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름’을 망각하는 동물.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낚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건 낚임을 당한 뒤의 일이라는 것이 항상 문제다. ET가 바닥에 콩알처럼 떨어진 초콜릿을 하나씩 주워먹다가 꼬마 집까지 가게 되는 것처럼, 집어먹고 있을 당시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있다. 쇼핑…, 쇼핑이 그렇다. 쇼핑을 즐겨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 안 깊숙이 자리한 장비에 대한 사랑 혹은 집착이 얼마나 컸는지를 일깨워준 건 바로 쇼핑이다.
처음의 결정은 투명한 소주처럼 맑고 순수했다. 비싼 돈 주고 펜션에서 자느니 자연을 벗 삼아 텐트 치고 놀아볼까, 대충 텐트만 하나 있으면 나머진 어찌 되겠지, 1차로 텐트를 하나 질렀다. 그렇게 지른 텐트는 지름의 쾌락을 맛보게 하면서 이차적 장비 구매, 쇼핑 시즌 2로 이어졌다. 그래, 텐트가 있으면 집 냄비에다 밥을 해먹는 것보단 코펠·버너가 세트로 있어야 모양 빠지지 않는다. 하나씩 장만. 코펠·버너를 보니 이것들을 올려둘 야외 테이블도 그럴듯해 보인다. 3차, 그래서 또 하나 장만. 그래, 야영의 운치는 가스등이지. 아, 캠핑 의자가 빠졌구나! 역시 장만. 그렇게 하나둘 살림이 늘어갔다. 어느 정도 레벨업이 되면 이제 다른 캠핑족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나로 관심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이쯤 되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그래서 장만한 것이 화로 세트. 손도끼는 옵션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이것들은 내 차 트렁크에 질서정연하게 빼곡히 들어차 있다. 집 안엔 더 이상 둘 곳이 없으므로 난 날마다 캠핑 장비를 싣고 출퇴근하고 있다. 이것이 다 얼마어치일까? 하지만 더 생각하지 않는다. 계산하는 순간 카드 끝에 사심을 두게 되니까, 그러면 그 무엇도 다시 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쇼핑 목록은 늘어가게 되나 보다. 글을 쓰다 보니 기시감이 든다. 언젠가도 이러했던 거 같은데…. 맞다. 자전거를 타기로 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자전거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꽤나 질렀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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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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