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21] 사진기자
아침 8시5분 15층 엘리베이터를 탄다. 9층에서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탄다. 안면은 없다. “산에 가세요?” “아에에 네에.” “좋으시겠어요.” “네에에.” 등산? ‘올라갔다 내려올 걸 왜 오르냐’주의인 나를 동네에서 산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 머리는 귀까지 내려오지, 등산화에 카메라가 들어 있는 배낭 메고 있지, 딱 등산객 차림이다. 얼굴까지 까매 더 그럴 거다. 어느 산 가세요? 하면 북한산요, 한다. 등산 가냐는 소릴 자주 들어 무덤덤 넘어간다. 사실 정장 옷이 없다. 결혼할 때 입었던 양복 한 벌이 전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15층 아저씨 직업을 두고 내기를 했단다. 마누라 잘 만나 사진 찍으러 다닌다, 예술가다, 실업자라 등산 다닌다, 목수다, 페인트공이다….
진짜 산에는 약하다. 몇 해 전 엄홍길씨를 인터뷰하는데 굳이 산에서 하잔다. 상쾌하게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메고 쫓아갔다. 보폭이 나와 세 배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이쯤에서 하시죠.” “좀더 가요. 좋은 데 있어요.” 쉬지도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을 올랐다. 인터뷰 전, 내 복장이 맘에 들었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2004년 가을 강원도 부연분교 취재를 마친 뒤 재 넘어 어성전에서 벼베기 끝난 논에서 싸라기 줍는 노인을 취재하고 있었다. 밭 쪽에서 소리가 났다. “어린 놈이 쯧쯧.” “애비 잘 만나서….”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무지하게 큰 카메라, 평일 대낮, 튀는 색 자동차, 일행 없이 혼자. 조금 지체하다 어르신들 쪽으로 다가갔다. 힘겹게 고춧대와 씨름하는 노인들과 같이 고춧대를 뽑았다. 기자라고 했더니 “진작 말하지” 하셨다. 덕분에 낮술 많이 마셨다.
카파라치 전성시대. 초겨울 아침 6시 반 고등학생들이 칼바람 가르며 등교하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 시흥시 한 학교 앞 인도 가로수에 몸을 지지하고 웅크려앉아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없었다. 그때 들리는 소리. “야, 이 ××야. 할 짓이 그렇게 없냐.” 누가 싸우나 둘러봤는데 없다. 다시 셔터를 누른다. 또 들린다. “야, 이 ××야.” 획 둘러본다. 없다. 행인 가운데 누군가 욕을 하고 지나간 듯하다. 다시 셔터를 누른다. “아저씨 한번 봐주세요. 급해서요.” 이번엔 한 아주머니가 달려와 사정을 한다. 불법 유턴을 한 뒤 나를 발견하고는 카파라치로 착각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직접 보면 자연스런 컷이 안 나와서 최대한 카메라와 몸을 숨겼다. 게다가 학교 앞 도로는 유턴 금지구역이었다. 신나게 욕먹으며 일한다.
류우종 기자 blog.hani.co.kr/wjryu ·사진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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