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피리연대, 뉘신지…
이것 참, 미스터리 미스터리, 미스터리 미스터리다.
사건은 1월25일 월요일에 시작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주는 시작됐고 매주 월요일이 그러하듯 팀 회의와 뒤이은 전체 회의로 오전 시간이 바쁘게 지나갔다. 몇 시간 만에 내 자리에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는 한지로 곱게 싸인 두 개의 꾸러미가 올려져 있었다. 홀쭉한 꾸러미와 뚱뚱한 꾸러미. 뭘까? 우선 홀쭉한 꾸러미의 포장을 벗겨봤다.
‘임지선상’. 상장이 들어 있었다. 기막히게도 내 이름이 상 이름이었다. 어리둥절. 아래를 읽어 내려갔다. “임지선은 감자탕 아줌마 체험 기사로 지구피리연대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기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려다가 아예 임지선상을 만들고 임지선에게 그 상을 첫 번째로 수여하노니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피리를 불며 뒤통수를 때리는 지구인이 되자.”
지난해 연재했던 ‘노동 OTL’ 시리즈 중 내가 썼던 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편을 읽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꾸러미는 꽤 컸는데 뜯어보니 꽃분홍색 니트 티셔츠가 들어 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 공정무역 상품인 듯했다.
상을 보낸 이는 ‘지구피리연대’라는 곳이었다. 상장을 보고 알았을 뿐 그 외에 표식은 없었다. 두 개의 꾸러미 어느 곳에도 보낸 이의 주소나 표식은 없었다. 우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결국 인편으로 배달했다는 말이렷다! 궁금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지구피리연대’를 검색해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동료들은 “자작극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임지선상’의 충격이 가실 때쯤, 또 사건이 발생했다. 2월5일 금요일이다.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운 뒤 돌아와보니 책상 위에 A4용지 한 장과 과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변의 누가 준 과자겠거니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누가 과자를 놓고갔네, 잘 먹을게요”라고 말한 뒤 봉지를 비웠다. 먹고 나서야 A4용지에 눈이 갔다. 지구피리연대였다. 종이는 그들이 아름다운가게에 아이티 기금으로 20만8460원을 냈다는 확인서였다.
그들은 왜, 그들의 활동을 내게 알리는 걸까? 그들은 어떻게 내가 자리를 비운 틈만 골라 내 책상에 당도해 선물을 놓고 가는 것일까? 어찌하여 아무런 목격자도 없는 것일까?
참 짜릿한 미스터리다. ‘칭찬 가뭄’인 척박한 지구별에서 허덕대던 내게 참으로 감미로운 피리 소리다. 혹자는 스토커가 아니냐며 걱정하지만, 스토커도 이쯤이면 고급 스토커라 생각한다. 작은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고래를, 아니 임지선을 춤추게 해준 지구피리연대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노동 OTL 시리즈를 읽고 전자우편을 보내주고, 먹을 것을 보내주고, 칭찬을 보내준 이들에게 더불어 감사한다. 지구피리연대에 마지막 한마디. 더 이상 뒤를 캐지 않겠으니 그 신비감, 쭉 이어가시라. 이것 참, 땡큐 베리 머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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