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지상에 착륙하기 전, 공중에서 눈은 가치중립적으로 내린다. 어떤 장소든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낙하한다. 그리고 지상에 착륙할 때, 눈은 저마다 다른 무게를 얻는다.
도심 대로에 떨어진 눈은 가볍게 덤프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치워진다. 달동네에 쌓인 눈은 한파를 막을 유일한 연료인 연탄 배달을 지연시킬 만큼 무겁게 눌어붙는다. 스키장의 눈은 질주의 쾌감, 0.1g의 무게다. 지하철 문을 얼려버리고 버스의 바퀴를 붙잡는 눈은 이른 출근길 샐러리맨들의 짜증만큼 무겁다. 학교 운동장에 내린 눈은 아이들의 꿈처럼 영롱하되 입시에 갇힌 꿈만큼 ‘짱나는’ 무게, 연인의 어깨에 쌓이는 눈은 순간 중력 1t의 달콤한 무게, 제설 책임자들에게 눈은 오금이 저리는 철퇴의 무게, 아이들에게 눈은 차갑지만 보드라운 깃털의 무게,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인생의 무게, 노숙자의 비닐 천장 위로 내리는 눈은 납빛 허기와 오한의 무게, 남일당 건물에 내리는 눈은 무너진 망루의 무게, 그리고 저마다의 무게…. 박대기 기자의 어깨에 내린 눈은 포털 검색순위를 결정하는 권능을 발휘했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의 유골을 품은 소나무 위에도 눈은 회한을 지우듯 평화롭게 얹혔다.
백지처럼 세상을 덮은 저 눈은 우리 마음의 리트머스 시험지. 가치중립의 눈을 맞으며 나는 어떤 무게의 눈을 먼저 떠올렸던가? 다시 한번 큰눈이 내리면 물어볼 일이다. 내 마음은 어떻게 물드는지.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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