유주의가 창궐하는 모든 세상에서 감정노동이 일제히 시장화되면서, 장시간 조작되는 노동자의 감정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는 ‘바이오피드백 치료’ 등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기도 하다. 체내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을 컴퓨터 모니터로 알게 해주어 환자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조만간 내가 웃고 울어야 할 순간을 알려주는 감정진단기가 첨가된 아이폰이 등장하는 ‘멋진 신세계’가 도래하지 않을까?
감정진단기가 나오지 않을까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도, 그것을 소비해주어야 하는 사람도 같이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 괴이한 현상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커피믹스 한 통 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짓누르는 이 탄탄한 수직 구조를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반복 학습의 틀에 점점 깊숙이 우리의 발을 담그게 하는. 그래서 오늘도 잽을 날려본다. 인조인간들의 등 뒤에 장착된 배터리가 살짝 튕겨져나오는 신나는 사건을 기대하며.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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