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 돼! 불을 꺼. 구해야 돼. 저 안에 있는 사람들 구해야 돼. 안 돼! 안 돼! 아….”
서울 용산 하늘에 불길이 치솟던 순간, 경찰 무전기는 흐느끼듯 절규했다. 현장을 비추고 있는 경찰 CCTV는 멍하니 불붙은 망루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부산 동의대에서 있었던 참화가 엊그제 일처럼 다시 떠올라 부르르 떨려왔다.
경찰서 지하 샤워장. 어제의 당직자와 오늘의 이른 출근자들이 맨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화제는 단연 용산이었다. “애초에 경찰이 거기 간 게 잘못이지. 그거 민사적으로 싸우든지 말든지 냅두지 뭐하러 가나? 에구… 지난번에 우리 관내에서도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이 와서 시끄러웠잖아. 그때 조용히 잘 처리했지. 우리 서장님이 현명하신 거야.” “뭔 소리야! 그럼 화염병 던져서 도로가 불타고 난린데, 경찰이 그걸 눈감고 돌아서? 솔직히 지난번에 우리 관내 ○○재개발 상황 때 멀찍이 서서 용역 애들 깨지는 거 지켜보기만 했던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전국에 재개발 구역이 한두 군데야? 경찰이 그런 식으로 해왔으니까 간덩이만 키워놓은 거잖아.”
그날 밤. 용산 희생자 추모행사를 마친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은 용산에서 서울역, 숭례문을 지나 명동까지 서울 시내 한복판을 어지럽혔다. 그 행보는 명동성당에 이르러서야 멈췄고, 대열을 가다듬은 경찰이 그들과 대치하면서 잠시 정적이 돌았다. 느닷없이 ‘돌’을 의미하는 무전음어가 다급하게 날아온다.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 정도의 돌이 날아드는지 자세한 보고도 없이…. 당황한 것이다. 전날 밤 용산에 투입됐다가, 제대로 한잠 쉬지도 못하고 명동까지 뛰어온 진압경찰 부대. 최일선에 있던 그 부대는 결국 후방 부대와 임무교대됐다. 그들은 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발밑에서 폭발하듯 터지던 화염병과 ‘쉭, 쉭’ 날아들던 골프공들, 그리고 그날의 ‘참사’를 목전에서 경험했던 그들은 ‘외상성 스트레스장애’ 환자와 다를 바 없다. 용산에서 참사가 있던 그날, 경찰은 이랬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안타까운 목소리2005년 시위대 한 명이 숨진 여의도 농민집회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허준영 전임 경찰청장의 눈물의 퇴임사가 생각난다. “정부의 정책 수행 과정에서 표출되는 사회적 갈등을 오로지 경찰만이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막아서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제 없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허 전 청장의 소망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인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개발정책과 계획, 이로부터 소외된 소수의 사람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단절과 분노의 전장. 지금까지 그 전장에 서 있는 공무원은 오로지 경찰뿐이었다.
어쩌면 이 외로운 맞서기는 경찰 스스로 초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수많은 갈등의 현장에서 경찰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를 자처해왔다. 정보경찰 스스로 ‘갈등의 조정자’를 자청하며 공과 사를 막론한 갈등의 한가운데서 중재역을 해왔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수면 아래의 갈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반면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기회도 그만큼 경험하지 못하게 됐다. 오로지 갈등이 수면 위로 솟아오를 때라야 누군가 관심을 기울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갈등들을 수수방관하던 정치권은 기다리기나 한 듯이 ‘과잉 진압’ 운운하며 선정적인 말잔치에 바쁘다. 목전에 불법이 있더라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위험하지 않은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단다. ‘현명하게 판단해 슬기롭게 대처했어야’ 한다는 좋은 얘기들이다. 하지만 경찰은 법을 만드는 기관도, 법을 해석하는 기관도 아닌 법대로 집행하는 기관이다. 게다가 그조차도 검찰, 국정원 등에 직무나 예산을 종속받고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책임 있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은 물론, 행정부의 독립 관청으로 보장된 수장의 임기마저 정치적 책임 공방에 수시로 무시돼왔다.
폭력시위 기준·대응 요령조차 없어선정적인 말잔치에 언론도 한 숟가락 거든다.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혹은 ‘카더라’ 식의 무책임한 말들을 받아쓰기하면서 관전하기 재미있는 대결 구도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30살 안팎의 사회 초년생들로 구성된 사회부 기자들의 인적 구성을 감안하면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런 선정적인 말잔치에는 경찰의 감각적 치안행정 관행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과잉 진압 논란에 대해 경찰 스스로 명쾌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회·시위를 관리해오면서도 제대로 된 대응 매뉴얼이나 규칙조차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촛불시위를 ‘불법·폭력 집회’로 규정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불법이었고, 어느 수준부터 폭력이었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폭력시위(Riot)와 비폭력시위(Demonstration)를 엄격히 구분하는 명문화된 규정을 두고 있고, 폭력의 수준에 따라 특별히 훈련된 진압경찰의 투입 시기와 장비·무기의 사용 수준 등에 대한 선명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경험한 것이 한두 번인가? 그럼에도 경찰에 대한 두 가지 질문(진압의 당위성, 특공대 투입의 필요성)에 대해 세간에서 논박을 당하는 것은 물론, 검찰 수사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소수의 희생을 전제한 개발정책 우선 시대에 만들어진 법제, 과격하고 과장되게 표출되는 갈등에만 반응하는 사회통합 체계, 이를 외면하거나 제대로 논의하지 않는 국회가 여전하고,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당청의 눈치를 살펴야만 하는 경찰이 계속되는 한 제2·제3의 용산은 계속될 수 있다. 문제의 근원에 대한 논의와 처방은 뒤로한 채, 왜 경찰 수장의 옷 벗기기에 다들 이렇게 혈안인가?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동료를 잃은 슬픔에 존경받는 수장을 잃는 아픔까지. 진정 우리는 법집행의 순간마다 절대강자가 누구인지 현명하게 판단해 슬기롭게 눈치볼 줄 아는 ‘재치 있는 경찰’을 원하는가? 그 값을 이렇게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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