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이 진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해 봄, 멀리서 전화선을 타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꽃이 한창이야. 보고 가면 좋을 텐데. 하긴 네 나이에 꽃이 왜 좋은지 어찌 알겠남.” 말씀이 자랑과 타박 사이에 걸쳐 있었다. 취미라기에는 벅차게 철쭉 분재를 키우고 계셨던 어머니는, 온갖 색으로 피어난 꽃들이 당신에게 주는 기쁨을 전달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런가, 나이가 들면 꽃이 더 환하게 보이나. 이 나이에는 알 수 없다 하니 기다려봐야겠지만, 이유는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꽃을 발견하는 것은 자기 안에서 유리공을 꺼내 보는 일과 비슷하리라. 단조롭게 푸르렀던 잎들 사이로 그렇게 놀랍게 색채들이 솟아나는 건, 아마도 오랜 세월 세파와 실망으로 작은 금들이 나 있을망정, 여전히 잔잔하게 빛나는 자신의 영혼을 마주 보는 일처럼 느껴지리라. 그리고 이는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이 주름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나” 하고 거울을 보면서 쓸쓸하게 웃는 모습과 짝을 이룬다. 세상의 한 순환을 겪고 나서도, 이상하게 열여섯처럼 심장이 뛰고 있다고 느끼는 불균형에 마주치는 일이 노년의 정체일까.
그런데 도대체 지금 저 아랫세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15살의 한 소년은 “중3인데 50년은 더 산 것 같다. 사는 게 고통이다”라고 적고 주위를 떠났다 한다. 노년의 말과 반대로 향하고 있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더 많은 수업과 면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아니, 우리는 이를 사춘기 특유의 불안정한 체험으로 간주하고 곤란한 것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의 무게는 그가 넘겼던 달력의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실재의 시간, 지속은 우선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곳에 있다”라고 말한 베르그송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그 소년의 체험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었다. 15개의 나이테 안에 담겨 있던 50년의 고통은 우리 모두와 연결돼 있다.
명절 때마다 아이들은 성공하라고 배웠지만, 성공 모델 수는 터무니없이 적았다. 부모들은 전문직과 대기업을 성공의 동의어처럼 반복했고, 아이들은 그곳에 진입하기 위해 25살이 되도록 긴 줄을 서 있었다. 부모의 열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배우지 못했던 것은, 의 비행조종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이 분야에 사람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뽑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스펙’ 만들기에 대학 시절을 바쳤다는 20대들의 울분은 어디에서 오는가. ‘스펙’(specification)은 말 그대로 기업의 요구 사항을 나열한 것이므로, 유감스럽게도 대기업 밖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힘들더라도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10대들에게도 여전히, 괴롭더라도 참고 줄을 서 있으면 안정적인 자리가 네 몫이 될 거라고 말하는 게 현명한 일일까. ‘힘들다’와 ‘괴롭다’, 두 단어를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혼란스럽게 써서는 안 된다. 힘든 일 없이는 지극한 즐거움에 도달할 수 없지만, 괴로운 것은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그러므로 소년의 좋은 안내자는 장년이 아니라 노년이다. 눈을 지긋이 감은 채로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고 읊조릴 때, 그것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허무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예전 중요했던 몇 번의 갈림길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좋았는데,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다른 길로 접어들었더라면 더 충만하게 당신의 삶을 채웠으리라는 아쉬움 말이다. 그런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은 전국에 등수를 매겨야겠다는 이유로 갈림길들을 틀어막고 있다. 이대로라면 열여섯의 꽃들은 스산하게 떨어지고, 열매는 열리지 않으리라.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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