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 보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좋은 대학이나 특목고, 심지어 유명 입시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반 학생 가운데 몇몇은 으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교사들도 이를 못 본 체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갈수록 번성하는 사교육과 초라해지는 공교육의 대조적인 풍경이다. 분명 뭔가 잘못됐다. 왜일까? 모두들 “공교육이 문제”라고 목청을 높이는데, 탈출구는 없을까?
이런 우리나라의 공교육 현실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는 모델이 있다. 바로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다.
일본 공교육의 문제점도 우리와 비슷했다. 평등한 기초교육이라는 오랜 전통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2001년 이후 공립학교의 90% 이상에서 표준학력 테스트가 이뤄졌다. 정치권과 대중매체들은 공립학교와 공립학교 교사에 대해 끊임없이 원성을 늘어놓았고, 교사 급여가 대폭 삭감됐다. 사회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빈곤층 학생들이 급격히 증가했고, 중학생의 30~40%가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단 1시간도 공부를 하지 않고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이렇게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등장한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핵심은 수업 혁신을 통한 학교 개혁이다. 9월27일 경기 성남시 이우학교에서 열린 ‘배움의 공동체 운동’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 시즈오카현 가쿠요중학교 전 교장 사토 마사키는 이날 자신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2001년 교장으로 부임한 사토가 펼친 정책은 구체적으로 △수직적이었던 교사-학생 관계를 수평적이고 부드러운 관계로 바꾸기 △암기식 공부를 사람이나 사건과 ‘대화’하며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바꾸기 △서로 보고 배우는 ‘동료성’ 강한 교사 집단 만들기 △수업연구회 연간 60회 이상 개최와 수업 공개 등을 통해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만들기 △아이들의 배움에 학부모 참여시키기 등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수업 방식을 바꾼 것이 가장 혁신적이었다. 수업에서 학습자의 이해도를 구분해보자면 대부분 이해하고 있는 아이, 반쯤 이해하는 아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로 나눌 수 있고 대개는 중간쯤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할 텐데, 이를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배움을 보장하기 위한 방책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 핵심은 ‘소집단 활동에 의한 협동적인 배움’이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반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검토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도록 하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해도가 높은 아이가 이해도 낮은 아이를 돕게 되더란 것이다. 2002년부터는 교실 책상도 소그룹별로 모아놓거나 ㄷ자형으로 배치했다.
전국 3천 개 학교로 운동 확산이같은 운동의 결과 아이들이 돌아왔고, 학업 수준도 높아졌다. 2001년 전교생 830명 가운데 4.6%에 이르던 등교하지 않는 학생 비율은 2년 만에 1% 미만(6명)으로 줄었고, 시내 14개 학교 가운데 열 번째 정도였던 학력 수준도 2~3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이 운동은 현재 일본 전역으로 확산됐다. 현재 20% 이상의 공립소학교와 10%가 넘는 공립중학교, 5%가량의 고등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100개의 거점 학교를 비롯해 전국 3천 개의 학교에서 이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토는 심포지엄에서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학생을 바꿀 수 없고,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업을 바꿔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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