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겨울이 간다. 유독 춥고 지루했던 겨울이 간다. 그런데 아쉽다. 이유는 한 2년 전부터 맛들인 스키 때문이다. 몇 해 전 친구가 준 장비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얀 설원에 올라 아래의 경치를 구경하면 눈이 즐겁고,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즐거워진다. 특히 낭떠러지 같은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느끼는 스릴과 재미는 겨울 스포츠의 백미가 스키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
한창 스키에 재미를 들이다 보니 겨울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면 눈 때문에 고통받는 그곳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직도 거기 스키장은 팽팽 돌아가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고, 어느덧 다가오는 주말에 눈에 쌍심지 켜고 노려보는 아이 엄마(집사람은 스키를 좋아하지 않아서 주말에 가족을 버리고 나 혼자 스키장 가는 것을 싫어한다)를 뒤로하고 설원에서 신난 내 모습을 흐뭇하게 그려본다.
얼마 전 강원도에 연속으로 눈이 내린 날, 결국은 참지 못하고 눈의 유혹에 이끌려 강원도 영서지방의 한 스키장으로 가고야 말았다. 하얗게 뒤덮인 설원에 올라 스키에 시동을 걸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사고가 났다. 눈이 오긴 했지만 따뜻한 날씨 탓에 군데군데 눈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던 것. 게다가 폐장을 불과 며칠 앞둔 끝물의 스키장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슬로프 사정은 엉망이었다. 가장 경사가 급한 곳에서 사람이 없으니 호기를 부리고 싶어진 게 화근이었다.
이기지 못할 스피드를 내면서 내려오다 그만 슬러시 둔덕에 스키의 앞날이 처박히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스키 따로, 몸 따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르겠다. 미천한 실력을 무시해 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중상을 입은 건 아니어서 어찌어찌 내려왔지만,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쑤시고 팔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속도 모르고 집안일을 이것저것 시키는 마나님이 원망스럽지만, 아프다고 하면 가뜩이나 화가 난 아내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뻔해서 이를 악물고 청소기를 돌린다. 진동하는 청소기의 울림이 아픈 팔 끝에 그대로 전달된다.
희한하게도 이런 다음날은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이 많다. 사물함에서 카메라 가방을 드는데 허리에 통증이 온다. 카메라를 둘러멘 어깨가 돌아가지 않는다. 에구구, 남들은 눈 때문에 죽니 사니 하는 판에 혼자 신났다고 놀았으니 벌 받는 게 분명하다. 집사람의 원망 때문인지, 아님 내 실력을 무시한 자만 때문인지 하늘에서 내린 벌의 고통을 육신으로 느끼면서 나의 겨울도 가고 있었다.
윤운식 기자 blog.hani.co.kr/yws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감사원장 후보자에 김호철 전 민변 회장 지명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7/17650888462901_20251207501368.jpg)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심근경색’ 김수용 “저승 갔다 와…담배, ○○○ 이젠 안녕”

‘갑질’ 의혹 박나래 입건…전 매니저 “상해, 대리처방 심부름”

‘소년범 의혹’ 조진웅 은퇴 선언…“지난 과오에 마땅한 책임”

‘강제추행 피소’ 손범규 국힘 대변인 사임…장동혁 두 달 지나서야 “신속 조사”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윤어게인’ 숨기고 총학생회장 당선…아직도 ‘반탄’이냐 물었더니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이준석 측근’ 탈당…“이준석, 장경태 두둔하더니 이제 와서 비난”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