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지난 연말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에게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 시사 프로그램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언론인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는 위기에 놓이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느냐고 탄식했다. 안심하시라. 이 정도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언론 보도도 아닌 소설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작가가 사형선고를 당한 일도 있다. 다행히 작가는 죽음을 모면했지만, 폭발·방화와 암살 기도로 애꿎은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만 루슈디가 쓴 얘기다.
테러 시도로 수십 명 목숨 잃게 한 ‘문제의 책’때로 소설의 내용보다 소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실의 사건들이 더 흥미진진한 경우가 있다. 루슈디의 책이 출판된 것은 1988년 9월26일이다. 출간 직후부터 이슬람권 국가에서 판매 금지 조처가 내려진다. 작가의 출신국인 인도는 그달에 책 판매를 금지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방글라데시·수단·남아프리카공화국이 판매 금지 조처를 취하고, 스리랑카·케냐·타이·탄자니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가 뒤를 잇는다. 그리고 1989년 2월14일 이란의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종교재판인 ‘파트와’를 통해 작가와 출판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판결문을 일부 발췌해보면 이렇다. “전능하신 신의 이름으로. …세계의 모든 용맹한 무슬림에게 알린다. 이슬람과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에 반대해 쓴 책 의 저자와, 그 내용을 알면서 출판한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나중에 루슈디가 사과 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호메이니의 반응은 변함이 없었다. “설사 루슈디가 참회하고 역사상 최고의 신자가 된다고 해도, 모든 무슬림은 생명과 재산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루슈디를 지옥에 보낼 의무가 있다.”
파트와가 내려지고 며칠 뒤 이란 정부는 루슈디의 목에 현상금을 건다. 작가는 그때부터 9년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기나긴 도피 생활을 한다. 영국 정부와 이란 정부는 이 문제로 외교관계를 단절한다.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는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었다. 를 일본어로 번역한 히토시 이가라시는 1991년 7월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어 번역자인 에토레 카프리올로도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은 건졌다. 1993년 7월 터키어 번역자인 아지즈 네신을 노린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네신은 탈출했지만 같은 호텔에 있던 투숙객 37명이 불에 타서 숨졌다. 영국에서는 작가인 루슈디를 노리던 폭파범이 실수로 폭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책을 파는 서점도 보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1989년 4월 런던 시내 서점 두 곳이 폭탄 공격을 받았다. 같은 해 5월에도 역시 두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고, 대형 백화점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펭귄출판사 지점 세 곳에서 터지지 않은 폭탄이 발견됐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1989년 3월 한 달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에 신고된, 서점에 대한 폭파 위협만 78건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두 곳의 서점이 공격을 받았고, 뉴욕의 한 지역 신문사는 진열대에서 책을 치운 서점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건물이 거의 다 폭파될 정도의 보복을 당해야 했다. 영국에서 루슈디의 책을 파는 서점은 한 곳도 찾기 어려워졌다. 미국에 있는 서점의 3분의 1은 책을 치웠고, 판매하는 서점도 몰래 숨겨놓고 팔았다.
아마도 가장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는 아랍어권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나기브 마푸즈에 대한 공격일 것이다. 당시 82살이던 노작가는 루슈디의 소설이 이슬람을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호메이니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어떤 신성모독도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보다 이슬람과 무슬림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집 부근에서 습격을 당해 흉기로 목을 찔렸다. 생명은 건졌지만 오른손에 영구 장애를 입었다. 이 사건 이후 마푸즈는 하루에 몇 분 이상 글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작품 활동을 못하다시피 했다.
가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 정도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을 샀을까? 사실 이 책은 영어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가볍게 읽을 만한 대중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초기에 서구 언론은 아랍권 대중이 이토록 즉각적으로 격분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분노의 원인은 일부 오해에 기인한 것도 있고, 실제로 기분이 상할 만한 대목도 있다.
