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3인이 저녁 먹고 오는 길에 과일 장수를 만났다. 어스름한 빛이 내리는 저녁에 트럭 과일 장수 아저씨는 “배 5개 1천원”을 외쳤다. 길을 가던 3인이 솔깃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저씨한테 다가갔다. 3인의 입이 한꺼번에 뚫렸다. “진짜요?” 3인은 무르고 무른 배를 어스름 녘에 눈에 불을 켜고 손으로 누르고 눌러서 5개를 골라낸 뒤 나눠서 가졌다. 그리고 1인이 1천원짜리 한 장으로 계산을 마무리했다. 주는 손이 머쓱했고 배장수 아저씨가 주는 비닐봉지도 마다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가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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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믿을 수 없는 말 세 가지가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 노인이 “빨리 죽어야지”, 장사하는 사람의 “밑지고 파는 겁니다”라고 한다.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이 완전 믿을 수 없지는 않다는 면에서 이제 미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노인이 빨리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에 일말의 진실이 2분의 1은 담겼다 할 수 있는 이 옛말에 따르자면, 배장수 아저씨는 밑지고 팔지 않았다. 경영학을 모르는 3인은 ‘가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창고였다. 어떤 것이든지 창고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싸지는 것 같은데, 저것도 창고 대방출일 것이야. 창고물류비를 감당하느니 내다팔기로 결정한 걸 거야. -100과 -10의 경쟁이었을 거야. 3인이 이해한 경영학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었다.
밑지고 팔 수 없는 장사꾼들에게는 수요공급 곡선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안 사 먹으면 되지”로 일갈하시었는데, 국민의 ‘공분’을 산 것과 달리 분석해보면 이 말은 국민의 복리후생을 위한 것이었다. 배를 산 3인은 그렇게 이해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해 다시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안 사먹으면 가격이 내려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입 재개와 관련해 내세운 명분대로 ‘정말 값싼 쇠고기’를 국민이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간단한 해결책과 달리 수입업자들은 애가 탄다. 배장수가 건네던 비닐에 감동했던 3인은 수입업자 편이 되어간다. 수입업자들은 최근 ‘자율 규제’를 내놓았다. 어쨌든 수입해서 창고로 직행하는 꼴은 막아야 하니까. 초등학교 앞에 트럭 끌어다가 다섯 덩어리에 1천원에 팔 수는 없잖은가. 정말 사오면 밑지고 안 팔 자신이 있는 건지 수입업자가 불쌍하고, 그들이 내놓은 ‘자율 규제’라는 말을 아무도 안 믿는다는 점도 불쌍하다. ‘자율 학습’이라는 이름의 악몽이 떠오르는 ‘자율 규제’가 도대체 해결책이 될 리가 없다. 벌써부터 ‘자율 규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입할 수 없도록 하겠다니 더 불쌍하다. 싼 배를 사면서도 이명박 생각하는 우리도 불쌍하다. 너 땜에 만날 술이야. 3인은 술 마시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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