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살 수 있을까.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나는 잡학을 좋아한다. 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텔레비전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시청용으로 살아왔다. 앎은 즐거움이다. 근데 앎이 불편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분이란. 2009년 연중기획인 ‘지구를 바꾸는 행복한 상상 Why Not’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지난해 9월부터 기획을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하게 됐다. 환경문제가 컸다. 환경은 솔직히 관심 밖의 사안이었다. 주방세제가 필요 없어진다며 후배가 정성스럽게 떠준 아크릴 수세미에 세제를 가득 묻혀 설거지하고 살 만큼. 알면 알수록 나의 소비가 쌓여 지구가 망가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바르게 살잣! 먼저 절약 모드! 차곡차곡 쌓인 불편한 진실에 잔뜩 달아오른 대뇌피질은 전두엽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맨 처음 물과 전기에 ‘꽂혔다’. 설거지를 할 땐 헹군 그릇을 건조대에 올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물을 잠그는 버릇이 생겼다. 사우나에서 비누칠을 할 때는 설치된 절수형 수도꼭지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물들이 불편해졌다. 나도 모르게 물을 잠그려 꼭지를 누르는 바람에 물만 더 나오는 낭패를 겪기 마련이지만. 출근할 때는 콘센트에 그냥 꽂아두고 온 전자제품 플러그들이 머리 속을 떠돌았다.
제지용으로 파괴되는 열대우림의 현실을 알게 된 이후는 인쇄 명령을 내리기가 힘들어졌다. ‘사무실에서 재생용지를 쓰자’는 말이 목구멍을 간질이다가, 왠지 ‘너무 나서는 것 같아’ 포기했다. 이것도 쉽지 않네. 결국 인쇄 분량을 최소화하고 A4 한 장에 두 면씩 인쇄하는 편법으로 타협했다. 근데 활자가 작으니 눈이 아프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각자 머그컵을 쓴다. 1회용 컵을 쓰지 말자는 뜻에서. 근데 잦은 외근 등으로 사나흘씩 방치되던 머그컵을 다시 쓰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사무실 커피메이커에서 쪼르륵 내려오는 커피가 공정무역 원두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찜찜해진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 원두는 내가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사온 별다방 원두다. 다음부턴 인터넷으로 공정무역 원두를 찾아봐야겠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근데 이런 불편함을 계속 느끼고 살 수 있을까? 불편하게 살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이 순간 들리는 한 이동통신 광고의 로고송. ‘작심삼일 싫어. 초지일관이 좋아~.” 누군 그걸 몰라서 작심삼일하냐고! 아, 이것도 불편해!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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