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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원정화와 나

등록 2008-09-04 00:00 수정 2020-05-03 04:25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2001년 중동을 트럭을 타고 돌았다. 이슬람 국가에서 미국의 최혜국 ‘한국’으로 돌아온 일주일 뒤 9·11이 터졌다. 아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온 거야?”라고 물었다. 바로 다음날 예정된 입사 면접은 가슴 떨려서 가지 못했다. 뭔지 모를 허무함이 몰려왔다. 원정화는 2001년 남한에 잠입했다.

2004년에는 홍콩에 갔다. 친구와 함께 갔다. 친구는 내가 가고 싶은 곳과 반대로만 이동하려고 했다. 친구랑 마음이 맞지 않아 죽도록 미웠다. 머무는 사흘 내내 그랬다. 같은 해 원정화는 ‘살해 기회’를 노리며 홍콩 호텔에서 사흘을 지냈다고 한다.

2005년에는 ‘결혼중개회사’에 등록하려고 했다. 아는 여자애가 어머니 성화에 어머니 돈으로 등록했는데 중간에 취소하려니 환불을 안 해준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등록했을 것이다. 아니다, 솔직하자. 잘나가는 집안의 그 여자애가 30살 넘으니 자신의 등급이 C급이었노라고 얘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은해 9월 원정화에게 군인을 소개한 그 결혼중개회사였다. 그해에 어쨌든 나는 밀리터리 마니아와 소개팅을 했다. 그가 밀리터리룩을 입은 모습이 좋았다.

2008년에는 올림픽 직전 중국을 다녀왔다. 출국장에서 걸렸다. 가방에는 라이터 2개가 들어 있었다. 관광객 말고 주민들이 주로 다니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중국 사람들과 너무 닮아서인지 내게 말을 건네보고는 어리둥절해하다가 “한궈”(韓國) 하고는 사라졌다. 완전한 ‘위장’이었다. 원정화는 수시로 중국에 드나들며 북한 공작원과 만났다고 한다.

나는 ‘좌빨’ 잡지에 있다. 이 잡지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BBK와의 연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것을 담당한 기자와 뒤통수를 맞대고 있다. 이 잡지는 이 대통령 인맥과 인천공항공사 민영화의 관계를 추적하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연속해서 표지이야기로 다루기도 했다.

이 정부는 원정화라는 여자를 이중간첩으로 구속했다. 3년 전부터 꼬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원정화가 정확하게 무슨 ‘간첩질’을 했는지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나의 범죄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번호로 ‘시사넌센스’와 ‘탐구생활’은 끝납니다. ‘맛있는 뉴스’의 다음주 개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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