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겨울, 특이한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새터민들로만 이루어진 성매매 업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선배 새터민인 포주의 섭외(?)는 새터민을 위한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봐야 한 달에 돈 100만원 손에 쥐는 현실을 친절하게(?) 깨우쳐줌과 동시에, “눈 딱 감고 몇 년만 고생해라”는 유혹으로 아가씨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터민의 불법과 강남의 불법
고백건대 이 아이템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잡아끌리라는 계산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퍽이나 ‘섹시한’ 아이템이었고 ‘옐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섹시한 옐로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려던 요량만은 아니었다.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는 정의감도 있었고, 남한에 와서 못된 것만 속성으로 습득한 포주의 행각에 브레이크를 걸고도 싶었다. 방송이 동원할 수 있는 솔루션을 통해 불운한 여성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도 싶었다.
우리는 경찰과 함께 문제의 업소에 들이쳤고 당연하게도 업소 안에 있던 여종업원들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녀들을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지만 “다섯 식구 목전에서 굶어죽는 것을 보고” “아홉 나라의 국경을 넘어” 서울의 지하로 스며들었던 그녀들의 기세는 얼치기 PD의 세 치 혀로 꺾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오가는 말의 홍수 가운데 “당신들의 행동은 불법”이라는 말이 삐져나왔을 때, 등줄기에 식은땀이 솟는 매서운 반박이 터져나왔다.
“PD 양반, 지금 나랑 강남에 가자. 우리보다 더 휘황찬란하게 차려놓구서리 경찰서 앞에서 장사하면서 대놓고 법 어기는 사람 많다. 당신, 강남 룸살롱 앞에서 여기 불법이라고 카메라 들이밀고 쳐들어갈 자신 있는가.” 그녀는 절규했다.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가.”
그 노호 앞에서 나는 그때껏 부여잡고 있던 대의와 명분과 기획 의도를 깡그리 잃어버렸다. 물론 나름대로 정연한 취재 논리는 있었지만 ‘우리의 불법을 논하는 너는 더 크고 더 만연한 불법에 똑같이 엄격할 수 있느냐’는 단순한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당신들이 불법이라면 강남의 룸살롱도 불법이니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주겠다고 큰소리칠 만큼의 자신감이 없었던 까닭이다. 재갈을 문 듯 침묵하는 내 앞에서 그녀는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왜 우리만 불법인가.”
물론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항변이 두루 통한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의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검은색 벤츠는 무사통과시키면서 10년 된 중고차에는 에누리 없이 “위반” 목청을 높이는 경찰 앞에서 뉘라서 핏대를 세우지 않을 것인가. 그 경찰이 ‘준법’을 논한다면 그보다 더 꼴사나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궁무진한 고초와 신산을 겪으며 그날에 이르렀던 그녀들에게 내 모습이 그토록 우스꽝스럽게 비쳤으리라는 것을 상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고 가슴이 욱신거린다.
거의 아물어가는 그날의 상처를 헤집은 이는, 용산 참사로 돌아간 분들의 주검을 1년 가까이 냉동창고에 넣어두면서도 “불법”을 되뇌시더니,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대그룹 회장님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사상 유례없는 ‘1인 사면’을 감행하신 분들이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막상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서 저분들은 얼마나 면구스러우며 여북이나 창피할까 하는 연민이 오롯이 마음을 채운 것이다.
‘1인 사면’ 여북이나 창피할까, 싶은데…아마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양심을 괴롭히리라. 적어도 대놓고 ‘준법’을 말하거나 ‘나라의 격’을 운위하시기는 장히 어려울 것이거니와 억지로라도 할라치면 목구멍에 가시처럼 ‘회장님의 기억’이 거치적거리시리라. 일개 PD의 마음이 이런데, 하물며 법을 집행해 세상을 다스리는 분들의 소회야 일러 무삼하겠는가. 아닐 거라고? 택도 없다고? 어허 누가 그런 무례한 소리를.
김형민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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