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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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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놔두라

등록 2009-03-05 10:27 수정 2020-05-02 04:25

몇 년 전 캐나다를 비롯한 몇몇 서양 나라에서는 아이들의 음성과 영상 이미지를 광고나 상업적 목적으로 남용하는 일을 금지하는 규제가 시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온당한 일이다. 아이들은 조물주가 이 비참한 세상의 끝자락에 숨겨놓은 마지막 보물이며, 이들의 존재와 모습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인상은 대단히 강렬하다. 그래서 대규모 프로파간다 장치가 마련된 대중사회가 출현한 ‘광고의 시대’ 20세기에 들어서면, ‘독재자’ 찰리 채플린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거쳐 온갖 광고회사와 연예인들까지 자신을 선전하는 데 즐겨 사용해 마지않는 대상으로 아이들은 남용되고 또 남용돼왔다.

원숭이에게는 어른·아이가 없다

아이들은 놔두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이들은 놔두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동노동을 금지한 19세기의 공장 입법은 단지 야수적 착취에 제한을 가한다는 사회경제적 의미 이외에도 근대 유럽인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발견한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 ‘어른들의 게임에서 아이들은 빼주자’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만든 세상에 칭칭 엮여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천사 같은 아기들에게 최소한 얼마간이라도 정직하고, 아름답고, 서로를 아끼고, 모든 사람과 동물이 평안하게 사랑하는 꿈에 폭 싸여 있는 여유를 주자는 것이다. 이미 근대 초기부터 어린아이가 성인과 차별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유럽인들은 아동노동 금지법을 통해 ‘어린이’(childhood)라는 개념의 의미를 주관적·객관적으로 확립했던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끝자락, TV의 출현과 TV 문화의 지배는 결국 이렇게 힘들여 확립한 ‘어린이’라는 인간 존재의 깨달음을 무로 돌려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닐 포스트먼의 이라는 책은 바로 이러한 사태의 현황과 인과관계를 무서운 설득력으로 주장하고 있다. TV라는 매체는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의미와 가치에 대한 논의를 모조리 배제하고 그저 오락거리, 웃음거리, 구경거리로 바꿔놓는다. 그것을 보며 우리는 원숭이들처럼 ‘죽도록 웃는다’(amused to death). 원숭이에게는 어른·아이가 없다. TV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사실상 통일되며, 이에 아이들은 사라진 채 조그맣고 되바라진 어른들만 남게 된다.

요즘 TV 오락쇼에는 아이들을 출연시켜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한창이라고 한다. 지난주 어느 오락프로의 한 대목. 늦도록 결혼을 못한 한 남자 연예인에게 꼬마 여자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모 얼마 전에 코 세웠는데, 소개해줄까요?”

이런 소리 듣고 웃음이 나오는가. 이런 소리로 사람 웃겨 시청률 높이니 뿌듯한가. 저 문장에 담긴 세계관과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되바라지고 천한 것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한번 그 ‘이모’와 ‘코 세우다’라는 명사와 동사를 ‘삼촌’ ‘고시 합격’ ‘성기 확대 수술’ 등등으로 바꿔 넣어보라. 날마다 도처에서 이런 소리를 듣고도 굳이 우리가 시비하거나 따지지 않는 것은 닳고 때 묻은 어른들 세계의 가치 허무주의에 우리 모두 지쳐 있기 때문일 뿐임을 굳이 말해야 하는가. 아직 맑은 동공을 가진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서 이런 소리를 할 때 저절로 나오는 허탈성 충격을 ‘웃음’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북회귀선을 이야기할까, 슈렉을 이야기할까

‘이상한 도덕적 엄숙주의를 들이대지 말라’고 하지 마시길. 지금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딸에게 이나 같은 소설을 읽힐 배짱이 있는가. 당신은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나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옆집 처녀의 가슴 성형수술 성공 여부를 토론할 것인가.

제발 아이들은 놓아두자. 소주 광고로 유방을 흔들어대는 플래시로 포털 대문을 장식하든, 입시 교육을 비판하던 ‘마왕’께서 갑자기 특목고 입시학원 ‘마왕’으로 변신하든 다 좋지만 이는 모두 어른들 이야기다. 아이들은 아이들 오락 프로그램으로 보내자. 어른들 오락 프로그램은 그 소주광고 모델과 입시학원 ‘마왕’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들까지 어른 세계에 뒤섞여 함께 망가지는 꼴을 보면서 웃자는 건 대체 무슨 비꼬인 마음인가.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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