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16만원을 놓쳤다. 한국의 1-4 패배로 끝났으니 ‘2-1 한국승’에 1만원을 건 당신은 할 말 없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적어도 ‘한 골을 넣는 팀이 진다’는 결과는 맞혔다, 라고 말하면 너무 구차해지려나.
벌써 세 번이나 빗나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사내에서 진행된 ‘사설 월드컵 토토’ 이야기다. 해당 경기는 남아공과 멕시코의 월드컵 개막전, 한국 대 그리스전,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이었다. 나는 개막전 남아공의 2-1 승리, 그리스전 0-1 한국패, 아르헨티나전 2-1 한국승에 각각 1만원을 베팅했다.
치욕적인 결과였다. ‘정말 가당치 않은 베팅만 계속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내가 아무 계산 없이 거금 1만원을 투자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예측이 빗나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박을 좇는 사람들의 숙명이니까.
(내 멋대로) 토토 전문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월드컵 경기 결과 베팅 유형은 크게 네 가지다. 가장 흔한 부류는 ‘애국지사형’이다. 누구와 붙든 일단 한국의 완승에 판돈을 걸고 열렬히 ‘대~한민국!’을 응원한다. 애국심은 높이 평가하지만 대개 적중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한국이 3-1로 이길 것이라고 예측한 분이 있는데, 토토의 흥행을 맡아주시는 이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용자다.
‘매국노형’은 반대다. 한국의 대패를 예상하고 느긋하게 경기를 감상한다. 한국이 지면 기분이야 좋지 않겠지만 호주머니는 두둑해진다. 한 언론사 간부가 아르헨티나전 1-4 한국패를 적중시켜 후배들의 코 묻은 돈을 쓸어갔다던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좋은 선배로 대접받기 어렵다. ‘애널리스트형’은 팀 전력과 상대 전적, 그 밖의 변수 등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모아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 노력하는 쪽이다. 물론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아무리 분석에 분석을 거듭해봐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대박추구형’에 속한다. 과학적 분석이나 피 끓는 애국심, 토토의 세계에서 이런 건 무의미하다. 무조건 배당금액이 높은 경우의 수를 좇는다. 다른 사람이 모두 베팅을 마친 뒤 빈칸을 찾아가는 편이다. ‘가당치 않은 베팅만 계속한다’며 나를 비웃던 자들, 두고 봐라. 내가 따면 국물도 없다.
6월26일 밤 한국 대 우루과이의 16강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지갑에서 빳빳한 1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조심스레 토토판 위에 적어본다. ‘4-2 한국승!’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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