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21] 쩨쩨한 놈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로 나뉜다. 남자와 여자. 만약 그 남자와 여자를 섞는다면? 또 다른 구분이 가능하다. 기혼자와 미(또는 비)혼자. 그런데 지난 6월 나는 그 분류에서 소속을 바꿨다. 물론 미혼자에서 기혼자로.
지난 6월21일. 결혼식을 올린 그날, 나도 여느 신랑처럼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일단 날씨부터 그런 믿음을 뒷받침했다. 전날까지 억수처럼 쏟아지던 빗줄기는 결혼식날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 이런 기적!) 분수에 맞지 않게 서울 남산 자락 ‘야외’ 예식장을 예약하고 불안에 떨었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하늘이 내 편임을 감사해했다. 신부 얼굴처럼 둥글둥글한 해님의 축복을 받으며 식장에 걸어 들어갔다.
결혼식 며칠 전부터 선배(즉 기혼자)들은 “워낙 정신이 없어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들 말했다. 나름대로 맞는 말이었다. 뭐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무슨 주례사를 들었는지, 폐백에서 절을 얼마나 했는지…. 지금 내 머릿속에 그런 것과 관련해 남아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유독 특이하게도 떠오르는 정보들이 있었다. 바로 누가 결혼식에 왔는지, 또는 안 왔는지다.
회사 사람들 가운데선 편집장 P를 본 기억이 없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P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애가 보채서 일찍 나왔을 뿐 결혼식장엔 갔다”라고 말했다. 미심쩍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후배 J. 신혼여행을 다녀온 며칠 뒤 우연히 회사 앞 식당에서 J를 만났는데, 갑자기 그가 결혼식에 오지 않았을뿐더러 ‘봉투’조차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실 그도 미혼이었다. 나도 모르게 “너, 축의금도 안 냈지? 너 꼭 그렇게 살아야겠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런 선배의 ‘갈굼’에 J는 민망해하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그런 표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당황했지만 이미 쏟아낸 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쩨쩨한 놈이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덩치답게 통도 큰 것 같지만, 사실 속은 좁디좁은 좀생이였던 것이다. 평소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건만, 결혼식을 거친 뒤론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나의 이런 고민에 “야, 누구는 결혼식 치르고 난 뒤론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마에 ‘3만원’ ‘5만원’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더라. 너는 약과다”라는 위안성 멘트를 건넸다.
그런데 그런 위안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 또한 지금도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왠지 모르게 그의 이마에서 ‘○짜리’라는 딱지를 보기 때문이다.
이순혁 기자 blog.hani.co.kr/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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