오해의 소지 있지만 ‘상상의 산물’임도 분명우선 무엇보다도 책 제목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어판으로는 로 돼 있지만, 원제목 ‘세이태닉 버시스’(Satanic Verses)에서 ‘Verses’는 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의 절’을 의미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특정 종교의 경전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경전의 절’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아야트’(ayat)는 다른 종교가 아닌 이슬람의 경전, 곧 쿠란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아랍어로 읽으면 이 책 제목은 ‘악마의 쿠란’이 되고, 이슬람교의 경전 자체가 악마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소설을 읽지 않은(그 나라들에서는 판매는커녕 출간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랍권 국가의 일반인들이 제목만 듣고도 격분한 것은 결국 번역상의 오해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오해의 탓만은 아니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예언자의 이름을 ‘마훈드’(Mahound)라고 지었다. 무함마드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 명칭은 십자군이 무함마드에 대한 경멸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다. 내용 중에도 이슬람교 신자라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부분이 많다. 주인공의 꿈에 보이는 신의 모습은 전혀 신비하지 않다. 전능해야 할 신은 중년의 안경 쓴 대머리 남자로서 비듬이 많아 보이는 모습으로 나온다. 무엇보다도 모욕적인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12명의 창녀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 12명의 이름을 쓰고, 그들을 흉내 내면서 몸을 판다는 것이다. 이슬람 신자들은 무함마드의 아내들을 ‘모든 신자의 어머니들’로 추앙한다고 한다. 창녀에게 그들의 이름을 붙인 것은 가톨릭 교도 앞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책이 이슬람교를 모욕하기 위해서 쓰인 것일까?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다고 할 만큼 사실적 인 묘사로 이뤄져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천사와 악마를 상징하는 두 주인공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타고 가던 여객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면서 두 사람이 추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만9002피트 상공에서 추락하는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서로 대화를 한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허구라는 것이 분명하다. 두 주인공은 그 높이에서 추락하고도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살라딘 참차는 그 뒤에 머리에 뿔이 돋고 꼬리가 나면서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작가가 ‘상상’한 내용을 썼다는 것을 당연히 알 수 있다.
소설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출신인 살라딘 참차는 영국에서 성우로 살아간다.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 뒤에 숨어서 목소리만 내는 그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 생활을 한 인도 사람들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외견상 각각 천사와 악마의 분신으로 보이는 지브릴과 살라딘의 행적을 보면서는 결코 분명하지 않은 선과 악의 구별에 대해 고민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다의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 책의 내용을,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단지 이슬람교에 대한 모욕으로만 읽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이슬람교를 비하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표현을 써야 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마훈드’가 아닌 ‘무함마드’로 해도 별 상관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만 할 수 있다. 창작의 자유는 바로 그런 질문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쨌든 책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출간 다음해인 1989년 5월까지 미국에서만 75만 부가 팔림으로써 판매 1위를 차지했는데, 2위에 해당하는 책보다 5배가 많이 팔렸다고 한다. 작가인 살만 루슈디는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고 슈퍼모델 출신의 아내를 맞기까지 했다. 출간 10년이 지난 1998년 이란과 영국의 외교관계는 정상화됐고, 비록 그에 대한 파트와가 효력을 잃지는 않았지만(파트와는 애초에 발령한 사람만 취소할 수 있는데 호메이니가 사망했기 때문에 취소가 불가능한 상태다) 루슈디도 은신 생활을 끝냈다. 결국 이 책을 없애려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힘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확실한 사실은,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부터 우리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해왔다.
조선 후기만도 못한 오늘날 ‘표현의 자유’P.S.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한 연예인 문근영씨에 대해 “‘기부천사’라는 문근영이 빨치산 손녀이고, …빨치산 할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동안 그녀는 빨치산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이다”라는 글을 쓴 지만원씨를 비판하면서 “지만원, 지는 만원이나 냈나?”라는 글을 올린 네티즌에 대해 2009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유죄판결(모욕죄)을 했다. 모욕죄의 법리를 장황하게 설명한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의 이름·나이 등을 가지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19세기 조선의 시인 김삿갓은 부패한 지역 유지들을 겨냥해서 ‘원생원’이라는 제목의 풍자시를 썼다. “해 돋으면 까부는 원숭이(猿)-원생원(元生員), 저물면 달려드는 모기(蚊)-문첨지(文僉知), 고양이 뜨면 죽는 쥐(鼠)-서진사(徐進士), 밤마다 쏘아대는 벼룩(蚤)-조석사(趙碩士)”라는 내용이다. 명백히 이름을 가지고 조롱하는 글이지만 김삿갓이 이 시로 인해서 관아에 끌려가 문초를 당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고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종교혁명 직후의 이란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19세기 조선 사회보다 좋아졌는지는, 솔직히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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