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무상급식파’는 좌파라며 대파 한쪽도 공짜는 안 된다던, 그러다 지방선거철이 다가오니 너도나도 제 자신이 무상파의 본류라며 장풍 같은 허풍을 날리던 어지러운 무림의 시대.
낙동강·세종시에서부터 강남 은마아파트까지 주먹을 쥘 줄 아는 자의 쟁패가 멈춘 날이 없고, 인적 드문 나대지엔 이름도 없이 스러진 이만 이른 봄 동백처럼 투둑투둑 버려지고 쌓였으니 중원은 그저 어지럽고 어지러워 봄이 와도 그것이 봄일 리 없었다.
그 틈을 뚫고 산발적인 쟁패에서 이름을 얻으며 한 번도 보지 못한 필살기로 저잣거리 필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계파가 있었으니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월권파’라는 것이었다.
파발마를 탄 듯 퍼져가는 입소문을 듣자하니, 월권이야말로 장풍과 비슷해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는 기가 차서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본류가 당랑거철(수레를 멈추겠다고 앞발을 든 사마귀)의 당랑권에 있는 건지 추적은 불가능하고, 월권에 당한 이들 입 주변에 분노와 절망의 거품만 가득했더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 선두엔 경찰이 있었는데, 가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의혹을 수사하면서 의심 교사들의 인사기록 카드, 연말정산 자료 따위 개인신상 정보를 달라고 경남도교육청에 요청한 것이 누구도 흉내 못 낼 ‘필살 월권’으로 두루 회자됐다. 인사기록이 뭔 상관인지 저잣거리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어찌했건 ‘월권’ 한 번에 혐의도 단정하기 어려운 이들을 까발리고 쓰러뜨리는 새 시대 권법으로 유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 월권은 ‘쿵작’이 필수인데, 마침 교육청도 해당 교사 몰래 자료 수집을 지시한 ‘막가파’였다.
월권의 공포는 시흥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이연수 전 시흥시장이 인허가 과정에서 뒷돈을 받았는데, 이를 수사하며 압수한 한 공무원의 수첩에 “내가 공무원이 맞나? 건설업자한테 꾸중이나 듣고…”라고 적혀 있던 게 알려지면서다. 검찰은 “한 건설업자가 이 시장이 있는 자리에서 이 공무원에게 ‘너 이렇게 큰 게 누구 때문인데 이런 허가 하나 내주지 않냐’고 질책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부연했다. 또 하나 ‘쿵작 월권’의 살상력에 중원은 요동을 쳤는데, 특히 제 본분이나 법을 대놓고 무시한다는 점에서 ‘어이상실’을 필살기로 삼는 ‘사오정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제아무리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 되는 시대일지언정 부글 중원은 법도에 죽고 살던 동방의 예의지국 아니던가. 지난 3월2일 대한체육회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줬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어린 곽민정 선수를 부르되 1시간 내내 의자를 주지 않은 것. 중원은 또 들끓었다. 무림에서 메달 서열에 도발하려는 ‘월권’만은 안 된다는 눈물의 고민과 저항으로 내려진 결정이란 걸 저잣거리는 알지 못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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