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뉴스도 제대로 못 본 한 주였다. 그래서 휙 지나가며 인터넷의 머리기사만 봤는데 어리둥절해졌다. “어떤 국회의원이 빵꾸똥꾸 정신분열증 걸려 앵커가 방송 중 웃었다.” 제목만 엮으니 대충 이랬다. ‘빵꾸똥꾸’가 나오는 시트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지라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우리말에 서툰 외국인이 봤어도 나처럼 갸우뚱했을 것이다. 기이하고 이상한, ‘빵꾸똥꾸’스러운 사건은 또 있었다. 이른바 ‘초인종 괴담’이었다.
지금 공포는 미래의 ‘전설의 고향’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오피스텔과 원룸촌의 초인종 옆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식이 적혀 있다는 것인데 별로 구체적이지 못한 정황에 비해 꽤 오싹한 이야기였다. 그 표시라는 것도 연금술의 금속 기호나 카발라 기호처럼 그럴듯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α’ ‘β’ ‘x’ 등 간단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다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단순성 때문에 공포는 배가되고 있었다. 대체로 혼자 사는 여자를 노리는 도둑들의 영업비밀로 보는 의견이 많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고 그저 의혹만 커질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의 특성상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가지에 가지를 치며 치밀한 도시 괴담으로 발전하기에 적당한 소재였다. 특히 잠재적 희생자가 자신의 정보가 밝혀진 불리한 상황에서 적대자를 따라잡아야 하는 공포 스릴러의 구조까지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괴담이었다.
괴담을 ‘시대의 창’이라고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괴담은 유행가처럼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빨간 마스크’나 ‘홍콩 할매’류의 초딩 대상 괴담부터, 한국의 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학교 괴담, 한참 인신매매가 문제가 되던 시절에 들은 친구의 친구의 명문대생 오빠가 다리를 절단당해 서울 명동에서 앵벌이를 하다가 동전을 주던 어머니한테 발견됐다는 사회현실파 괴담, 또 가수 나훈아의 허리띠를 풀게 만든 연예인 괴담까지 하여튼 장르별·시대별로 다양하다.
나는 괴담도 일종의 사회 공공재산이라 생각하고 귀담아듣는 편이다. 때로는 터무니없이 극적인 전개에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대중에 의해 검증된 이야기로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매력적인 원형을 지녔다. 우리의 지금 공포는 미래의 ‘전설의 고향’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설화·전설·민담을 다룬 를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그러했듯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의 그림 형제는 원래 유명한 언어학자·문헌학자로, 독일에서 전승돼오던 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편집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를 만들었다. 만약 그림 형제가 ‘초인종 괴담’을 들었다면 당장 이야기집에 묶었을 테고 여기에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맛대로 각색과 윤색이 보태져서 ‘헨젤과 그레텔’급의 고전이 되었을지 모른다.
괴담은 그 시대 민중의 은밀한 공포와 억압된 욕망을 괴이하게 표출한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어찌나 괴담들은 하나같이 괴담스러운지 그저 대중이 늘 괴담 자체를 고파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는 잠시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켜줄 강력한 주술을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혹시 괴담이 품고 있는 일말의 리얼리티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자꾸 과장하고 변형시키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삭막할수록 이야기는 꽃핀다어쨌거나 범죄에 취약한 계층의 심리적 불안을 교묘하게 자극해 사람들 마음에 안착한 이번 ‘초인종 괴담’. 그러나 괴담으로서 진검승부를 하려면 아직 거쳐야 할 관문이 남았다. 일단 그런 장난을 누가 했는지 잡아야 한다. 현실 속에서 풀 수 있는 문제를 괴담으로 몰아가는 것은 좋지 않다. 또 괴담이나 다름없는 억지를 이미 현실이라며 밀어붙이는 것도 보기 안 좋다. 세상이 삭막할수록 이야기는 꽃핀다는 이 아이러니, 혹시 이런 걸 두고 ‘빵꾸똥꾸’라고 하는 것인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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