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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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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등록 2008-07-03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벌써 한 달이 훌쩍 넘도록 정신이 온통 20년 전 역사와 추억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다. 거리를 뒤덮은 우람한 저항의 물결에서 오는 데자뷔일까. 6월이라는 시점까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니 단순한 기시감은 아닌 게 분명하다. 6월항쟁 당시 앳된 청년의 내 모습과 최루탄 연기 속에 손수건을 건네던 이름 모를 동지의 추억 따위를 발굴해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요즘 잇따른 강경진압과 부상과 연행의 장면들에 이르니 기억 더듬기는 악몽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맞부딪친 또 하나의 20년 전. 이정희. 학력고사(지금의 수능시험)에서 전국 여자 수석을 차지해 TV와 신문마다 인터뷰가 나온 유명인사인 그를 한 학회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차분하고 똑똑한 친구였다. 여느 친구들처럼 시대를 고민하던 그는 민주화 운동에 나섰고, 대학 졸업 뒤 변호사가 됐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지난 4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다시 TV와 신문에 등장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됐다는 것은 지난 20년의 변화를 증명하는 소식 같았다. 그런데, 그가 거리집회에서 연행되는 시민들을 도우러 나섰다가 경찰에 폭력적으로 연행됐다는 최근 소식은 20년의 시간을 0으로 돌려놓고 말았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자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각료들이 나섰다. “(이 집회에는) 국기 문란과 공권력의 무력화까지 초래하여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 생활을 희생시키려는 저의가 숨겨져 있다. …(주도 단체의) 상당수가 과거 국사범의 전력이 있는 등 이 단체의 불순성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총리도 가세했다. “길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은 과격한 집단행위를 자제하고 각자의 집으로, 생업의 현장으로 복귀해달라. 법과 질서의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면 불가피하게 비상한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 1987년 6월에 나온 대국민 담화들이다. 국사범 등 몇 가지 낯선 용어만 빼면, 지금 정부·여당이 내뱉는 말과 판박이다.
박종철씨를 물고문해 숨지게 하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경찰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했고 이한열씨까지 죽음으로 몰았다. 백골단은 ‘개 패듯’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적실한 표현을 찾기 힘든 폭력으로 시위대를 떨게 했다. 지금 경찰 총수는 그 ‘80년대식 진압’을 들먹거린다. 몇 해 뒤 또 강경대씨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고 분신 항의가 잇따르자, 기득권의 이데올로그들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배후론을 폈고 정치 검찰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만들어내 정국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강기훈씨의 결백이 입증된 지금도 검찰은 반성은커녕 누군가를 제물 삼아 시국에 대처하는 20년 전 기술을 다시 연마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암흑의 시대에도 아이들이 태어났다. 열일곱이나 스무 살쯤으로 자라난 그들이 지금 거리에 있다. 그들은 점점 더 폭압적으로 변하는 경찰을 본다. 비판 세력에 신속하게 칼을 겨누는 검찰을 본다. 눈초리가 무섭게 변해가는 최고 권력자를 본다. 그들에게 역사는 무엇일까. 태어날 당시의 풍경을 지금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니, 역사는 완벽한 도돌이표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되풀이되는 역사는 또 있다. “오늘은 기쁜 날, 찻값은 무료입니다. 가화다방 주인백.” 6·29 선언이 나오던 날, 서울의 찻집과 음식점들은 무료로 손님을 맞았다. 시민은 승리했고, 이후 20년 동안 독재와 전횡의 권력자들은 응보의 나날을 보냈다.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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