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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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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 가지 부류

등록 2009-08-05 10:49 수정 2020-05-03 04:25

최근 검사들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되는 게 많다. 몇 년 동안 검찰 출입기자를 한 처지여서 나름대로 알 만큼 안다고 여겼던지라, 새로이 지득하게 되는 정보들이 사뭇 황망하다. 검찰총장 후보자들의 알콩달콩한 이력들이 공개되는 탓이다.
검찰을 취재해본 경험에 비춰 자의적으로 검찰 조직을 분류해보자면 크게 세 가지 부류가 대두된다.
첫째, 공안부 검사들이다. 나라의 안위를 한 몸에 짊어진 듯 기자를 만날 때마다 나라 걱정에 차가 식는 줄도 모르던 그분들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만나본 가장 열렬한 ‘자칭’ 애국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712호 ‘만리재에서’를 통해 대략적인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이 전통은 지금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가 조·중·동 주요 광고주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인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대표를 공갈·강요 혐의로 기소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공갈·강요가 이젠 첨단범죄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안통’인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는 뛰어난 ‘이재’마저 온 천하에 과시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기발한 ‘공안적 마인드’와 섬세한 ‘공안적 감수성’을 연마해야 할 때, 그분은 틈틈이 또 다른 비기를 갈고닦았던 것일까? 그 공력이 가상하다.
둘째, 특수부 검사들이다. 특별수사부 검사. 검찰의 꽃이기도 하다. 예전에 검찰이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에 치여 끽소리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후 검찰권에 무게가 주어지면서 그 권위와 실력을 뽐내는 대표적인 동아리가 됐다.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권력이 지시하거나 권력의 마음에 들 만한 사건은 물불 안 가리며 물어대는 ‘사냥개’였지만, 살아 있는 권력이 연루된 사건은 너무나 조심스럽게 다루는, 꽃보다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들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 그들이 동물적이었는지, 식물적이었는지는 우리가 눈물로써 기억하는 바다.
셋째, 형사부 검사들이다. 검찰청에 출입할 때 사실 형사부에는 잘 찾아가지 않았다. 공안과 특수에 치여 빛이 나지 않는 곳이었다. ‘잡범’들이나 다루면서 특수·공안으로의 승격을 절치부심하는 검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관할 지역의 변사 사건을 취급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검에 참관했는지 지긋지긋한, 그러면서도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설명하던 검사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형사부 검사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진 것은. 그들이 수사하는 건 소소한 사건들이지만, 거기엔 조작된 이데올로기도, 기름기 흐르는 피고인과 정치적으로 느끼한 수사 결론도 없었다. 형사부 검사실에는 그저 사람 속에 깃든 절망과 어리석음, 또는 주체할 수 없는 광기 같은 것들이 수갑을 차고 있었고, 검사들의 얼굴엔 사뭇 철학적인 관조가 묻어났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런 호감마저도 접어야 할 듯하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는 공안부 검사도, 특수부 검사도 아니었다. 형사부와 법무부 기획 부서를 오간 ‘평범한’ 검사였다. 그런데 ‘호기심’과 ‘모험심’이 남달랐단다. 요트와 승마를 즐겼고, 미스코리아 예심 심사위원장을 했단다. 검사란 아무리 ‘특수’하지 않고 ‘공안’스럽지 않아도, 그 정도 취미생활을 즐기는 자리였던 건가. 잡범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형사부 검사실 한켠에서 과중한 업무의 피로를 호소하던 파릇파릇한 검사들이, 승진해서 부장검사가 되고 검사장이 되면 저렇게 새로운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일까.
공안을 한 검사는 공안으로, 특수를 한 검사는 특수로 도돌이되는 검찰 인사를 보며, 다양한 부서와 다양한 사건을 경험해야 균형감각 있는 검사로 성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그도 짧은 생각이었다.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특수한 취미와 경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검찰을 떠나 다른 경험을 두루 겪어본 이들이 검찰총장에 오를 수는 없을까. 요즘 젊은이들 용어로, 제대로 된 ‘스펙’과 ‘포트폴리오’를 갖춘 검찰총장 후보자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솔직히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김준규 후보자가 두 차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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